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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고개 넘는 ‘중년 코리아’…자칫하면 早老

천하한량 2007. 3. 31. 16:44
창간87주년]마흔 고개 넘는 ‘중년 코리아’…자칫하면 早老



고령화는 선진국에도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게 문제다. 당장 5년 뒤만 해도 총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한다. 고령화 연착륙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점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12년 4월 경북 포항시의 한 공장. 1980년 28.8세였던 공장 근로자의 평균연령은 이미 40세를 넘었다.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로 인건비는 날로 치솟지만 생산성은 제자리걸음이다. 회사는 고민 끝에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다. 중년의 근로자들은 연일 시위를 벌인다.’

이는 가상 시나리오다. 하지만 고령화 추세가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이 시나리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고령화는 한 국가의 역동성 저하로 인한 경기 침체, 연금 부담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 사회의 보수화에 따른 정치 지형의 변화, 인구 감소에 따른 교육의 위기 등 정치 사회 경제 각 분야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폭탄’이다.

바로 그 고령화가 한국에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인구가 713만 명이나 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의 은퇴가 곧 시작되기 때문이다.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 속도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라고 한다. 이 비율이 한국에서는 2000년에 이미 7.2%였고 2012년에는 11.7%로 뛸 전망이다. 현재 36.5세인 국민의 평균연령도 이때쯤이면 39세로 높아진다. 본격적인 중년 사회로 접어드는 셈이다.

지금처럼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가 유지된다면 2018년엔 65세 이상 인구가 전 인구의 14%에 이르는 ‘고령사회’(유엔 기준)가 된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가는 데 미국이 73년, 이탈리아 61년, 영국 47년, 독일은 40년 걸렸다. 한국은 불과 18년이다.

이어 2026년에는 인구 5명당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일할 사람이 없으면 가난해진다


인구 고령화가 국가 경제에 던지는 그늘은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고 △저축이 줄어 투자를 위축시키며 △국민연금 수혜자 증가로 재정위기를 가져오는 것 등이다. 무엇보다 국가경쟁력에 치명적이다. 일하는 사람이 줄고 부양받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난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5년 뒤의 인구 구성만 보아도 확연히 실감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25∼49세 인구는 올해 2065만 명에서 2012년엔 1968만 명으로 줄어든다. 반면 50∼64세 비중은 767만 명에서 971만 명으로,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481만 명에서 682만 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성장을 주도할 제조업 인구의 노화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심각하다. 제조업 평균연령은 2002년 36.3세에서 2005년 37.1세가 됐다.

인구문제연구소 박은태 소장은 “북유럽 국가의 조선업이 노동자 평균연령이 높아진 시기에 쇠퇴했다는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 노동력이 모자라면 산업공동화 현상이 생기고 잠재성장률이 떨어진다. 이대로 가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0년 4.47%, 2020년 3%, 2030년대 2.1%, 2040년대엔 1.5%까지 떨어지게 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나의 미래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동갑내기 부인과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모(70) 씨. 1남 1녀는 모두 결혼해 독립했다. 젊었을 땐 비교적 넉넉하게 살았으나 막상 노후에 이르자 자녀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김 씨의 사례는 노후를 자녀에게 의존하는 과거 한국 전통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한국에서 노후 대비를 못한 채 맞는 은퇴는 곧바로 빈곤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면 자칫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노인(65세 이상) 자살은 1997년 이전에 10만 명당 31명이었지만 2000∼2003년엔 71명으로 급증했다. 단기간에 특정 연령대의 자살률이 이처럼 급등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현상이다.

○기로에 선 연금과 건강보험

2006년 한국 근로자의 평균 퇴직 연령은 54세. 퇴직 후 평균 27.33년을 더 살아야 한다(기대여명). 은퇴 후 노후 기간이 길어지지만 대부분은 준비가 미흡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지급하는 연금총액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53.2% 수준이지만 2035년에는 GDP 규모를 넘어서고 2040년대 후반엔 연금 재정이 고갈될 전망이다. 하지만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개혁안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령화의 또 다른 그늘은 생산 가능 인구(15∼64세)의 노인 부양 부담이 가중된다는 점이다. 2005년에는 생산 가능 인구 7.9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030년에는 2.7명이, 2050년에는 1.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