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에 적혀있는 내용들은 과연 완전한 것인가 하는 내용은 이미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오던 주제였다.
우리의 경우도 같은 의심을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서효사(誓效詞)의 본분이 신라와 고려, 조선에 걸쳐 우리 역사에 미친 파장은 대단히 큰 것임이 드러났다. 특히 조선에서는 그 출발부터 절대왕권(絶對王權)의 안정을 위해 서효사(誓效詞)의 내용을 왜곡시켰음을 권근(權近)의 신도비(神道碑)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감록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인 무학(無學)과 같은 사람도 이와 같은 움직임에 적극 앞장섰던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역사(歷史)와 경전(經典)과 예언론(豫言論) 중에서 특히 예언론(預言論)은 이처럼 완전히 굴절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위 제목에 대한 사항은 천부경(天符經) 예언론(豫言論)(1)의 저자인 최동환 선생님께서 발취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마야의 역사와 유가탄 사물 기. [2] 조선상고사.[3] 요한 계시록. [4] 정감록의 무학비결의 끝부분, 청구비결의 끝부분.[5]우리의 고문서의 단재 신채호선생의 조선 상고사. 격암유록, 자하선인훈몽, 팔공진인 총담 등으로 소개 하고저 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마야의 역사와 유카탄 사물 기
<스페인 출생의 “디에고 레란다”는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 후 1549년 유카탄 지방의 이시마르 수도원에 부임해온 프란시스코파의 수도사였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인디오의 개종에 미친 듯이 열중했으며 마야의 모든 기록 문서를 사교(邪敎)의 책이라 하여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는 “유카탄 사물 기”라는 책을 써서 마야에 관한 연구서는 오직 그의 책만이 남아있다.>
마야의 모든 기록 문서를 모조리 불태운 장본인이 마야에 관한 유일한 연구서를 남겨다는 사실은 현존하는 고대문서의 운명을 이해하는데 좋은 실례입니다.
<디에고 레란다>의 경우는 단지 유카탄 사물 기를 남기는 정도로 그칠 만큼 서양문명과 마야문명 사이에는 인종도 다르고 그 문화적인 이질감도 너무나 컸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문명세계(文明世界)와 야만세계(野蠻世界)의 만남이 곧 역사(歷史)임을 알 수 있다. 문명세계(文明世界)가 있으면 그 주변에 야만세계(野蠻世界)가 있고 문명민족(文明民族)이 그 내부적 갈등이 심화되어 약화될 때 주변의 야만민족(野蠻民族)이 침입(侵入)해와 문명민족(文明民族)을 파괴(破壞)하고 약탈(掠奪)하는 과정에서 물질문명(物質文明)과 정신문명(精神文明)을 전리품(戰利品)으로 획득하게 되며, 그것을 기반으로 스스로도 어느덧 자신이 파괴한 문명세계를 이루게 되며, 그 과정에서 다시 그 주변에 새로운 야만세계가 생기는 순환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고대(古代)의 기록문서(記錄文書)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 그 고대기록 문서와 전혀 다른 민족이고 이질적인 정신영역의 소유자일 때 그 고대기록은 불태워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민족이거나 비교적 동질성(同質性)이 있는 민족(民族)의 경우 약탈(掠奪)한 고대기록(古代記錄)에서 얻은 유용한 정보는 정복자(征服者)들의 정신영역(精神靈域)을 살찌우는데 결정적인 전리품이었음은 고대의 종교들이 걸어 온 길일 것입니다.
【2】;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단제 신채호선생은 조선 상고사에서
<조선사(朝鮮史)는 내란(內亂)이나 외적(外敵)의 전쟁(戰爭)에서 보다는 조선사(朝鮮史)를 담당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더 없어졌다고 본다.>고 하였다.
