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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스트라디바리우스 나무 감별사’ “달의 인력 작을 때 베야 최상의 소리”

천하한량 2013. 4. 16. 19:13

스위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린 제작자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눈썰미와 직관으로 바이올린에 쓰일 최상의 나무를 골라내는 이가 있다. 9살 때부터 70년 넘게 숲을 집으로 삼고 나무를 봐왔던 나무수집가 로렌조 펠레그리니(83·사진)다.

펠레그리니는 나무 수만 그루 중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나무'로 불릴 정도로 악기 제작에 가장 적합한 나무를 골라낸다. 17~18세기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제작자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현재 650대 정도가 남아 있는데, 현대 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음색이 매우 풍부하고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무의 나이테가 촘촘하고 나뭇결의 밀도가 높다는 것이 비결의 하나로 꼽힌다.

스트라디바리우스처럼 따뜻하고 풍부한 음색의 바이올린을 만드는 데 쓰이는 나무는 나무 나이와 날씨만이 아니라 심지어 달의 위치까지도 선택 기준이 된다. 펠레그리니는 가지가 많은 나무는 거들떠보지 않고 지나친다. 가지가 많다는 것은 소리의 울림을 망치는 옹이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는 14일 BBC에 "높은 산에서는 나무들이 너무나 느리게 자라 때로 성장을 멈추기도 한다"며 "단지 힘을 모으는 것으로 천년이나 된 나무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너무 물이 많으면 안된다. 나무의 중심부는 건조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 이런 나무가 최상으로 견고하고 거대한 울림을 준다"고 말했다.

일단 좋은 나무를 발견하면 벌채하기 위해 나무가 가장 건조해지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보통 나무의 수액이 땅으로 되돌아가는 가을의 끝무렵으로 달이 수평선에 낮게 떠 있고 지구에서 가장 멀어진 때다. 달의 인력이 나무의 수액도 끌어당기기 때문에 지구에서 멀어져 달의 인력이 작을 때를 골라야 한다. 벌채를 할 때는 먼저 다른 나무꾼들과 함께 의식을 치르고, 보통 가장 젊은 나무꾼에게 나무를 베는 영광이 돌아간다.

이탈리아의 아브루조 산맥에서 성장한 펠레그리니는 어릴 때부터 숲과 친숙했다. 그의 가족은 매년 8개월 정도를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도 걸어서 다섯 시간 떨어진 깊은 숲에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면서 살았다. 나이 서른에 리수드 숲을 발견한 뒤에는 이곳에서 머물며 지내고 있다.

올해 83세이지만 다람쥐처럼 나무에 올라다닐 정도로 건강한 그는 숲 전체를 자신의 정원처럼 가꾸며 살고 있다.

<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