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동의 필요하고 자녀가 아주 어리거나 고교 졸업 후에 가는 게 좋아
입력 : 2007.03.16 22:53 / 수정 : 2007.03.17 14:29
- 홍순호씨가 암소를 돌보고 있다. 송아지(왼쪽 두 마리) 머리에 뿔이 돋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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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洪) 반장 댁 암소가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터질 것처럼 배가 부른 암소가 눈을 껌뻑거리며 낯선 사람을 경계했다. 15가구가 산골 구석구석 흩어져 사는 경북 울진군 서면 쌍전1리. 2반(班) 반장인 홍순호(56)씨가 소금에 절인 무 한아름을 소 여물통에 퍼부었다. 겨울에는 들판에 풀이 없어 배추와 무를 소금에 절였다가 사료와 함께 준다. 여물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암소 머리를 쓰다듬는 홍씨 표정이 밝았다.
“이 암소가 곧 새끼를 낳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쯤 나올 겁니다.”
쌍전리 마을. 행정자치부가 지정한 오지(奧地)다. 자동차 GPS 위치안내 프로그램에도 나와 있지 않은 곳이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서부터 휴대폰이 전파를 수신하지 못했다.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전화선과 모뎀을 이용해야만 하므로 인터넷 사용도 쉽지 않은 동네다.서울의 안정된 직장을 떠나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홍순호씨도 같은 경우다. 지난 3월 5일 서울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다섯 시간 걸려 도착했는데, 이 지역에 강풍주의보가 발효돼 있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강한 바람 때문에 신대재씨 댁 별채 지붕이 날아갔다.
“멀리 찾아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홍순호씨가 1톤 트럭을 직접 몰고 마을 초입까지 마중을 나왔다. 서울 토박이인 홍씨는 경기고??顚?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방송국 교양 PD 생활을 하다 1999년 쌍전리에 정착했다. 승용차로 가기에는 험한 산길과 비포장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산 속으로 들어가니 홍준호씨 집과 밭이 보였다. 그의 아들 인표(22)씨는 담양의 한빛고등학교를 졸업해 현재 단국대 사학과에 재학중이고, 홍씨는 방송작가 출신인 부인 전경희(48)씨와 ‘늦둥이’ 딸 인혜(11)양과 함께 단층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다.홍씨는 집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땅에서 주로 유기농 고추를 재배한다. 마당에 작은 비닐하우스가 하나 있고, 뒷마당에는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참나무 표고목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비닐하우스에는 지난 2월 21일 씨를 뿌려 싹을 틔운 고추 새싹이 자라고 있었다. 3월 15일이면 모판에 이식한다. 암소는 2004년 12월 울진군에서 친환경 농업가구에 퇴비 마련용으로 지원해준 것이다. 쌍전리 마을에 40마리가 지원됐다. 홍씨의 하루 일과는 아침 7시30분 초등학생 딸을 스쿨버스 정류장이 있는 마을 입구까지 데려다 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딸을 보내고, 아침을 먹은 후 홍씨는 소 여물을 챙겨주기 위해 장화를 신는다.
“송아지 한 마리가 보통 200만원 정도에 거래됩니다. 지금 암소가 네 마리인데, 12마리까지 늘려볼 계획입니다. 암소 12마리면 한 달에 한 번씩 송아지가 나오는 건데, 그럼 월 200만원씩 고정 수입이 생기는 거니까 괜찮죠.”박찬득(46)씨는 2000년 부인 배동분(46)씨와 아들 선우(16)군, 딸 주현(14)양을 데리고 쌍전리에 정착했다. 서울 토박이인 박찬득씨는 덕수상고?疵졍?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다 “태어나 꼭 하고 싶은 일이 시골살이였다”며 회사에 사표를 냈다. 2000년 평당 1만2000원을 주고 6000평 가량의 토지를 매입한 박찬득씨는 이곳에서 ‘대농(大農)’으로 통했다. 현재까지 땅을 9000평 넘게 넓혔다. 주로 야콘(뿌리의 생김새가 고구마와 비슷하고 당도가 높아 식용으로 재배되는 식물)을 재배하는 박찬득씨 부부는 토지 매입 당시 있던 시골집을 개조하지 않고, 여전히 나무보일러를 사용하는 재래식 삶을 살고 있다. 박찬득씨 집 마당에는 유난히 항아리가 많다. 별채에는 항아리 저장 창고도 따로 있다.
“봄·여름에는 딱히 나오는 작물이 없어서 수입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이 항아리 안에서 차를 만들어 팝니다. 액상차입니다. 수입이 없는 봄·여름에 이 액상차를 팔면 가계 수입이 안정적으로 됩니다.”
박찬득씨가 ‘고정 수입’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귀농 첫해 “운이 좋아서 유기농 고추 1000평 농사가 잘 돼 농사를 쉽게 생각했다”는 박찬득씨는 ‘서울 살 때 생각’으로 “다음 해에는 고추 재배 면적을 6000평으로 늘렸다”고 한다.“그런데 병에 걸렸습니다. 6000평의 고추가 전부 말라 죽었습니다. 그때 농사꾼은 자연 앞에 좀더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6000평 고추 농사면 매출액 얼마’ 하는 경영 마인드로 자연을 대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다행히 그 해 박찬득씨네 개가 새끼를 낳았다. 맬러뮤트가 새끼 10마리를 낳았는데, 가격이 마리당 50만원 가까이 나가 생계에 제법 보탬이 됐다. 농촌 정착 3년째 박찬득씨 부부는 야콘과 고추, 액상차를 함께 시작했다. “일종의 포트폴리오인 셈”이라고 했다. 이후 보험도 들었다. 매출액이 높지 않은 형편에 한 해 농사를 망칠 것을 대비해 매달 적지 않은 보험료를 내고 있다.
“농업은 퇴직금이 없는 대신 정년이 없습니다. 육체가 허락하는 한 계속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울의 삶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삶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학원에 치어 살았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흙 위에서 자연의 일부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아내 배동분씨는 “교육 여건을 생각해 아이들을 좀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보내고 싶다면 시골에 내려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가 이러다 뒤지진 않을까, 남들처럼 좋은 대학 못 보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면 시골에 살지 못합니다. 누가 강남에 아파트 구했다는 말 듣고 배 아파할 때 생각하면,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이곳에 와서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엄마로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쌍전리 마을의 교육 여건은 열악했다. 마을 입구에 있던 분교는 학생 수가 적어 폐교되었다. 대신 그곳까지 본교에서 스쿨버스를 보내주고 있다. 현재 학생은 18명 정도로 두 학년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교 1~2등’을 하는 학교다. 인근에 학원은 하나도 없다.“큰돈 벌고, 자녀 교육 잘 시키겠다는 생각보다 가족과 재미있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시골에 온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업이 망해서 혹은 회사에서 퇴출 당해서 패배감을 갖고 오면 살기 힘든 곳입니다.”
<이 기사는 주간조선 [1946호] 에 게재되었습니다>
남편 박찬득씨는 “반드시 배우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 반대 무릅쓰고 시골 내려와서 집은 아내의 주장대로 읍에 있는 아파트로 하고, 밭은 일터로 생각해 출?薺謀求?사람들은 대부분 실패해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페이지에 기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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