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를 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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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수가 29세가 되던 해 겨울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이다. 1617년 인목대비(仁穆大妃)에 대한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그는 세자익위사 세마를 사직하고 자신이 태어난 여강(驪江)으로 돌아가 지내게 된다.
벼슬을 그만두고 궁벽한 시골에서 지내는 사람에게 겨울밤의 모진 눈보라를 뚫고 찾아올 이 그 누가 있을까. 하지만 병들어 누워 있는 그에게는 그것이 서운한 일이었나 보다. 그의 그러한 마음은 소한 앞에서 더욱 움츠러들게 된다. 한동안 연달아 이어지는 겨울 추위는 모진 매를 계속해서 맞는 것처럼 아무리 겪어도 두려운 대상이다. 게다가 지금도 충분히 추운데 한 해 중 가장 추운 절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의 심정을 알 만하다. 또한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그의 시각과 촉각을 어둠과 추위로부터 겨우 지탱해주고 있던 등불과 화롯불은 거의 꺼지려고 하기까지 한다.
지금 그의 세상은 온전히 겨울이다. 그가 지내고 있는 시골집은 그의 나이 26세에 별세한 선친과 함께 보냈던 유년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곳이다. 집안 곳곳마다 선친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을 터이다. 또한 20세에 진사시에 급제한 후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벼슬을 하다가 처음으로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이제 그에게 그가 처한 시공간은 다른 사람들의 세상과는 유리된 별개의 고독한 적막의 시공간이 된다. 그 시공간 속에 갇혀 절망하고 있는 어느 순간 그의 눈에 막 창 밖에서 꽃봉오리를 툭 틔운 매화가 들어온다. 매서운 한기 앞에 온갖 물상들이 힘을 잃은 천지에서 기특하게도 자신의 힘으로 꽃을 피운 매화를 본다. 미미하지만 장엄한 그 사실 앞에 그는 갑자기 어떤 힘을 얻는다. 그것은 어쩌면 잊고 있던 봄에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그의 세상이 온전히 봄이 되는 희망 말이다.
이 세상에 처음 겨울이 생기고 매화가 존재했을 때부터 매화는 언제나 모진 추위를 견디고서 기어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왔다. 천지가 없어지고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국 이 세상의 추위를 견뎌야만 한다. 그렇다면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서 모든 꽃 가운데 가장 먼저 피는 매화의 기상을 우리가 닮아보는 것은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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