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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누룽지를 먹다니 대단하다

천하한량 2016. 11. 21. 15:23

오마이뉴스손인식 기자]

여행의 즐거움은 음식 맛이 좌우

여백(餘白), 공간이다. 남은 공간이란 뜻도 된다. 그러나 여백이 존재를 위한 공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존재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공간임을 다 안다. 예컨대 글씨는 선을 통해 읽고 새긴다. 그러나 선과 선 사이에 여백이 없으면 선은 곧 꽉 막힌 면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선과 선 사이의 여백은 존재 성립 요소임과 동시에 존재 본질에 관한 소통의 원천이다. 곧 여백이란 존재 자체요 활로다.

 쓸쓸했던, 그러나 희망이 부풀고 있던 스페인 아빌라의 벌판
ⓒ 길동무
약 6천 킬로의 대장정이었다. 길동무 다섯 부부가 이번 여행에서 멈추고 걷고 차로 달린 대략의 거리다. 출발은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 마드리드이고 종착점은 스페인 동쪽 북단의 바르셀로나다. 반도의 중심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내달려 대서양을 만났다. 그 연안을 따라 포르투갈을 거쳐 스페인 남부, 다시 남부를 돌며 지중해의 마중을 받았다. 지중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스페인 서쪽 최북단 카다케스까지 거듭 더듬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뒤로 물러서 바르셀로나에서 종착점을 찍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 국경을 넘어 세비야 향하는 길에 펼쳐진 무한 대지.
ⓒ 길동무
여행이 일상의 여백이라면 여행 중 이동시간은 여행 중 얻는 여백이다. 약 55시간, 길동무가 이번 여행 중 버스 안에서 즐긴 시간이다. 남긴 시간도 허비한 시간도 아닌 살려낸 시간, 탐방한 곳을 되새기는 필요한 시간이었다. 다음 목적지에 관해 예비하는 시간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피곤을 달래는 시간, 때로는 요리가 취미인 가이드 이 선생의 요리강좌를 듣는 시간이기도 했다.

"저는 괜찮은 식재료를 보면 생기가 돌아요. 한식은 물론 스페인 요리하기도 좋아합니다. 한때 일식 조리에 반해 일식집을 운영한 적도 있어요."

스페인은 정말 식재료가 풍부하고 신선한 곳이었다. 식재가 좋으니 음식 맛 또한 손색이 없다. 대부분의 식사 시간이 기대되고 시장기와 상관없이 기다려졌다. 좋은 음식 맛은 여행의 즐거움을 크게 배가한다. 여행 후 평가도 여행지의 음식 맛이 크게 좌우한다.

길동무가 과일과 채소가 생동감 그 자체였던 9년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토바 호수 여행을 즐겨 떠올리는 이유다. 방울토마토와 양배추를 싸서 다니며 먹었고, 브라이(남아공 식 양고기 구이)와 와인이 환상의 조합을 이루던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을 잊지 못하는 것도 풍부하고 맛난 음식들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낯달이 슬펐던 마드리드 근교 콘수에그라 벌판
ⓒ 길동무
스페인 여행은 가기 전부터 음식 부분에서 길동무를 설레게 했던 곳이다. 길동무는 여행 중에도 여건이 될 때마다 좋은 과일과 채소를 발견하면 바로 샀다. 그리고 그것은 이동 시간을 정말 유쾌하게 하고 지루할 틈을 지우는 중요한 요소였다.

맛이 참외의 아름다움을 능가한다(味勝金果美)고 옛 시인이 예찬한 홍시 그리고 단감, 달리는 버스 안에서 쪼갤 수밖에 없도록 유혹을 했던 멜론, 토마토와 오렌지, 그리고 말린 무화과와 밤, 호도 등. 이 모두는 혹시나 해서 준비해간 인스턴트 간식거리들을 모두 되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이동 시간을 잔잔한 감동으로 이끈 것은 무엇보다 이베리아 반도의 풍광이었다. 때로 천천히 때로 급하게 스쳐 지난 차창 밖 풍경, 한반도의 약 2, 7배에 달하는 드넓은 대지가 자아내는 모습은 무한함과 다양함이었다. 산과 바다, 강과 산은 서로를 위한 여백이었으며, 들과 도시와 마을은 하나를 빛나게 하는 다른 하나였다. 그리고 그 모두는 그냥 하나였다.

