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ㆍ가족의 족쇄가 된 돌봄
■ 아이 돌봄, 경력 단절의 시작
대기업 고객센터 직원으로 일하던 이미진씨(36·가명)는 3년 전 첫아이를 낳으면서 퇴직하고 ‘돌봄 전담자’가 됐다. 이씨의 24시간은 한시도 숨돌릴 수 없을 만큼 촘촘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큰아이(3)를 먼저 챙겨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직 돌이 안된 둘째의 이유식과 기저귀, 놀이를 챙긴다. 둘째가 잠들면 청소와 빨래 같은 밀린 집안일을 할 시간이다. 둘째가 잠에서 깰 때까지만 집안일을 할 수 있어 서둘러야 한다. 둘째가 깨서 칭얼대고 놀다 다시 잠들면 오후 2~3시, 그제야 첫 끼니를 먹는다. 오후 4시 첫째가 집에 돌아오면 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아이들을 씻기고, 간식을 먹이고, 첫째와 둘째를 동시에 챙기다 보면 어느새 저녁시간이 된다. 오후 9시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이 돌아오면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다.
30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집안에 돌봄 전담 노동자가 필요해진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든, 입주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든, 양가 부모에게 의존하든 ‘손’이 필요하다. 맞벌이 부부들이 딜레마에 빠지고 여성 경력단절이 시작된다. 지난해 말 출산휴가 직후 회사 사정으로 잠시 복직했다가 최근 육아휴직에 돌입한 최수현씨(30·가명)는 휴직 중인 직장에 앞으로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이다. 부부 둘 다 일할 때는 파김치가 된 몸으로 퇴근한 뒤 집안일과 육아를 부부가 나눠 했지만, 최씨가 일을 쉬면서 부부가 모두 한결 편해졌기 때문이다.
박지연씨(35·가명)는 최근 두 돌이 지난 아이를 돌보기 위해 10여년간 일한 회사를 그만뒀다. 입주 베이비시터에게 월 230만원을 꼬박꼬박 주면서 회사를 다니는 게 오히려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게 여겨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이 돌봄은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해도 끝나지 않는다. 우는 아이에게 밥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놀아주는 것뿐 아니라 하교한 아이의 간식과 준비물을 챙겨주고 숙제를 봐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다.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시키거나 ‘학습 시터’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돌봄 공백을 채우는 것도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정부는 2014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을 시작으로 방과후 돌봄교실 사업을 시작했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 일상 무너뜨리는 전쟁 같은 간병
나혜진씨(37·가명)는 아픈 부모와 함께 살며 큰언니(45), 작은언니(42)와 함께 간병을 도맡고 있다. 나씨의 어머니(72)는 4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시력이 많이 떨어졌고, 잘못하면 넘어지기 때문에 혼자 있을 수가 없다. 나씨가 직장에 간 낮시간에는 아버지(75)가 어머니를 돌봤지만, 지난달 아버지가 목디스크 수술을 받게 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아버지가 입원한 뒤 낮시간에만 머무르던 주간보호시설에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맡겨진 어머니는 면역력이 떨어져 열이 펄펄 끓다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가기까지 했다. 세 자매는 매일 퇴근하자마자 부모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왔고 돌아가며 휴가를 썼다. 나씨 큰언니는 급기야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업무시간을 줄이기까지 했다. 병원비를 대느라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나씨는 “매일 8~9시가 돼야 퇴근하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모님 간병과 회사일을 병행하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나와 언니들 모두 결혼하지 않았기에 부모님을 돌볼 수 있었지, 결혼을 해서 돌봐야 할 아이가 있는 집은 부모님이 편찮으셔도 간병을 하기조차 어려운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국 한 달 뒤 아버지가 무리해서 퇴원하고 나서야 한 달간의 전쟁 같은 간병이 일단락됐다.
정부는 노인과 노인성 질병 환자들을 위해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나씨 어머니도 뇌졸중 진단 후 장기요양 5등급 판정을 받아 주간보호서비스를 받으면서 가족들이 부담을 크게 덜었다. 월 20만원가량의 본인부담금만 내면 주간보호시설에서 낮시간에 어머니를 돌봐드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말 기준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는 전체 노인 중 7%에 불과하다. 김종욱씨(45·가명)의 어머니(82)는 6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누나와 함께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어머니를 간호했다. 상태가 호전되고 어머니도 집으로 돌아가길 원해 김씨가 직접 모시기로 했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신청 결과 등급 외 판정이 나왔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가 되면 요양보호사가 가정을 방문하는 방문요양 서비스나 보호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지만 등급이 나오지 않아 서비스가 어려웠다. 그나마 당시 출퇴근시간이 일정한 부서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정시 퇴근해 집에서 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이 가능했다. 김씨가 출근한 낮시간 어머니는 동네 노인복지쉼터에서 시간을 보냈고, 재활치료를 하지 못한 탓인지 몇 달 후 뇌경색이 재발해 다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 노-노 케어, 고독사 ‘암울한 미래’
더 나이들면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 최정순씨(71·가명)의 남편(72)은 지난해 가을 간암 수술을 받았다. 장성한 삼남매가 있지만 모두 맞벌이를 하거나 어린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형편이라 간병은 최씨가 사실상 전담하고 있다. 2주가량의 입원 기간 동안 6인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생활했고, 통원치료 중인 지금은 병원에 가는 날이면 집에서 2시간 걸리는 서울의 대학병원까지 기차와 택시를 갈아타며 쇠약해진 남편과 동행한다. 최씨도 관절염과 골다공증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오히려 돌봄이 필요한 처지다. 자녀들이 병원비와 생활비 등은 지원해주고 있어 그나마 형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오랜 간병은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낳는다. 특히 최근 노인을 돌보는 가족원이 고령화되고 돌봄부담이 과도해지면서 노인 학대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간병에 지친 보호자가 환자를 살해하는 ‘간병살인’도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지난달 대구에서는 치매를 앓고 있던 남편을 흉기로 찌른 뒤 자살을 시도한 ㄱ씨(72)가 경찰에 붙잡혔다. 1월 인천에서도 치매를 앓던 아내를 남편 ㄴ씨(84)가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치매종합관리대책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국내 치매환자는 64만8000명으로 노인 10명 중 1명꼴이지만 2030년에는 127만명, 2050년에는 27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2015년 기준 치매 진료인원은 45만9000명에 불과해 전체 치매인구의 30%는 병원 치료조차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혼자 사는 노인은 그렇게나마 돌봐줄 사람도 없다. 복지부의 2014년 노인실태조사 결과 독거노인 가구가 생활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간호(37.2%)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심리적 외로움(24.4%)이라는 응답이 두 번째로 많았다.
독거인구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기준 27.3% 수준이지만 2035년에는 이 비율이 45%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2015년 혼자서 죽음을 맞이한 무연고 사망자는 1245명으로, 4년 전인 2011년 693명의 2배 가까이 늘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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