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 숙제는 고사리를 먹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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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정벌하자 천하가 주나라를 받들었다. 상나라 정벌에 반대하던 백이와 숙제는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며 수양산에 은거하여 고사리[薇]를 캐어 먹다가 굶어죽었다. 『사기』 「백이열전」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로 인해 백이와 숙제, 그리고 고사리는 절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조선 후기 박물학자 유희는 『사기』에 기록된 ‘미(薇)’의 실체를 파고들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 공영달의 『모시정의』, 육기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 주희의 『시집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미’는 고사리가 아니라 들완두라는 결론을 내렸다. 방증도 제시했다. 산에 숨어 사는데 먹을 것이 없으면 풀보다는 열매 종류부터 찾아먹는 게 순서다. 백이 숙제가 은거한 지 3년이 지나도록 멀쩡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풀만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은나라가 멸망한 때는 한겨울이니, 산속에 고사리 따위는 없었다는 게 유희의 주장이다.
백이 숙제가 먹은 풀이 고사리가 아니라는 유희의 주장은 신선하다. 대부분의 조선 문인들은 ‘미(薇)’를 고사리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는 순전히 주자 탓이다. 주자는 『시집전』에서 “미는 궐(蕨 고사리)과 비슷한데 조금 크고 가시가 있으며 맛이 쓰다.[薇似蕨而差大, 有芒而味苦]”라고 풀이했다. 주자의 풀이는 호인(胡寅, 1098~1156)의 해석을 따른 것인데, 『시집전』은 『시경』 이해의 필수 텍스트였으니 ‘미’가 고사리로 굳어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러한 믿음에 바탕하여 조선 사신들은 중국 영평(永平)에 있는 백이와 숙제의 사당 청성묘를 지날 때면 고사리로 국을 끓여먹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여러 연행록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한번은 고사리를 챙겨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를 맞은 음식 담당 하인이 백이 숙제를 원망하며 말했다. “죽으려면 그냥 죽을 것이지 하필 고사리를 캐 먹어서 내가 매를 맞게 만드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고증적 학문 태도가 유행하면서 굳어진 해석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薇)’가 고사리가 아니라는 주장은 유희만의 견해가 아니다. 이미 1613년 간행된 『시경언해』에서는 면마과에 속하는 ‘회초미’로 풀이했고, 『재물보』와 『광재물보』에서는 유희와 마찬가지로 들완두로 풀이했다. 각종 농서(農書)와 의서(醫書)를 보아도 조선 문인들이 ‘미(薇)=고사리’라는 오류를 무작정 답습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들을 바보 취급하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문헌에 등장하는 모든 ‘미(薇)’를 들완두로 간주할 수도 없다. 물명(物名)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달리 사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물명이 서로 다른 사물을 가리키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이러한 현실이 ‘물명고(物名攷)’라는 저술을 낳았다. 한자 물명을 한글로 풀이한 물명고는 문헌에 나타나는 물명과 실제 사물과의 간격을 해소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문헌을 볼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역관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이 중국에 가면서 후박(厚朴)이라는 약재를 십여 바리나 싣고 갔다. 책문(柵門)을 통과하자마자 중국 상인을 만나 흥정하니 값을 몇 배로 쳐주기로 했다. 하지만 조수삼이 가져온 후박을 본 중국 상인은 말을 바꾸었다. “이건 무슨 나무 껍질인가? 후박이 아니다.” 조수삼은 굴하지 않고 북경까지 후박을 가져갔다. 북경 상인들이 웃으며 말했다. “이게 무슨 물건이길래 여기까지 가져왔소?” 조수삼이 후박이라고 하자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버렸다. 누군가가 진짜 후박을 가져왔다. “이것이 후박이오.” 중국의 후박은 자작나무 껍질처럼 얇고 매운 맛과 향이 나는 것이 계피에 가까웠다. 조선의 후박과는 판이했다. 조수삼은 힘들여 북경까지 가져간 후박을 전부 내다버렸다. 원가에 운송비까지 합치면 손해가 막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과 조선의 물명이 서로 달라 빚어진 에피소드다.
고사리를 삶아먹던 들완두를 삶아먹던 상관없지만, 약재의 명칭을 잘못 풀이하여 엉뚱한 약재를 사용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다. 의학서에 실려 있는 수많은 약재의 실체를 일일이 검토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고문헌에 실려 있는 이른바 ‘전통 지식’을 이용하려면 물명이 지칭하는 사물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 국립생물자원관 등이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고문헌을 전문적으로 연구, 번역하는 이들은 관심이 부족해 보인다. 고전의 현대화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갈 길이 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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