 끝없이 펼쳐진 스페인 남부 세비야의 포도밭
ⓒ 길동무
숲은 어두웠고 벌판은 드넓었다. 그래서 숲에 드는 것보다 벌판에 서는 것 보다 그렇게 스치는 것이 좋았다. 오직 지평선만 보인 고지대의 평원이 주는 감동, 그래서 다음 목적지는 더욱 빛났다. 가을걷이를 끝낸 빈 벌판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외로움 따위는 거기 한 점도 없었다. 특히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에서 지중해 연안 도시 발렌시아까지 7시간을 달리는 구간이 그 절정이었다.

지역마다 특색을 갖춘 과일들이 종목을 바꿔가며 재배되고 있었다. 그 이전 지역에서 올리브나무와 도토리나무로 대변되던 산하와는 영 딴판이었다. 오랜 옛날 바다의 융기로 솟아난 땅 이베리아 반도, 돌과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땅의 개벽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거기였다. 땅의 원형과 자연스럽게 조응한 것이 올리브 나무와 도토리나무 지대였다면, 그라나다에서 발렌시아 구간은 인간의 의지가 찬란히 꽃핀 곳이었다.

 여행 8일째 이동거리 5시간. 참 많은 시간 갖가지 풍경으로 눈을 씻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 길동무
 유럽의 발코니라 불리는 지중해의 네르하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길. 불쑥 나타난 엽서 속 그림 같은 건강한 과수원과 마을
ⓒ 길동무
관개시설과 복토로 토질을 뒤바꿔버린 땅, 거기엔 인간의 땅을 향한 혁명이 멋진 작품으로 있었다. 거긴 파블로 피카소 큐비즘의 캔버스였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를 향한 집념이 거기 살아있었다. 아니 안토니 가우디의 오직 자연을 사랑한 건축학적 콘셉트가 거기서 맑은 햇볕에 빛나고 있었다.

햇볕만 강할 뿐 물 부족에 시달리는 회갈색 땅이 푸른 옥토로 싱싱하게 펼쳐 있었다. 포르투갈 지역 일부를 재외 한 이베리아 반도 전역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놀라운 생산력을 갖춘 자연 정원 바로 그것이었다. 우주에서 찍은 사진에도 선명히 드러난다던 시설 하우스 지역, 세계 영농관계자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는 그 지역이야말로 지중해 기후의 축복을 축복 그대로 드러낸 곳이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함께 우주 항공사진에도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스페인의 시설하우스 단지
ⓒ 길동무
 스페인 남서부 그라나다에서 발렌시아까지 가는 7시간 내내 종류별로 펼쳐졌던 멜론, 감, 아보카도, 석류, 오렌지 등 많은 종류의 과수원. 달리는 차 안에서 찍은 이 사진은 오렌지 과수원
ⓒ 길동무
대서양과 지중해 연안에 인접한 도시와 마을이 스페인 지역만 약 600여 개라 했다. 그 많고 넓은 지역, 길동무가 꿸 수 있는 머물렀던 곳, 가늠할 수 있는 스친 곳, 지도에 기대 어림할 수 있는 곳을 다 합쳐 얼마나 될까? 지평선 끝 그 너머, 능선과 능선 그 너머는 무엇이 있을까? 눈으로 하얗게 덮였던 산, 3481m로 이베리아 반도에 가장 높은 산 물아센 산록을 따라 어떤 모습들이 펼쳐져 있을까? 

아! 이베리아 반도를 보았다고, 느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순례, 그러므로 이 여행으로 얻어야 할 것은 자기의 길이라든가 자기 발견 따위가 아니리라. 그렇다. 이 여행에서 가져가야 할 것은 겸손이다. 아는 것보다 실제가 훨씬 더 크고 넓으며 아름다운 것, 그것이 깨닫게 하는 것은 오직 겸손이 아닌가. 