단군이래의 역사서와 경전과 예언론이 피해를 본 것은 크게 두 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조선(朝鮮)의 태종(太宗) 17년 “내 참위설(讖緯說)을 믿지 않은지 오래라”하여 서운관에 보존되어 있던 각종 예언서를 태웠으며 개인이 가지고 있던 예언서들까지 모조리 소각할 것을 왕명으로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종(成宗)과 세조(世祖) 때에도 같은 명령을 내린바 있다. 그러나 이 명령은 신도비(神道碑)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찬위설(讖緯說)을 믿지 않은지 오래인 태종이 왜 신도비(神道碑)에는 진단구변도(震檀九變道)와 신지비사(神誌秘詞)를 언급했으며 그것도 진단구변도(震檀九變道)와 신지비사(神誌秘詞)에 있지도 않은 말을 억지로 주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리산(智異山)에서 온 이인(異人)까지 들먹였는가?
두 번째는 당(唐)나라의 소정방(蘇定方)과 설인귀(薛仁貴)가 백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의 국서고(國書庫)를 불태운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한국(桓國), 배달국(倍達國,) 단군조선(檀君朝鮮),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로 이어오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단절됨 없이 전해오던 문명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 사건을 단재 신채호선생님은 모를리 없으면서도 역사를 담당한 사람이 역사를 없앴다고 단정한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대한 신채호선생님의 마음을 잘 대변하는 것이다.
즉 신라(新羅)와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에서는 항상 그 이전을 전면 거부하는 입장이었고 그 이전을 거부하는 정신은 외국에서 들어 온 것들이었다. 즉 새로운 외래정신(外來精神)이 지나간 외래정신(外來精神)을 짓밟은 것이 지난 역사이며 그때마다 결정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엉뚱하게도 고유(固有)의 정신(精神)이 되어온 것입니다.
【3】;요한계시록
요한 계시록을 생각하기 이전에 신약을 생각해보자.
“예수가 살아 있을 때 그의 가르침을 기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가르침은 그가 죽은 뒤 적어도 35년 동안 사도들과 전도자들의 입을 통해서만 전해졌다.
그 이야기들은 사람들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그들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정보와 신념을 가지고 저마다 다른 일화와 논쟁들을 강조했다. 이야기들은 적당히 각색되었다.“
“오늘날 바이블의 신약(新約)이라고 불리는 책에서 최초로 씌여진 부분은 AD;50년~60년대에 기록된 것으로, 젊은 기독교(基督敎) 공동체(共同體)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였다. 그러다가 베드로의 통역자요, 여행 동반자였던 사람이 65년~70년에 마가복음을 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80년~100년대에 기록된 것으로서 둘 다 마가복음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른바 마태복음은 다양한 자료를 모아 편집한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종말론 그 5000년 역사. 유리 루빈스키/ 이안 와이스만 공저/ 김진경. 허영주 譯/ 명경출판사)
일본의 계시록연구가인 유가용태(有駕龍太)는 신약에 대하여 대단히 신랄하고도 큰 의문을 제기하였다.
즉 “본래 바이블의 신약(新約)에는 원본(原本)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사본(寫本)으로 전달되었다.
잔존하는 모든 주요한 사본(寫本)은 그리스어 사본이고 그것들은 기원 2세기부터 10세기에 쓰이어진 것이다.
그중 이교적(異敎的)이어서 위험(危險)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로마의 권력자(權力者)에 의해 의도적(意圖的)으로 개편(改編)되었다.
즉 본래의 원본은 모두 자기 수중에 보관하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책에는 읽은 사람의 정신을 혼란하게 하여 이해가 되지 않도록 일부러 난해하게 다시 써서 개작했다는 것이다.“라고 하여 주로 로마의 집권자들이 정치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에 대하여 주의력을 집중하고 있다.
또한“그러보니 맨 마지막인 제 22장의 약간 어른스럽지 못한 글귀가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라고 하여 요한 계시록을 직접 거론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 하노니 누구든지 이것을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이야말로 나중에 첨가된 위협적인 글귀가 아닐까? 로마의 권력자들이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기 위한 잔꾀의 산물이 아닐까?. 라고 하여 특히 요한계시록의 맨 끝 부분에 대하여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함을 그는 숨기려하지 않았다.
