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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로 실직… 개업한 음식점은 AI에… ‘50대의 피눈물’

천하한량 2014. 1. 2. 20:19

1955∼63년생 베이비부머의 추락은 심각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특히 자영업에 많이 투신해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부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더 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년은퇴 후에도 20∼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베이비부머의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가중될 성싶다.

◆실패로 돌아온 베이비부머 자영의 꿈


전쟁 뒤 태어나 악착같이 일한 베이비부머가 개인회생까지 오게 된 사연은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자영업 실패 사례가 유독 많았다.

A(57)씨는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던 중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만나 정리해고 당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무직이었던 A씨는 중국 음식점을 열었다가 망했다. 이어 그는 오리 식당을 3번이나 창업했지만 줄줄이 문을 닫았다. 현재 택시기사로 일하는 A씨의 아파트도 대출을 못 갚아 경매에 들어갔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다 외국 유명 헤어 디자이너의 삶을 동경해 퇴직하고 미용실을 차린 B(52)씨의 삶도 고단했다. 한때 분점까지 생기며 잘 나갔던 미용실은 다른 대형 미용실 체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그는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벽지 바르는 일용직으로 전전하고 있다. 이마저도 건설경기 한파에 고정적인 수입조차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부동산 투자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C(55)씨는 재혼한 부인의 식당 창업자금을 마련하다 빚이 급격히 늘었다. 한의사인 D(51)씨는 한의원 문을 대출로 열었는데 영업이 잘 안돼 채무 돌려막기로 버티다 개인회생을 택했다. 이미 국민행복기금까지 다녀왔다.





◆꼬리 무는 불운

베이비부머의 사업 실패는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과도 맥이 닿아 있다. 김모(55)씨는 기업에 다니다 1999년 IMF 사태로 실직한 뒤 음식점 등을 운영했으나 신통찮았다. 김씨 인생에 결정적인 '한 방'은 2002년 낸 오리 전문점이었다. 식당은 자리를 잡아가는가 싶더니 개업 1년 만에 불어닥친 조류인플루엔자 파동으로 쫄딱 망했다. 몇 년 쉬다 2007년 오리 식당을 다시 냈지만 이번엔 건물주와 매장 운영 방식 등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2009년 문을 닫았다.

공무원인 최모(50)씨는 2003년 말 발생한 광우병파동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당시 축산물전문판매업자인 남편은 설 특수를 맞아 준비했던 35억원 규모의 미국산 축산제품의 판로가 막혔고 판매처리됐던 제품마저 환불처리됐다. 회사는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다. 시부모가 남편의 연대보증을 섰기 때문에 함께 살던 집마저 경매에 넘어갔다. 남편이 새 사업을 벌였지만 빚은 늘어만 갔다. 최씨는 4억2570만원의 빚을 떠안고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1995년 여름 발생했던 삼풍백화점 붕괴 악몽도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인테리어 패션 소품매장을 운영하는 주모(52·여)씨는 당시 전 남편 사업실패 후 이혼을 한 뒤 자녀를 홀로 키우면서 삼풍백화점에 간신히 입점했다. 그러나 입점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붕괴 사고가 났다. 아파트를 처분해도 손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현재 그의 월수입은 180만원 남짓이지만 부채는 3억원에 육박한다.

참여연대 이헌욱 변호사는 "사회·경제여건에 비춰볼 때 자영업자는 갈수록 소득창출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중산층 복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산가격의 급등락을 막고 가계소득 증대 및 소득분배, 복지 등 종합대책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개인회생 베이비부머는 누구


취재팀이 분석한 베이비부머 112명은 대부분 퇴직했거나 자영업 실패로 인해 직업 안정도가 매우 떨어지는 특징을 보였다. 직업 대부분이 편의점 점원, 식당 직원, 마트 판매직, 아파트·건물 경비원 등 단순 노동직에 속해 있었다. 대·중소기업 간부나 공무원(퇴직자 포함) 등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고, 안정적인 직장에 재직 중인 사람은 29명(6%)에 불과했다.

