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카드빚 수천..53세 가장은 결국 파산했다
CBS노컷뉴스 김태헌 기자 입력 2021. 01. 03. 07:03 수정 2021. 01. 03. 14:03 댓글 1364개news.v.daum.net/v/20210103070305459
코로나19가 파고든 지갑, 회생법원 찾은 사람들
노부모와 형제 홀로 부양하던 50대 가장
코로나19로 수입원 끊기자 카드빚 상환 포기
"우울감에 죽음까지 생각..마지막 파산 신청"
코로나 이후 개인파산 급증.."더 심각해질 수도"
연합뉴스
머리는 헝클어졌지만 옷차림은 말끔했다. 53살 홍모씨를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회생법원의 한 법정 앞에서 만났다. 회생법원을 찾는 사람은 대개 두 부류다. 빚 진자와 빚 받을 자.
홍씨는 빚을 진 경우다. 그는 꽤 많은 빚을 졌다. 수년 전부터 공사장 막노동부터 배달, 아르바이트까지 닥치는대로 일을 하며 80대 노부모와 두 아들을 부양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홍씨 지갑 속 카드가 만들어 낸 빚덩이는 점점 커졌다.
◇평범한 자영업자이던 홍씨는 왜 빚쟁이가 됐을까
사실 홍씨는 한때 돈 좀 만지던 사장님이었다. 1995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던 그의 호프집은 일평균 매출이 200만원일 정도로 장사가 꽤 잘 됐다. 소아마비를 앓던 아내와 단둘이서 일군 첫 가게에는 문턱이 닳도록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사업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그 일대 거리를 관리하던 깡패와 파출소 경찰들 주머니로 다달이 적잖은 돈이 들어갔다. 설상가상 IMF 구제금융 사태까지 터지며 홍씨는 결국 가게를 접었다.
그 이후 홍씨 부부는 작은 25인승 셔틀버스 하나로 밥벌이를 했다. 홍씨는 "버스를 몰며 매달 250만원씩 벌었다. 다달이 조금씩 마이너스가 생겼지만 생활에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홍씨의 버스가 멈춘 건 지난 2015년 정부의 법 개정 때문이었다. 셔틀버스 내에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영업 허가 등을 받는 등 자가용 유상운송 등록제가 실시된 것이다. "영업용 노란 넘버(번호판)를 달려면 7천만원이 든다는데 어떻게 바꿔요. 그래서 8백만원인가에 (차를) 팔아버렸죠."
◇"영세민인데 신용이 좋다고? 먹고살려니 카드 못 멈춰"
버스를 판 뒤 홍씨는 주로 막노동을 했다. 공사장에서 쥐는 돈이 적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부모의 병간호와 고등학생 두 아들을 부양하기 충분한 돈은 아니었다. 생활고 끝에 첫번째 이혼을 하고, 그다음 맞은 아내도 2년 만에 홍씨를 떠났다고 한다.
재작년쯤 오른쪽 어깨가 망가진 뒤로 집안 사정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아버지는 췌장암,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나마 받던 정부 지원금 액수마저 줄었다.
돈이 없어도 먹고사는 삶의 시계는 계속 돌아갔다. 홍씨가 사용한 카드는 모두 3개. 정신을 차렸을 때 카드빚은 4300만원이 돼 있었다고 한다.
"나는 영세민인데 카드는 계속 발급되고 사용도 되더라고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신용등급이 3~4등급으로 좋은 편이었거든요. 카드사가 나한테 (발급) 해주면 안 되잖아요. 내가 돈이 없는데 카드를 쓸 수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스마트이미지 제공
◇코로나19 할퀸 삶, 카드 빚 상환 포기 결정
감당할 수 없게 불어버린 카드빚에 홍씨는 죽음을 생각했다. 코로나19 위기로 일용직 자리마저 끊긴 홍씨는 이내 재기에 대한 희망을 내려놓고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21살, 20살 아들을 생각할수록 우울감은 깊어졌다.
"아들이 최근 일을 시작했는데 그 돈마저 카드사에서 가져갈까봐 덜컥 두렵더라구요. 그래서 죽으려고 했는데…."
죽음의 문턱에서 홍씨가 돌아서게 된 건 우연히 접한 유튜브 동영상 덕이었다. 동영상을 통해 파산면책이라는 제도를 알게 된 홍씨는 지난 7월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홍씨에게 파산 이후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어깨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할 돈이 없어요. 하루라도 빨리 어깨 수술을 받고 다시 돈을 버는 게 꿈입니다"고 말했다.
◇작년比 파산 10% 급증…"경기불황 장기화하면 더 심각"
홍씨 사례처럼 코로나19 사태로 소득절벽에 놓인 사람들 중 적잖은 이들이 파산을 선택하고 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 법원에는 총 4만5631건의 개인파산 신청이 접수됐다. 전년 같은 기간(4만1717건)보다 9.3%(3914건) 늘어난 수치다. 2016년 이후 최대 규모다.
서초동의 한 파산 전문 변호사는 "파산이 인용되면 다행이고, 반대로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파산 신청이 기각되는 경우도 많다. 경기 불황이 길어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CBS노컷뉴스 김태헌 기자] sia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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