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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고 '술시'에 몸이 반응하면 "알코올중독 신호"

천하한량 2019. 1. 26. 21:18

반복ㆍ과다 음주로 뇌 ‘감정중추’ 손상돼

주변 경고 받고 필름 끊기고 ‘혼술’도 불사

게티이미지뱅크./2019-01-25(한국일보)

새해 달력 한 장이 넘어간다. 새해가 되면 ‘술꾼’들은 “올해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미 술 때문에 돈과 몸도 버리고, 망신을 당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새해가 될 때마다 굳은 다짐을 하지만 ‘술’과 이별하기 쉽지 않다.

인간의 뇌는 고위중추, 감정중추, 생존중추로 나뉜다. 알코올중독과 관련이 있는 곳은 감정중추다. 감정중추의 주요 부분인 변연계에는 ‘보상회로’가 있다. 보상회로가 자극되면 쾌락과 기쁨 등이 유발되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알코올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보상회로가 과도하게 자극을 받아 술을 더 많이 자주 마시게 된다. 뇌의 조절능력이 상실된 것이다.

또 우리 뇌는 외부환경에 적응하는 특성이 있는데 음주를 하면 할수록 뇌가 술의 효과에 무뎌진다. 이전과 같은 음주효과를 얻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더 자주 많이 술을 마셔야 한다. ‘내성’이 생긴 것이다.

오랫동안 술을 즐기던 사람이 큰마음을 먹고 술을 줄이거나 끊으려 해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금단현상 때문이다. 알코올은 중추신경을 진정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술을 갑자기 끊으면 알코올의 진정효과가 사라져 변연계가 흥분해 불안, 초조, 불면 등 금단현상이 발생한다. 금단현상으로 인한 고통을 참지 못해 결국 다시 술을 마시게 된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중독포럼 상임이사)는 “실제 술과 관련한 사진을 보여줬을 때 정상인의 뇌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알코올 중독자의 뇌는 쾌락에 작용하는 보상회로가 활성화돼 강하게 반응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를 수 없이 외치지만 중독이 진행됨에 따라 억제능력이 계속 저하돼 알코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알코올중독자가 술 관련 사진을 보았을 때 대뇌 반응 : 술과 관련된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오른쪽의 사진과 같이 정상인의 뇌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왼쪽에 있는 알코올 중독자의 뇌는 보상회로가 강하게 반응한다. 자료 : 중독포럼 제공

◇우리 몸이 반응하는 ‘위험신호’ 인지해야

알코올 중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알코올 중독이 진행되고 있는 ‘위험신호’를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계성 인천참사랑병원 중독치료재활센터장은 “가족, 지인들로부터 술을 그만 마시는 것이 좋겠다는 경고를 들었다면 알코올 중독을 의심해야한다”며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겨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리 몸은 술에 취하면 쾌락중추를 통해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게 하는데 이 기능이 손상되면 자신이 얼마나 술을 마시는지 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술을 마셔 결국 필름이 끊기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술시(음주하는 시간의 속어) 만 되면 술 약속을 만들고 있다면 알코올 중독에 가까워졌다고 봐야 한다. 이 센터장은 “전날 과음을 해도 술꾼들은 오후 6시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카톡으로 술 상대를 찾아 술 약속을 잡는다”며 “’술시’ 때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다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술을 마시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이 정도가 되면 애주가에서 알코올중독으로 가는 강을 건넜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요즘 대세인 ‘혼술’도 문제다. 이 센터장은 “연령에 관계없이 혼술을 즐기는 이들 중에는 이미 술을 마시고 반복적으로 실수를 범해 타인과 술자리를 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혼술은 남들과 마시는 술보다 취기가 빨리 올라 알코올이 주는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회식 후 자기만 남아 술을 마시거나 회식 때 마신 술이 부족해 귀가 때 술을 사들고 간다면 알코올 중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이 센터장은 말했다.

전문가들은 애주가에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기까지 남성은 10~15년, 여성은 5년 정도 소요된다고 말한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방이 많고 알코올에 민감해 남성보다 빨리 중독에 이른다.

이 센터장은 ”알코올에 중독되면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 경제‧사회적 지위가 무너져도 술에 집착해 삶이 비참해지기 때문에 위험신호가 왔을 때 힘들어도 삶을 개선해야한다“고 말했다.

이해국 교수는 ”우리 사회는 서로가 알코올 중독자를 만들고 있는 사회“라며 ”술로 인해 응급실을 찾았거나 알코올 간질환 등 알코올 관련 질환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