또한 유가용태(有駕龍太)는 역사학자 “알베르트 헤르만”의 다음과 같은 내용의 주장을 인용했다.
“일찍이 원 계시록이라고 할 책이 존재했지만 이것은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이 불탈 때 분실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단편적으로 에스겔서, 다니엘서, 요한계시록에 계승되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계시로 쓰이어진 것이 아니라 간신히 사본으로 남아있던 참고서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재작성한 것이다.“
(※지구의 대종말/유가용태 著 최정선 譯/ 학일출판사)
이상 <유리 루빈스키/이안 와이즈만>과 <유가용태(有駕龍太)>나 <알베르트 헤르만>이 주장하는 바는 바이블에 대하여 종교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고대문서(古代文書)에 대한 일반적 관찰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착안점을 제공한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라고 해보아야 국사편찬 위원이라는 친일파 이병도를 비롯하여 그의 제자들이 대를 이여 역사를 간추려 교과서를 만들면서 결정적인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삼국사기(三國詐欺)로 만들어 우리후손들에게 정체성(正體性) 없는 민족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김부식(金富軾)이가 썼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중에서도 스스로 가짜인 삼국사기(三國私記)인 신당서(新唐書)을 보고 뻬끼는데 시간 좀 걸렸겠지만 지명(地名)중에 역사를 쓴 김부식이도 300여 개소는 알 수 없다는 것은 김부식의 자신이 사기(詐欺)라고 했는데 이것을 삼국사기(三國史記)라고 조상의 신주(神主)단지 모시듯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사대주의(事大主義)사상(思想)을 가지고 있던 그 시대 정부의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인 양반님들이 고려왕조(高麗王朝)와 조선왕조(朝鮮王朝)에 계속하여 이어져 왔고 우리 민족과 가장 가까운 같은 혈통인 징기스칸의 원(元)나라는 한족(漢族)과 원나라 왕족의 혼인(婚姻)을 금지시키고 고려왕실(高麗王室)과 혼인을 추진한 것을 부마국(鮒馬國)이니 역사를 폄하(貶下)하여 결핍된 정신교육을 시켜온 것도 친일파 역사학자들이며, 원(元)나라의 호의(好意)를 무시하거나 후금의 청(淸)나라 태종(太宗=愛新覺羅=신라 마이태자의 후손이라는 설)을 무시하고 명(明)나라만 섬기다가 조선왕조 14대 인조(仁祖)가 삼전도에서 청(淸)나라 태종(太宗)에게 삼육구배(三六九拜)의 예를 올리고 굴복한 것을 누구의 잘 못인가 우리국민 아니 민족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나티베트어족인 한족(漢族)과 왜(倭)놈의 피(血)와 정신(精神)이 흐르고 있는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와 친일 사학자(親日史學者)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4】;정감록(鄭鑑錄)
[1] 무학비결(無學秘訣)의 끝부분
------[원문] 小僧雖不肖 不改小僧言
------------소승수불초 불개소승언
[해석]“소승이 비록 불초하나 소승의 말을 고치지 마시오.”
[2]청구비결(靑邱秘訣)의 끝부분
[원문]
小僧雖不肖 不改小僧言 不改則筐盛 改則筐無疫 呵呵千載上 懺塊後代人.
소승수불초 불개소승언 불개즉광성 개즉광무역 가가천재상 참괴후대인.
[해석]
“소승이 비록 불초하나 소승의 말을 고치지 마시오.
고치지 않고 이대로 지켜지면 왕성함으로 채울 것이요.
만일 고친다면 역질이 생겨 왕성하지 못할 것이다.
껄껄 웃나니 하늘을 위에 두고 후세 사람에게 부끄러워하노라.“
◎해설
무학비결 끝부분은 “소승이 불초하나 고치지 말라.”는 말로서 이는 그런대로 독자의 인내력을 크게 시험하지 않는 무난한 끝맺음이다.