베이비부머는 채무와 신상의 성격도 다른 연령대와 달랐다. 베이비부머는 개인회생 신청 당시 월 평균 소득이 201만원으로, 이들을 제외한 다른 연령대 평균 수입 212만원보다 적었다. 수입은 적었지만 평균 채무액은 다른 연령대가 2억3754만원인 데 비해 2억9499만원으로 월등히 많았다. 불안정한 직장 등으로 수입은 적고 빚은 많은 베이비부머의 실상이 드러난 모양새다.

또 이들은 이혼자가 33%로 다른 연령대 26.2%보다 훨씬 높아 가정 붕괴도 심각한 지경이었다. 자가를 소유한 비율은 25.9%로, 비베이비부머 16.6%보다 매우 높았다. 내집 마련을 인생 최대 목표로 삼았던 당시 세태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성별로는 남성의 비율(79.5%)이 다른 연령대의 67.3%보다 높아 당시 남성이 주로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가정을 돌봤던 시대상도 드러냈다.

특별기획취재팀 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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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난 10여 년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빚에 멍들대로 멍들었다.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가 이미 온 가운데 빚더미에 허덕이는 채무불이행자가 350만명으로 불어났다. 개인회생 신청자도 지난해 사상 처음 10만명을 넘어섰다. 가계부채와 개인파산은 경제 위기와 사회 불안의 진원지로 비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가계빚이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라고 진단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도 가계빚과 서민금융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세계일보는 2014년 갑오년을 맞아 우리가 풀어야 할 최대 민생 현안인 가계부채와 파산 문제의 실상을 파악하고 대책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5회에 걸쳐 게재한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다닌다.' 빚에 허덕이는 금융약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친근한 이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들 대부분은 실직이나 가족의 질병, 사기, 사업 및 투자 실패와 같은 불운이 꼬리를 물었을 뿐이었다.

취재팀이 2012, 2013년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526명의 신청이유와 채무내용 등을 추적한 결과 이들은 여전히 1997년 IMF 사태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충격에 극히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금융위기 충격 이후 몰아닥친 부동산경기 침체 여파로 한때 서민의 꿈이자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내집 마련이 오히려 빈곤층을 양산하며 경제·사회 불안의 주범으로 등장했다. 갈수록 가중되는 생활고와 빚독촉에 가족이 해체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누구


개인회생 신청자들은 평균 46세에 대부분 고등학교(215명·44.9%)와 대학·대학원(215명·44.9%)을 다닌 것으로 나타났다. 최연소 신청자는 신용회복 중인 양친의 가난을 대물림한 23세의 여성 판매사원이었다.

10명 가운데 7∼8명이 결혼경험을 했으며 동거가족은 자녀 1.4명을 합쳐 3.1명에 달했다. 이들의 채무액은 1인당 평균 2억5046만원, 수입은 월평균 209만2765원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변제계획안에 따르면 신청자는 법원의 인가를 거쳐 향후 5년간 월수입의 39%인 81만5079원을 채무변제로 충당하고 나머지 125만4099원으로 한 달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3식구 이상이 이 돈으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저소득층은 가족 3.64명이 91만4969원으로 버텨야 하고 중산층의 가족 수와 월 생계비도 각각 3.21명, 144만3654원에 불과하다. 다만 고소득층은 2.53명에 222만1936원으로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처럼 등골을 휘어가며 5년간 빚을 갚고 나면 신청자는 정부보조금과 복지제도에 의존해야 하는 무기력한 노인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나이 오십을 훌쩍 넘어서 사실상 재기는 고사하고 일자리 찾기도 하늘의 별 따기이기 때문이다.

회생대상에서 빠지는 담보채권도 논란거리다. 이들 채권은 변제대상에서 제외(별제채권)되며 회생절차 과정에서도 이자를 제때 물지 않으면 은행 등 채권자가 언제든지 경매에 넘겨 처분할 수 있다. 은행이 별제권을 행사할 경우 개인 회생자는 다시 주거지를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월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회생 성공 가능성은 낮아질 뿐이다.