 지중해를 바라보고 하나 둘씩 들어서는 하얀 집들
ⓒ 길동무
참 정감 어린 퍼포먼스

"오늘 저녁 식사는 예약이 된 것이 아니므로 특별히 레스토랑을 찾지 않아도 좋겠어요. 그냥 우리에게 맡겨두세요. 마침 숙소도 좀 자유로운 곳이니 좋네요. 이 선생님도 초청할게요. 아까 샀던 과일과 채소도 풍부하거니와 누룽지와 볶은 멸치와 볶은 김치도 있어요."

장마마께서 갈래를 그렇게 잡았다. 길동무가 나름 먹을거리를 준비해간 데는 이유가 있다.

"일행의 나이와 일정을 참작할 때 한국 음식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좀 드실 것을 준비해 오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길동무가 의뢰한 마드리드 여행사 직원의 의견이었다. 직업적 경험과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런 이메일을 보냈을 것이다. 소식을 받은 날은 준비에 촉박한 출발 하루 전날이었다. 그러나 권유를 받고서도 그냥 갈 수는 없잖은가? 부랴부랴 휴대용 작은 밥솥도 사고 고추장도 볶았다. 물론 컵라면 몇 개는 빼놓을 수 없는 메뉴였다. 각 부부가 나름 가능한 부분들을 챙겼다. 믿고 기대는 길동무의 큰손, 큰언니 장마마를 기대하면서.

"밥솥 가져온 사람은 밥해오고, 이 과일 야채 좀 나눠서 씻어 와요. 아 참 누룽지도 가져오고..."

 길동무 여행에는 이렇게 뚝딱 차린 신선한 식탁이 더러 등장한다.
ⓒ 길동무
장소 불문 30여 분이면 뚝딱이다. 그러나 준비된 것은 그야말로 성찬이다. 이미 숟가락 젓가락은 각 부부가 준비한 바다. 뚜껑도 그릇이 되고 과일과 채소가 담겼던 팩이나 음료수병도 그릇이 된다. 아무 데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기회가 생기면 순간에 상을 펼친다. 낮에 이동 중 들렀던 휴게소에서 산 와인이 빛을 발했다. 여섯 병이 든 한 상자 값이 11, 7유로, 너무 착한 값이었다.  

"와 누룽지도 있네요? 스페인에서 누룽지를 먹다니..."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유럽으로 이주했다는 가이드 이 선생은 놀라워했다.

"참 정감 어린 퍼포먼스입니다. 놀랍고 즐겁습니다. 사실 길동무 여행을 처음 의뢰받을 때부터 좀 흥미로웠어요. 일행 숫자도 그렇고 이베리아 반도만 16박 17일 일정 여행은 가이드 경력 16년 만에 처음이거든요. 부부가 항상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도 보기 좋고, 열심히 경청해주시니 설명하는 것이 신납니다. 무엇보다 일행이 항상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에 제가 즐겁습니다."

놀면 뭐해 호두나 까지

여행 9일째 코르도바 일정을 마치고 그 밤 숙소가 정해진 론다로 향하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달리는 중이었으니 도착지가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잘 달리던 차가 멈춰 섰다. 약 200m 전방의 교통사고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달려왔다. 조금 있으니 헬기도 현장에 내렸다. 자세히 알 수는 없었으나 인명사고가 있는 것 같았다. 언제 풀릴지 모르는 길 사정, 그런 순간 길동무에는 늘 장마마가 계시다.

"놀면 뭐해. 자 우리 이 시간에 호두나 까지."

