▒ 사육신이개 ▒

제야(除夜) -백옥헌(白鈺軒) 이개(李塏)-

천하한량 2007. 4. 1. 23:13
 
 歲律令垂盡 세율영수진
 端坐赴壑蛇 단좌부학사
 呼兒數更漏 호아수갱루
 喚婦落燈花 환부낙등화
 永夜雲陰積 영야운음적
 嚴風雪勢斜 엄풍설세사
 淸談仍促酒 청담잉촉주
 不必阿戎家 불필아융가

 
이 해도 이제는 마지막인가
세월에 쫓기면서 오늘에 이르렀네
아이를 불러 시간을 불러볼까
아내를 불러 등불을 마지막 껐네
기나긴 이밤은 왜 구름에 쌓였는가
바람결에 눈발이 날리고 있네
술잔으로 정담을 나눠 볼까
아우의 집에 갈 일이 또 없어졌네

백옥헌(白鈺軒) 이개 (李 塏) (태종(太宗) 17년 1417 - 세조(世祖) 2년 1456)

자(字)는 청보(淸甫) 백고(佰高) 호(號)는 백옥헌(白鈺軒)이며 본관(本貫)은 한산(韓山) 이며 이색(李穡)의 증손(曾孫) 사육신(死六臣)의 한사람이다.


세종(世宗) 18년 문과(文科)에 급제 세종 23년 저작랑(著作郞)으로 『명황계감(明皇戒鑑)』의 편찬에 차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創制)에도 참여했다.


세종 29년에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세조 2년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이해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등과 함께 단종(端宗)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발각(發覺)되어 혹독(酷毒)한 고문(拷問) 끝에 죽었다.


본래(本來)에는 세조(世祖)와도 친교(親交)가 있어 진상(眞相)을 밝히도록 강요 당했으나 굽히지 않고 처형(處刑) 당했다.

 

시문(詩文)이 청색하고 하고 글씨를 잘 썼다.

 

대구의 낙빈서원(洛濱書院), 과천(果川)의 민절서원(愍節書院), 의성(義城)의 충렬사(忠烈祠) 영월(寧越)의 창절사(彰節祠) 연산의 둔암서원(遯巖書院), 홍천(洪川)의 노운서원(魯雲書院), 한산(韓山)의 문헌서원(文獻書院)에 동학사(東鶴寺) 숙모전 영조(英祖) 34년 이조판서(吏曹判署)에 추증(追增) 시호(諡號)는 의열(義烈) 이었으나 뒤에 충각(忠簡)으로 개시(改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