조사결과 별제권부 채권을 떠안고 있는 개인회생 신청자는 164명이었고, 이 가운데 13명이 다시 개인회생을 신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개인 재산으로 빚을 털어버리는 파산 면책과는 달리 회생제도는 현재의 재산을 지키되 미래소득으로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라면서 "개인 재산이 주로 부동산에 집중된 우리 상황에서는 부동산담보채권도 회생 감면 대상에 포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배보다 더 큰 배꼽

김모(강남구·54)씨는 2000년 초 창업 때 카드빚을 썼다가 제때 갚지 않아 곤욕을 치렀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인 2012년 3월 그는 1억6005만원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문제는 이자가 8706만원으로 원금 7299만원보다 더 많다는 점이다. 김씨는 2001∼2002년 KB카드 빚으로 1090만원가량 썼지만 지금 원금과 이자가 모두 3651만원으로 3배가량 불어났다. 현대카드로부터 채권을 인수한 한 대부업체는 원금 495만원보다 2배 이상 많은 1131만원의 이자를 요구했다.

그는 도중에 정부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이용했지만 중도에 탈락해 화를 키웠다. 결국 희망모아·신용회복기금 등도 원금 2319만원에 3470만원의 이자가 불었다. 중도탈락 때 감면받았던 원리금이 되살아나고 연체이자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행들은 연체 때 신용도에 따라 연 17∼19%의 금리를 적용해왔다. 카드사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은 각각 29∼32%의 고금리를, 대부업체 등은 39%대의 금리를 물린 것으로 전해진다.

취재팀이 채무 총액과 원금 대비 변제율 등을 따져 원금·이자 비중을 추산한 결과 이자가 46%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개인회생 전문 윤준석 변호사는 "원리금 산출이 복리식으로 적용되고 대부·사채업자가 사들이는 2차 채권의 경우 적용 기준이 달라 채권자 목록만으로 정확한 원금·이자 비율을 따지기 힘들다"면서 "급전이 필요하더라도 상환능력과 연체이자까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급속한 가정붕괴, 깊어가는 사회불안

건물관리 파견직 근로자 양모(구로구·52)씨는 가정불화로 파산에 직면하는 불운을 겪었다. 양씨는 1991년 성격차이로 갈등을 겪었던 첫 아내가 전세보증금을 몰래 챙겨 아들도 버린 채 가출해버렸다. 이후 친구로부터 사기대출까지 당한 데 이어 2008년에는 재혼한 중국인 여성이 돈을 챙겨 달아나버렸다. 결국 그는 1억6000여만원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두 차례나 개인회생을 신청해야 했다. 양씨처럼 가정불화 탓에 가계파산이 발생하거나 반대로 남편의 사업실패로 빚을 떠안게 된 여성이 남편을 떠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이혼 경험을 지닌 이들은 결혼 경험자 388명 가운데 27.6%인 107명에 달했다.

또한 부부 전체가 개인회생 혹은 파산 절차를 밟고 있거나 자녀까지 학자금대출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부부가 휴대전화 판매와 일용직을 전전하다 현재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전모(관악구·55)씨는 "대학에 다니는 딸의 학자금대출이 2000만원이고 아들도 1000만원에 달한다"면서 "아이들에게 가난과 빚이 대물림돼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신용불량자(채무불이행자)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팀장)·나기천·김예진·조병욱 기자investigative@segye.com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한 개인채무자를 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재조정해 파산을 구제하는 개인 법정관리이다.

신청 자격은 무담보채무 5억원 이하, 담보채무 10억원 이하까지 연체 중인 채무자로 과다채무로 지급불능상태에 빠졌거나 빠질 우려가 있는 개인에 한정된다.

신청자는 월소득 가운데 최저생계비의 150%를 뺀 나머지 소득을 5년간 상환하며 채무액의 최대 9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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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로 잡힌 상당수 아파트 등 주택은 사실 채권자인 은행이 소유자라고 봐야 합니다. 개인은 매월 이자(월세)를 내며 은행 대신 주택을 관리해주는 셈이죠."

