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ㆍ80년대 고도성장기와 비교하면 한국 경제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부족해졌다. 미래가 좀처럼 밝지 않은 한국을 떠나 경제ㆍ정치적으로 안정된 곳에서 살고 싶다.”
지난 5일 서울시 역삼동 신한아트홀에서 열린 미국 투자 이민 설명회에 참석한 은퇴 사업가 김모(60)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설명회는 미국 영주권에 관심 있는 30명만 초청한 행사였지만 예상보다 참석자가 더 몰려들어 보조 의자를 가져다 좌석을 더 만들어야 했다.
최근 서울 강남권 호텔 등에선 매주 이민 설명회가 열린다. 투자 이민을 공부하는 자산가가 늘면서 부산ㆍ제주도 등지로 설명회 붐은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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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는 물론 70대 고령층도 '보험'들듯 이민티켓 구입
이민을 저울질하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미국행 투자이민(EB-5)이다. 해외이주알선업체인 고려이주공사의 정이재 이사는 “영어점수나 투자액 등을 점수로 매기는 캐나다ㆍ호주와 달리 미국은 50만 달러(약 6억원)를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면 비자를 받을 수 있다”며 “더욱이 다음 달 21일 최소 투자금액이 90만 달러로 오르기 전에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 비자 발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이민 비자를 발급받은 한국인은 1년 전보다 배이상 늘어난 531명이다. 한국은 중국과 베트남, 인도에 이어 투자이민 발급 국가 4위다.
요즘 자산가들에게 투자 이민은 ‘제2의 인생보험’이다. 과거 40ㆍ50대가 유학 등 자녀 교육을 위해 영주권을 땄다면 요즘은 60ㆍ70대 고령층부터 20대 젊은 세대까지 불안한 미래를 대비해 언제든지 한국을 떠날 수 있는 티켓(영주권)을 사려고 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이모(62)씨는 “열심히 돈을 벌고 세금도 잘 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점점 돈 있는 사람을 홀대하는 거 같아 이민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60대 참석자는 “가족끼리도 (진영 논리에 따라) 갈라서게 하는 지금의 정치 상황이나 한국의 미세먼지를 피해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얘기했다.
이민에 따른 비용 부담이 크다보니 20대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 이민을 떠난다. 한마음 이민법인의 이소연 부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으로 미국의 취업이민 문턱이 높아지자 투자 이민으로 방향을 튼 젊은이들이 꽤 있다”며 “부모로부터 투자금을 증여받는 방식으로 취업을 위한 투자 이민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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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ㆍ증여세 없는 캐나다ㆍ싱가포르도 인기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해외 이주자가 선호하는 행선지는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다. 영어권 국가로 상속ㆍ증여세가 아예 없거나 면제 한도를 높이는 정책을 쓰는 국가들이다.
국내 사업가들이 선호하는 싱가포르 역시 상속ㆍ증여세가 없다. 싱가포르 부동산 컨설팅사 ERA의 최정원 부장은 “최근 한국인 사업가가 싱가포르에서 영주권을 따기 위한 비용이나 자격요건이 까다로워졌지만, 이민을 위해 부동산을 사고 싶다는 문의는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취업ㆍ맑은 공기 찾아 유랑하는 ‘글로벌 노마드족’ 등장
유원인터내셔널의 조현 대표는 “투자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아예 한국을 떠나는 게 아니라 교육ㆍ취업 목적에 맞게 세계 각국으로 잠시 주거지를 옮기는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에는 아예 이주한 사람도 있지만 철 따라 머물다 가는 사람도 많아졌다”면서 “봄에는 한국의 미세먼지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여름과 겨울에는 자녀의 영어교육을 위해 ‘한 달 살기’를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글로벌 노마드족의 증가 역시 이들이 느끼는 한국 사회나 제도에 대한 불만과 불안,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과 관련이 있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민을 고민하고 있지만 따져야 할 것도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민지로 고려하는 해당국의 제도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이다.
강동관 이민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투자 이민은 투자금에 따라 100만 달러(직접투자 이민)와 50만 달러(간접투자 이민)로 나눌 수 있는데, 50만 달러 투자 가능지역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이 많다”며 “투자한 회사가 고용 효과를 내지 못하면 영주권이 나오지 않는 만큼 이주알선업체에만 의존하지 말고 직접 절차 등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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