그러나 청구비결의 경우 이러한 내용들과는 전혀 질이 다른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승이 불초하나 고치지 말라”는 내용은 무학비결과 같으나 다음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이 책을 고치지 않으면 나라가 왕성하고 만일 고치면 역질이 생기어”라고 운운하여 청구비결이 나라의 흥망성쇠와 직결되며 책을 고칠 때는 역질까지 생긴다는 말을 하고 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라 할수 있으며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보려는 노력해도 그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무학비결이나 청구비결이 존재하건 나라에 변화가 있을리가 전혀 없음은 물론이다. 변화가 있다면 오로지 <무학>개인에게 해당되는 변화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책이 나옴으로서 한인, 한웅, 단군 이래의 선량한 미풍양속이 망국적인 풍수도참(風水圖讖)으로 흘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풍수도참 류의 책들이 한권이 아니라 많이 있으며 그 원본이 신지비사(神誌秘詞)에서 유래했음은 이미 확인한바 있다. 그러면 도대체 그는 무엇을 믿고 이러한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었을까?
과거 절대왕조의 시대에는 절대왕권을 비호하는 예언서가 아니고는 예언서를 만든다는 자체가 자살행위였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들에서 이씨가 왕권을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권근(權近)의 신도비(神道碑)와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예언서가 아니며 이씨왕권(李氏王權)이 쿠데타정권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왕권을 부여받았다는 관제 홍보용 팜프렛 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아마 우리 민족의 역사상 대중에게 이 같은 종류의 공갈협박(恐喝脅迫)을 역사 앞에 공개적인 문서로 나타나는 예는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민족역사상 그 누구도 이 같은 엄청난 공갈협박을 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무학(無學=舞鶴)이 말하는 아래의 문장은 대단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을 고치지 않으면 나라가 왕성하고 만일 고치면 역질이 생기어>
먼저 이 문장을 영원히 고치지 말아야 한다는데 필자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즉 자라나는 세대들이 역사에서 이 같이 요사스러운 인물이 어떻게 역사를 오염시켰으며 어떻게 백성을 협박했나를 잊게 된다면 장차 이 같은 인물이 반드시 또 나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위의 문장은 영원히 한자도 고치지 말고 그대로 후손에게 전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 다시는 이 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국운이 왕성해질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정신적인 역질이 만연하여 국운이 쇠퇴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소로운 어용예언가요, 역겨운 관제예언가요. 오만방자한 정치적 예언가도 아래와 같은 말로 글을 끝낼 수 있음을 보고 글을 쓰는 한 사람(최동환)으로서 글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붓을 놓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껄껄 웃나니 하늘을 위에 두고 후세 사람에게 부끄러워 하노라.”
【5】;우리의 고문서(古文書)
[1] 단재 신채호선생님의 조선 상고사
<크롬웰이 화가가 자기의 상을 그릴 때, 그 왼쪽 눈 위의 혹을 빼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나를 그리려면 나의 본 얼굴을 그리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화가의 아첨함을 물리칠 뿐 아니라 곧 자기의 참된 상을 잃을까 함이었다.
조선사를 지은 기왕의 조선 사가들은 매양 조선의 혹을 베어내고 조선사를 지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네들이 쓴 안경이 너무 볼록하므로 조선의 눈이나 귀나 코나 머리 같은 것을 혹이라 하여 베어버리고 어디서 알 수 없는 정말 혹을 가져다가 붙여놓았다.>
단재 신채호선생님이 말하는 우리의 왜곡된 역사에 관한 설명이다.
단재선생님의 설명은 역사뿐 아니라 경전과 예언 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중이 선호하는 예언 론의 경우 그만큼 정치적인 이용가치가 있었음으로 역사보다도 훨씬 더 그 경향은 심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전해지는 정감록 류의 책에서는 진정한 예언 론이 가지고 있었던 “눈이나 귀나 코나 머리 같은 것을 혹이라 하여 베어버리고 어디서 알 수 없는 정말 혹을 가져다가 붙여놓았다.”는 내용과 너무도 정확히 부합된다.
