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이상재 ▒

월남(月南) 이상재선생의 육성을 담은 녹음테이프

천하한량 2007. 2. 6. 05:55

월남(月南) 이상재가 '조선 청년에게 고하는' 육성녹음 테이프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1850~1927)의 육성을 담은 녹음테이프


자 료 내 용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1850~1927)의 육성을 담은 녹음테이프이다. 이상재는조선 말기 사회운동가이며, 종교인으로, 1856년 사숙에 입학하였다. 1881년 박정양의 추천에 의해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개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884년 우정국주사가 되었으나 갑신정변의 실패로 낙향하였다. 1887년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가 되자 1등서기관으로 수행하였다. 이 때 신교육제도를 창안하여 사범학교?중학교?소학교?외국어학교를 설립하였다. 1896년 서재필(徐載弼)?윤치호(尹致昊) 등과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만민공동회를 개최하고 척외와 황권확립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 1898년 정부 탄압과 황국협회의 방해로 독립협회가 해산되자 낙향하였으나, 1902년 개혁당사건으로 구금되어 복역중 1903년 기독교신자가 되었다. 1904년 석방된 뒤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에 가입하여 청년운동과 민중 계몽에 힘썼다. 1914년 전국학생YMCA를 망라하여 조선기독교청년회전국연합회를 조직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때 모든 민간단체의 해산에도 불구하고 YMCA만은 계속 유지되어 1919년 3?1운동의 발판이 되었다. 3?1운동 때 구금되었으나 6개월만에 풀려난 뒤 YMCA운동을 통하여 민족운동을 주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