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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여자인 나도 죽일건가요?" 21일 오후 5시 강남역 10번 출구 주변은 뜨거웠다

천하한량 2016. 5. 22. 02:27

[오마이뉴스 글:조혜지, 사진:권우성, 편집:이병한]

"정신병자가 죽였는데 정신병자 책임이죠."
"총기 사고 많으니까 군대 없애야겠네~ 믿음직한 여자들한테 다 맡겨야지."

일간베스트(아래 일베) 커뮤니티 회원과 일부 남성들이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추모 현장을 찾은 시민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다른 발언자의 손엔 '범죄자는 혐오를 했지만 사회는 여성혐오를 유발하지 않았다'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이 들렸다.

한편에선 '불편하다고 외면하지 마세요, 이건 여혐 범죄입니다', '더이상 침묵하지 맙시다, 여성혐오 살해 반대'를 들고 선 남성들이 이들에 맞섰다. 추모객과 길을 지나던 시민도 이들에게 맞섰다. 삽시간에 이 일대는 '왜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살인인가'를 논하는 난상 토론의 장이 됐다.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사회가 여성혐오를 유발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보세요."
"사람 추모한다는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한다는 게 말이 돼요?"
"여성들은 밤 늦게 들어가면 위험할까봐 걱정해요, 본인은 그런 걱정 해요?"
"그냥 싸우자는 거 아니야?"

의견들이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튀었다. 일부 남성들이 주로 제기한 주장은 이 사건을 남성 대 여성의 대결로 몰아붙여 혐오라는 단어를 오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맞선 이들은 이 사건으로 성 대결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돌아보자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21일 오후 5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추모행진'이 막 시작되기 전 벌어진 일이었다.

[추모행진 전] 일베 출현으로 촉발된 난상 토론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모인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일베 회원 등이 나타나 '여성혐오' 등에 대해 입장을 드러내며 추모객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충돌을 우려해서 경찰 수십명이 출동해 현장에 배치되었다.
ⓒ 권우성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모인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일베 회원 등이 나타나 '여성혐오' 등에 대해 입장을 드러내며 추모객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충돌을 우려해서 경찰 수십명이 출동해 현장에 배치되었다.
ⓒ 권우성
'치안강국 대한민국? 여성에겐 아닙니다'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과 차별을 멈춰라'
'여자도 사람이다, 어려우면 그냥 외우세요'

평행선을 달리는 토론장 뒤로 국화꽃과 각자 메시지를 담은 A4 용지를 들고 선 침묵행진 참가자들이 대열을 준비했다. 준비 모임에 나선 한 시민은 "마스크 150개, 꽃 300개를 준비했는데 벌써 다 떨어졌다"면서 "우리가 예상했던 150명 보다 훨씬 많이 오신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참여자는 경찰 추산 400명, 주최 측 추산 600명이었다.

20~30대 여성 외에도 남성과 중년 세대 참가자도 쉽게 눈에 띄었다. 행진에 참가한 한 외국인이 "왜 여성들이 마스크를 쓰나"라고 묻자 한 진행자가 "여성들이 미디어를 통해 공격의 대상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행진에 참여한 조혜진(20대 여성)씨는 여성 살인 사건을 다루는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조씨는 "남성이 피해자일 땐 'XXX남'이라고 쓰지 않으면서, 여성이 피해자일 땐 '화장실녀' 등 성별을 자극적으로 밝힌다"면서 "피해자 위주의 기사가 아닌 가해자 행위가 중심이 된 보도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모행진]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참여열기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현장 부근에서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현장 부근에서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30대 초반의 부부가 함께 행진에 나서기도 했다. 남편인 최우영씨는 "저도 옛날엔 여성들이 당하는 일상적 위협에 공감하지 못했다, 작년에 관련 뉴스가 많이 나와서 찾아보니 문제가 심각하더라"라면서 "결혼하기 전 집에 데려다 주고, 택시 번호를 적는 게 매너라고만 생각했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성에게 신체적 위협이 만연한 사회에서 필요할 수 밖에 없는 논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내인 지시윤씨는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대화를 하다가 나오게 됐다"면서 "중요한 건 남성들이 이번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을 많이 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이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니 한 번 그 문제들을 고민해보자는 거다"라고 강조했다.

정춘숙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이자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도 행진에 함께했다. 그간 사회 전반에 깔린 여성 혐오에 대해 다양한 주장을 펼쳐왔던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젊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전체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을 가르치는 최성만(60) 교수도 국화꽃을 들었다. 그는 이 사건이 단순한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뿌리 깊이 자라온 여성 무시, 혐오와 억압이 상징적으로 터진 사건으로, 이를 계기로 사회 전반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부장 문화에서 내려온 여성혐오 인식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에 정당한 분노로 항의를 해야 하는데, 거꾸로 약자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거다"라면서 "남성이라 부끄러울 때가 많다, 책임감을 느끼고 나왔다"라고 말했다.

행진 대열은 지난 17일 사건이 벌어진 당시 노래방 건물 골목을 끼고 약 5km를 두 번에 걸쳐 걸었다. 약 1km에 이르는 긴 줄이 강남역 10번 출구 주변 골목골목을 지났다. 두 바퀴째엔 노래방 건물 앞에 모여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묵념을 했다.

"피해자가 살해 당한 이유는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향한 혐오 범죄가 없어지길 바랍니다. 피해자를 위해 추모합니다."

진행자의 말이 이어지자 몇몇 여성들은 노래방 건물을 쳐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추모행진 후] 서울은 지금 뜨겁다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이들이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을 땐 토론이 더욱 격화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라는 일부 남성들의 공세, "여성혐오가 대체 뭔가요?"라는 군중 속 한 남성의 물음에 여기저기서 울분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 40대 중년 여성은 "여성혐오는 여성을 같은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이 남성을 만약 혐오한다면, 그건 두려움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이유엔 대부분 무시와 차별의 의미가 깔려 있다, 과거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이름을 붙일 수 없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언 말미,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 여성들은 운전하면서 이년아, 쌍년아, 듣는 게 기본이다. 데이트를 청한 연인에게 강간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죽느냐 사느냐, 매일 두드려 맞거나 억압당하면서 숨죽이고 사는 게 대부분이다."

엄마뻘 여성의 생생한 토로에, 여기저기서 젊은 여성들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오늘도 나는 성추행을 당했어요."
"머리 묶고 치마 입고 키 작은 사람은 강간당하기 쉽다고 그러더라고요. 키 작고 교복 치마를 입은 나는 그게 늘 무서웠어요."

침묵행진은 멈췄지만, 여성들의 고백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눈물에 곁에 선 시민들은 "울지마 울지마"를 연호했다.

지난 19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 촛불문화제를 처음 제안했던 양지원씨는 "난 이 사건이 잊히길 절대 원하지 않는다"면서 "우리 사회 속 혐오가 임계점에 달해서 약자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여성혐오'라는 말을 피켓에 쓰면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봤다"고 말했다.

임계점. 아직 5월인데도 서울 최고 기온이 31도에 육박한 날이었다.

▲ 강남역 뒤덮은 추모 물결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시민들이 국화꽃과 추모메모지를 붙이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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