[2] 격암유록, 자하선인훈몽, 팔공진인총담.
우리에게 격암유록, 자하선인훈몽, 팔공진인총담 등의 책이 없었다면 정감록 류의 책에서 사라진 우리의 예언 론이 가지고 있던 “눈이나 귀나 코나 머리”를 다시 찾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풍수도참가(風水圖讖家)들이 붙여놓은 수없는 진짜 혹들을 구별해내기도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1916년 계연수 선생님은 묘향산 석벽에서 천부경(天符經)의 원본(原本)을 발견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 이전에는 천부경이란 경전이 존재함만을 알았지 누구도 이 천부경을 복원할 수 없었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손바닥같이 훤히 보며 이 세상 못하는 것이 없는 신비로운 인물들이 조선조에 수없이 많았어도 단 81자의 천부경(天符經) 원본(原本)을 복원하는 자가 없었던 것이다.
이 와 마찬가지로 격암유록, 자하선인훈몽, 팔공진인총담 등의 책이 없었다면 정감록 류의 쓰레기더미에서 무언가를 찾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같은 책들은 역사부문에서 한단고기(桓檀古記)가 차지하는 위치와도 같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단고기(桓檀古記)와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紀古史)와 같은 정통민족역사서(正統民族史書)를 1940년도에 씌여진 위작(僞作)이라고 주장하는 사학자(史學者)들이 있으며, 아직도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틀 안에 안주하려는 기존 사학자들은 한단고기, 구원사화 등을 정사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여 많은 뜻있는 사람들을 울분에 차게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아왔다.
이와는 사정이 다르지만 비슷한 현상이 예언 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있다.
즉 정감록(鄭鑑錄)은 고려(高麗)와 조선(朝鮮) 이래 전해지는 정통예언서이지만 격암유록(格菴遺錄)은 구한말(舊韓末)이나 왜정(倭政) 때 만들어진 위작(僞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눈이나 귀나 코나 머리 같은 것을 혹이라고 하여 베어버리고 어디서 알 수 없는 정말 혹을 가져다가 붙여온 내용”을 역사와 예언 론에서 공통적으로 진짜라고 주장하며 진정한 역사와 예언 론이 공통적으로 위작(僞作)으로 낙인찍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민족 고유(固有)의 경전(經典)은 알 수 없는 부적(符籍)과 같은 것이라고 매도(賣渡)되었다, 잘 못 꿴 첫 단추는 풀러버리고 다시 꿰어야하지만 아직도 그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자하선인훈몽, 팔공진인총담은 이래서 더욱 더 소중하다. 어떠한 책이 옥(玉)이며 어떠한 책이 돌(石)인지 9,000년 이래의 도맥(道脈)을 이은 책인가 아니면 지난 천 년간 외래사상(外來思想)으로 강제(强制) 포장(包裝)된 책인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9,000년 이래의 도맥(道脈)을 이은 책이라면 의당 우리의 천부경(天符經)을 비롯한 민족의 경전(經典)들과 한단고기(桓檀古記) 등의 역사서(歷史書)와 하나가 되는 책이 곧 진정한 민족의 예언 론이며 지난 천 년간 외래사상(外來思想)으로 강제포장(强制包裝)된 예언 론은 국적 없는 혼혈예언서(混血豫言書)로서 정치적(政治的) 홍보책자(弘報冊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통 예언 론인 격암유록(格菴遺錄) 등의 소중한 것은 그 내용이 현현묘묘(玄玄妙妙)한 진리(眞理)인 것과 그 분량이 엄청나게 방대(尨大)하다는 것 이외에도 이 땅에 어떤 외래정신(外來精神)이 들어왔어도 고유(固有)한 정통정신(正統精神)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그때마다 항상 있어 왔다는 것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며 우리 고유의 정신이 갖는 생명력(生命力)은 영원(永遠)하다는 것을 명백(明白)하게 증명(證明)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사(國史)를 편찬하는 위원님들 어느 부처에서 관장하는지는 잘 모르
지만 사대주의(事大主義) 역사학자(歷史學者)나 친일역사학자(親日歷史學者)
는 일제히 정리(整理)하고 역사(歷史)를 다시 쓴다는 신념(信念)으로 인력 구
성(人力 構成)을 전면적(全面的)으로 개편(改編)해야 합니다.