 안달루시아 지방 론다를 가는 길에 전방의 사고로 차가 멈춰섰다. 차에서 내려 호두를 까는 길동무. 차는 멈춰도 길동무는 멈추지 않는다.
ⓒ 길동무
그는 주섬주섬 어제 사둔 호두 봉지를 들고 갓길로 내려섰다. 길 양쪽으로는 고목이 된 도토리나무가 줄지어 있다. 열매 또한 흐드러지게 달려 있다. 장마마께서 봉지를 펼쳤다. 작은 돌멩이를 찾아든 복나눔 씨가 탁탁 호두를 두들겼다. 누구라서 거들지 않으랴. 호두 한 봉지가 금방 호두 알맹이 한 봉지로 변했다.
 길동무가 길에서 깐 호두와 마트에서 산 말린 무화과. 이동 중 맛난 간식꺼리
ⓒ 길동무
2년 전 영국 일주 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여행할 때다. 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떠난 대학 기숙사를 하룻밤 숙소로 선택한 날이었다. 영국의 특성상 음식이 만족스럽지 못하던 차 길동무는 그 시간을 선택받은 밤으로 꾸몄다. 그 중심에 바로 장마마가 있으므로 진행은 늘 거침이 없었다. 가끔은 여성 길동무에게서 '엄마'란 칭호를 듣는 장마마, 2011년 인도네시아 교민들이 공동으로 출간한 책 <도처교학>에 그를 소개한 부분이 있어 여기에 옮긴다.

"(장마마의) 세 자녀가 이미 장성하여 그의 슬하를 떠났다. 결혼한 큰아들로 인해 손자가 생겼다. 손자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할머니다. 그런데 그는 오늘도 여전히 할머니로 살지 않는다. 폭넓은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희망의 에너지 전파자로서 늘 동분서주다. 그가 있어 그의 이웃들은 늘 활력을 얻으며 행복을 가꾼다."

기왕 에피소드 나열이니 하나만 더하겠다. 여행 12일째 마드리드 서북쪽 사라고사(Jaragoja)에서다. 그 밤 숙소는 사라고사 기차역과 잇대 지은 대형 호텔이었다. 그날 호텔의 저녁 식사 시간에는 길동무 말고도 한국에서 여행 온 단체 두 팀이 더 있었다. 마치 한인들이 호텔 전세를 낸 느낌이었다.

"오늘 건배사는 누구 차롑니까?"

여행 내내 잔을 들면 늘 하던 건배사, 그날은 다른 여행객들도 있고 하니 그냥 넘어가자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가이드 이 선생은 "괜찮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하시죠." 하고 재촉을 했다.

 스페인의 고속도로 휴게소 과일 판매대
ⓒ 길동무
이구동성 판소리 버전으로 하자고 했다. "어얼씨구나 저얼씨구 저얼씨구나 얼씨구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하 고 선창을 하자 나머지 일행이 모두 "좋다"하고 외치며 와인 잔을 들고 부릅뜬 눈과 술잔을 상대방과 마주쳤다. 왜 안 들렸겠는가. 다른 한국인 테이블에서도 "얼씨구 좋다"가 웃음과 함께 섞여 나왔다.

"한국에서 오셨어요?" 식사를 마치고 나가던 여성 여행객이 반가운 듯 말을 붙였다. 여성 길동무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한 사람은 "예", 또 한 사람은 "아니요"였다. 각기 대답이 달랐는데 또한 둘 다 맞는 대답이었다. "예"는 한국인이니 거침없이 나온 대답이었고, "아니요"는 인도네시아에서 왔으니 또한 맞는 대답이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잠시 당황한 기색의 그 여행객 왈 "저팬?" 했다.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추측만 하고 설명할 틈도 없이 급하게 돌아섰다.

 길동무
ⓒ 길도무
폭소도 터졌지만, 걱정도 새 나왔다. 내일 아침 식사 때나 다른 여행지에서 또 만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한국 사람이 먼 타국에서 한국인을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누명을 쓸 것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길동무 장난기가 또 발동했다. 인도네시아 사람인 척 하기로 의견이 모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지 생각이 나지 않거나 단어가 막힐 때를 대비한 대책도 나왔다. 인도네시아어로 숫자 나열하기, 자카르타 동네 주워섬기기나 길 안내하기 등 묘안이 백출했다.

"근데 그 여행객이 인도네시아 말을 다 알아들으면 그땐 어쩌지?"

순간을 놓칠 복나눔씨가 아니다. 자다가 일어나서 한바탕 웃을 수밖에 없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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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행을 위해 ‘길동무’란 이름으로 뭉친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다섯 부부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