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걸어온 길
“제가 대통령이 되면 공평과 정의가 국정운영의 근본이 될 것입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19대 대통령 당선자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2년 9월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공평’과 ‘정의’를 국정운영의 근본으로 꼽았다. 그는 그러나 2012년 18대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2017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의 공평과 정의가 뿌리째 흔들리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로 치러진 조기대선에서 제19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문 당선자는 지난 4월 두 번째 대선 출마 선언에서 “상식이 상식이 되고 당연한 것이 당연한 그런 나라가 돼야 한다. 정의가 눈으로 보이고 소리로 들리며 피부로 느껴지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또다시 정의를 외쳤다.
◆거제의 가난한 소년, 인권변호사로
문 당선자는 1953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문 당선자의 유년 시절을 관통하는 기억은 ‘가난’이다.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그의 부모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피란 와서 그를 낳았다. 문 당선자의 아버지가 장사에 실패하자 그의 어머니가 거제에서 부산까지 걸어가서 달걀을 내다 팔고, 연탄배달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문 당선자는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의 연탄 리어카를 끌다 길가에 처박기도 하고, 부산 영도 신선성당에서 나눠 주는 구호식량을 받기 위해 양동이를 들고 긴 줄을 서야 했다. 문 당선자는 자서전에서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이라며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썼다.
문 당선자는 가난 속에도 부산의 명문 경남중·고에 진학했다. 가난한 형편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학교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학업보다는 역사책을 읽거나 ‘사상계’ 같은 사회비평지를 읽는 데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사회에 대한 반항심으로 고3 때는 술·담배에 손을 대 정학을 당하기도 하고 ‘문제아’라는 별명도 얻었다.
문 당선자는 재수를 해 경희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는 1974년 유신반대 시위로 체포돼 구류처분을 받고, 이듬해 다시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과 동시에 학교에서도 제적당했다. 석방되자마자 강제 징집당하며 신체검사통지서와 입영통지서를 받아든 그는 훈련소를 거쳐 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에 배치됐다. 문 당선자는 폭파과정 최우수,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으며 ‘군대 체질’로 통했다고 한다.
제대 후 사법시험을 준비해 1차 합격했고, 1980년 ‘서울의 봄’ 때 복학했다. 그러나 5·18 하루 전날 반독재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다시 구속된다. 문 당선자는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사시 2차 합격 소식을 들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원하던 법복을 입지 못했다.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부산으로 향했다.
◆노무현이라는 ‘운명’과의 만남
문 당선자는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운명’으로 기억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노 전 대통령의 첫인상을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 같은 게 있었다”고 썼다.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동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다. 부산지역 인권·시국·노동사건들을 도맡다시피 하며 동지 관계로 발전했다. 노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문 당선자는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하며 노동·환경운동단체 등과 연대했다. 문 당선자는 “일이 많아 힘들었지만 내 삶에서 가장 안정된 시기”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2002년 대선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부산선대위원장을 맡은 문 당선자를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신뢰하고 존중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뒤 문 당선자에게 청와대 민정수석을 부탁했다. 문 당선자는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 “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고 수락했다. 문 당선자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1년 동안 일하며 이가 10개나 빠져 임플란트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업무시간 이외엔 직접 차를 몰고 대중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비행기나 기차는 늘 일반석을 이용했다. 문 당선자를 두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간 털어도 먼지 안 난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다.
문 당선자는 격무로 인한 건강악화로 1년 만에 사표를 내고 히말라야로 떠났지만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곧장 귀국해 대리인단 간사 변호인을 맡았다. 탄핵 재판이 끝나고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한 문 당선자는 2005년 1월 다시 민정수석으로, 2007년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노무현정부의 출범부터 마감까지 함께했다.
◆‘운명적’ 대선 출마와 쓰라린 패배
문 당선자는 2009년 5월23일을 “내 생애 가장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던 날”로 기억한다. 이명박 정권의 타깃이 돼 검찰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 문 당선자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상주가 됐다.
문 당선자는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시민사회 인사들과 ‘혁신과 통합’을 구성해 야권 통합운동을 펼치며 정치의 길에 뛰어들었다. 그는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두 분의 연이은 서거와 국민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며 노무현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책임감을 느꼈다. 견디기 어려웠고 나를 결단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2012년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마해 당선된 뒤 “정치인 문재인은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서겠다”며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다. 문 당선자는 2011년 펴낸 자서전 ‘운명’ 마지막 문장에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썼다.
“나뭇가지에 앉아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새. 그러나 그 새는 한 번 날면 하늘 끝까지 날고, 한 번 울면 천지를 뒤흔듭니다.” 문 당선자는 2012년 6월17일 ‘불비불명(不飛不鳴)’ 고사를 인용하며 18대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그는 연설문에서 “그동안 정치와 거리를 둬 왔다”며 “더 이상 남쪽 나뭇가지에 머무를 수 없었다. 이제 저는 국민과 함께 높이 날고 크게 울겠다”고 말했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소신을 뒤집고 대선에 출마하기까지의 개인적 고뇌, 노무현정부의 실정이 2007년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는 비판 속에 ‘폐족’을 자처했던 친노진영의 비애가 담겼다.
문 당선자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진통 끝에 야권 단일 주자가 되어 박근혜 후보와 맞붙었다. 문 당선자는 야권 대선후보 역대 최고 득표수 1469만표, 최고 득표율 48.02%를 기록했지만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9대 대선 투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에서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제원기자 |
◆광화문광장에서 ‘광화문 대통령’으로
문 당선자의 대선 패배를 두고 ‘권력의지’ 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의지가 아닌 운명에 이끌려 대선에 출마했다는 자성과 함께 ‘정치적 공백기’를 가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두고 여야의 대치가 극한으로 치닫던 시기 문 당선자는 광화문광장으로 향해 ‘유민아빠’ 김영오씨와 동조단식을 했다. 당내 의원들로부터도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 좌장이 장외 강경투쟁을 주도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열흘 넘게 단식을 이어갔다. 문 당선자는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이 모든 국민의 고통이 (우리가) 정권을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절망에 빠진 국민을 구하기 위해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문 당선자는 그해 12월 당대표직에 출마하며 ‘승부수’를 던진다. 그는 “당대표가 안 돼도, 당대표가 돼 당을 살리지 못해도, 총선 승리를 못해도 어떻게 대선후보가 될 수 있겠느냐. 사즉생, 죽기를 각오하고 나섰다”고 했다. 당대표에 선출된 이후에는 비주류 진영의 공세와 재보궐선거 패배 등을 고리로 한 사퇴 압박을 버텨내고,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인재 영입과 ‘10만 온라인당원’을 모으며 당내 입지를 확고히 했다.
문 당선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이 불거지자 또다시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문 당선자는 지난해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운동에 나서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대한민국은 과거와 결별하고 국가를 대개조하는 명예혁명에 나서야 한다. 부패와 특권을 대청산하고 ‘흙수저’ ‘금수저’가 따로 없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외쳤다. 문 당선자는 촛불민심을 받드는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전면에 걸고 조기대선 국면을 주도했다.
문 당선자는 “세종대왕의 개혁과 민생, 이순신 장군의 안보와 애국, 1700만 촛불 염원 가득한 이 광화문에서 문재인이 만들 제3기 민주정부의 꿈을 말하겠다”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상식과 원칙이 바로 선 나라,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약속했다. ‘위대한 국민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문 당선자의 여정이 이제 시작됐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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