한 개인회생 전문 법조인이 최근 부동산경기 침체 한파로 상당수 서민과 중산층이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주택 마련에 나섰다가 파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면서 취재팀에 해준 말이다. 취재팀이 조사한 개인회생 신청자 479명 가운데 주택 등 담보부 회생채무를 떠안고 있는 이들은 전체의 36%인 174명에 달했다. 담보채무액은 전체 채무액의 21%인 257억원, 1인당 담보부 채무액은 1억4741만원에 달했다. 이들 중 일부는 집값이 한창 올랐던 2005∼2007년 중 주택 구입에 나섰다가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내 집 마련이 부동산경기가 침체에 빠지자 파산의 덫으로 돌변한 셈이다.

다만 취재팀이 자술서에 제시된 개인회생 신청 이유를 분석한 결과 생활비 부족이 71%(이하 중복응답)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업실패 45.4% ▲사기피해 13.5% ▲병원비 과다 12.3% ▲연대보증 10.2% ▲주식투자 실패 5.8% ▲교육비 과다 4.4%의 순이었다. 현재 법원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택을 매입할 경우 부채뿐 아니라 자산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아 채무 증가 사유 항목에서 제외하고 있다.





◆부동산 파산… 가족해체·자살로 내몰려


이른바 서울 강남3구 지역에서 7년간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한 조모(54)씨의 인생은 부동산에 직접 투자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남편이 실직하고 변변한 생활 능력을 보이지 못하자 10년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화근이었다. 조씨는 2007년 송파구에서 분양가 3억9000만원짜리 아파트에 당첨된 뒤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폐업했다. 은행에서 빌린 돈이 3억4000만원이었다. 신용대출까지 합쳐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 한도였다. 한 달 이자만 200만원에 달했다.

조씨는 "유망한 지역이라 당첨만 받으면 최소한 5000만원 정도의 시세차익은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와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 등으로 아파트 가격은 곤두박질쳤다.

결국 반년 만에 분양가보다 3000만원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처분한 조씨는 마침 붐이 인 빌라 분양으로 다시 승부수를 띄운다. 조씨는 2009년 강북구에 빌라 4채를 신축했다. 건축비는 외가 친척과 동생에게서 각각 빌린 2억5000만원, 1억5000만원으로 충당했다. 빌라는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2010년 건당 3000만∼5000만원씩 가격이 떨어졌다. 2013년 현재 이들 빌라 중 3채가 경매에 들어갔다.

조씨는 지난해 4월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하다 경찰에 구조됐다. 남편은 "너 때문에 빚더미에 앉았다"며 구타와 폭언을 일삼았다. 이혼도 요구해 응할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직업이 없던 최씨도 2003년 동작구에서 3억5000만원에 4층 빌라를 사들여 재건축하면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재건축 비용 3억4000만원은 건물을 담보로 은행 등에서 빌려 충당했다. 그러나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최씨의 빌라는 월세 임대가 잘 되지 않아 4채를 모두 전세로 임대한 뒤 대출금 일부를 갚았다. 그래도 막대한 이자 비용이 부담돼 1년 만에 최씨는 빌라를 통째로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매각가격은 6억원. 이 자금과 여윳돈을 합쳐 1∼4층 전세 보증금 5억원과 은행 대출 잔금 1억2000만원과 개인빚 5000만원 정도를 갚았지만 여전히 카드 대출 등 빚이 남은 상태다.

강북 뉴타운 지역에 무리해 투자했다가 막장에 이른 사례도 있었다. 성북구 뉴타운 지역에 살던 심모(46)씨는 2009년 은행 대출과 지인 돈을 모아 집 근처에 빌라를 한 채 구입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나 친구들은 "재개발만 되면 그냥 앉아서 돈을 번다"고 심씨를 부추겼다. 그런데 2011년 유럽 재정위기와 뉴타운 지정 해제조치로 집값은 폭락했다. 심씨의 집 두 채는 현재 가치가 각각 1억7000만원, 1억2500만원인데 담보대출이 1억3500만원, 1억5000만원씩 있다. 심씨는 현재 공황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교육열도 가계 파산에 한몫

과도한 자녀 교육비 지출도 가계 파산 주범 중 하나다. 2007년 이혼한 송모(여)씨는 아들과 미국 이민을 준비했지만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우선 아들만 미국으로 보냈다.