반대로 사대주의(事大主義) 역사학자(歷史學者)와 친일역사학자(親日歷史學者)들이 주장하는 자료(資料)를 제출(提出) 받아서 입증(立證)하도록 추궁(追窮)하고 입증(立證)된 자료(資料)에 대한 사실성(事實性)을 확인(確認)할 수 있은 타당성(妥當性)을 모든 국민에게 공개토론으로 검증받거나 새로 쓰는 역사서에 주장에 대한 주서(注書)를 달아서 역사적(歷史的)으로 사형(史刑)을 시켜야 합니다.
한 때 KBS에서 한단고기(桓檀古記)대한 역사스페시얼을 추적하고 저 했으나 친일사학자(親日史學者)와 사대주의(事大主義) 사학자(史學者)들의 만류로 무산 됐다는 뉴스를 접한바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들이나 친일파(親日派)는 현재까지 잘 살고 잘 배우고 자자손손(子子孫孫)이 대를 이여 잘 유지하고 있는데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이 위험(危險)에 처 했을 때 몸을 바쳐 외세와 싸워온 애국충신(愛國忠臣)과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의 후손(後孫)들은 지금까지도 상대적(相對的)으로 정당(正當)한 대우(待遇)를 못 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보훈처는 주무부서(主務部署)로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의 후손들에 대한 법적으로 보호 할 수 있는 사전에 준비도 없는 자들이라면 그네들의 과거 3대까지는 친일파세력(親日派勢力)의 후손이 아닌지 추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며 태만성(怠慢性)인지 고의성(故意性)인지 추적하여 무엇인가는 공개적으로 처벌해야 합니다.
그래서 위정자(爲政者)들은 청산해야할 과거사를 청결을 못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애국(愛國)과 충성(忠誠)을 강요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고, 국토방위(國土防衛)를 위한 자기 생명을 담보한 병역의무(兵力義務)인데 외국의 외인부대(外人部隊)에 준(準)하는 용병(傭兵)을 쓴다는 당위성(當爲性)으로 정당(正當)한 인건비(人件費), 아니 보수(報酬)를 주어야 하며 그 재원(財源)은 국방(國防)으로 얻어진 대기업(大企業)을 비롯하여 부유세(富有稅)와 안락세(安樂稅)을 신설하여 별도 회계로 관리하는 국민부담(國民負擔)으로 창출(創出) 돼야 할 것입니다.
돈 많은 부호(富豪)들이 부동산 투기를 하는 자체가 국토방위(國土防衛)로 국가(國家)가 안정(安定)을 취할 때만이 재산가치(財産價値)가 상승(上昇)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요즘 대체근무(代替勤務) 아니 대체국방의무(代替國防義務)의 방편으로 거론 되고 있는데 외인부대(外人部隊)의 창설(創設)하는 경비부담금(經費負擔金) 명목으로 대체방법을 고려하고 인력충족(人力充足)은 해외 거주하는 동포들 중에서 적당한 노동대가(勞動代價) 와 생명보험금(生命保險금)에 가입부담금(加入負擔金)을 18~24개월간 내에서 충족할 수 있는 병력면제(兵力免除) 부담금(負擔金)으로 선납징수(先納徵收)할 수 있는 사항도 검토 대상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병력의무를 회피하기위해서 가진 방법으로 부정의 형태만 양산하기 때문에 퇴로를 차단보다는 퇴로를 열어주는 방법을 택하여 상호 이익이 되는 방법으로 유도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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