아들 학비와 현지 체류비로 월 200만원씩 송금해야 하지만 목돈이 없던 송씨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금방 아파트값이 회복돼 매매가 성사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송씨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고, 지난해까지 변변한 직장조차 없는 상태에서 대출만 계속해서 늘어갔다. 송씨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아들 곁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김모(56)씨는 딸과 아들 호주 유학비로 5년간 2억1000만원을 썼다. 남들보다 부유한 집도 아니었지만 딸이 학교에서 적응을 못해 택한 유학길이었다. 부족한 유학비용은 대부업체 대출 등으로 메웠다. 지금은 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버는 돈으로는 대출 이자도 내기 어렵다. 교사 A(56)씨는 월급보다 아들의 해외유학비가 더 많아 개인회생에 몰렸다. B(51)씨도 외동딸을 미국에 유학보내면서 대출을 시작해 지금껏 그 빚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황모씨도 자식들 교육비 탓에 가정이 풍비박산났다. 그는 세 자녀 교육비 때문에 30대 후반에 월급을 꼬박 모아 마련한 45평 아파트를 32평으로 줄였다가 2012년부터는 보증금 2000만원짜리 월세 집에 거주 중이다. 집안은 우울한 분위기로 변했고, 아내는 지난해 비상금으로 저축해 놓은 돈까지 챙겨 가출해버렸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팀장)·나기천·김예진·조병욱 기자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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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 새 빚을 감당하지 못해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채무불이행자 10명 가운데 6명가량이 중위소득 범위 이상의 중산층·고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산층 붕괴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사회·경제 불안을 심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 같은 사실은 세계일보 취재팀이 1일 2012년과 2013년 사이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이들 중 526명의 개시신청서·채권자 목록·재산목록·자술서 등 관련 문건을 입수해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분석 대상 442명(가족 미기재 37명, 기각·대상 47명 제외) 가운데 중산층과 고소득층은 각각 256명과 19명으로 57%, 5%를 기록했다.

반면 저소득층은 38%인 169명에 머물렀다. 중산층 범위는 통계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인 중위소득의 50∼150%를 적용한 연간소득(2012년 3인 기준 1839만∼5518만원, 4인 기준 2124만∼6384만원)을 통해 산출했다.

조사 결과 1인당 채무액(479명 기준)은 최소 1021만원에서 최고 13억3990만원, 평균 2억5046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1인당 월평균 소득 209만원의 120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들은 특히 개인회생 신청 전까지 연 30∼40%의 고금리가 적용되는 대부업과 사채 의존도가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업·사채 규모는 전체 1202억원의 18.2%인 220억원으로 ▲카드·캐피탈·할부금융 16.1%(193억원) ▲배드뱅크·보증보험 12.1%(145억원) ▲저축은행 6.8%(81억원) 등 2·3 금융권 비중이 컸다. 은행은 30.8%(371억원)였다. 특히 중산층의 대부업·사채 비중이 18%로 저소득층(20%)과 비슷했고 고소득층도 11%에 달했다. 1인당 평균 사채가 6000만원으로 등록 대부업 이용자 1인당 대출액 300만원의 20배에 이르렀다. 미등록사채 이용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으로, 상당수 채무불이행자가 여전히 협박·가혹 행위 등 불법 채권추심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46세였고 재산 규모는 2188만원에 불과했다. 파산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개인회생 신청자가 5년에 걸쳐 최저생계비의 150%를 뺀 가용소득을 변제액으로 충당하고 있다면서, 이들 중 상당수는 불안정한 직업과 소득에다 까다로운 변제조건으로 회생과 재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거 형태의 경우 전체의 절반을 웃도는 248명이 전월세여서 향후 전월세난 심화 때 생활고는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법원 내 도산전문가로 꼽히는 정준영 부천지원장은 "중산층 파산은 전 세계적 현상이고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면서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채무자들의 최저생계비를 대폭 인상하고 주거비용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도 "근로소득과 부동산에 의존했던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면서 "진정한 문제는 빚 없이 당장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계층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개인회생 신청자 가운데 47명은 소득 불분명, 은닉재산, 변제계획 이행 불투명, 신청인 포기 등의 이유로 기각 혹은 비인가·폐지 판결을 받았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팀장)·나기천·김예진·조병욱 기자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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