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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엑소더스' 부유층서 중산층으로 확대

천하한량 2012. 9. 5. 17:24

[머니투데이 김국헌기자]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다국적기업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훌리오 빌도소라(38) 씨는 영국 캠브리지 인근으로 이민 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그곳에서 작은 소프트웨어업체에 취직할 계획이다. 예금도 스페인 은행에서 영국 은행으로 모두 이체했다.

그는 부인과 두 자녀를 데리고 영국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몇 시간 전에 "스페인 거시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너무 많은 위험이 있고, 스페인은 그리스 다음 차례가 될 것이다. 종이조각이 된 페세타(옛 스페인 통화)를 쥐고 끝내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스페인 국민이 재정위기에 처한 모국을 버리고 탈출하는 사태가 부유층에서 중산층으로 확대되면서, 스페인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이탈할 것이란 공포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4일 보도했다.

실 업률 25%의 스페인 무직자들을 먹여 살렸던 스페인 중산층과 엘리트도 스페인을 버리고 영국을 비롯한 안전지대를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는 점은 스페인 경제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난 한 해에만 영국에 취업한 스페인 사람은 3만명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로 25% 급증한 것으로, 등록되지 않은 취업자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됐다.

폼페우 파브라 대학의 호세 가르시아 몬탈보 경제학 교수는 "부유한 사람들은 이미 돈을 빼갔고, 전문직과 중산층이 독일과 영국으로 돈을 옮기고 있다"며 "분위기가 매우매우 나쁘다"고 전했다.

스페인 금융 시스템이 지속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지면서 예금인출 규모는 지난 7월 750억유로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7%에 달하는 규모다.

스페인 예금인출사태는 지난해 중반부터 가속화됐고, 유럽연합(EU)의 1000억유로 지원 약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재까지 지속됐다. 애널리스트들은 8월 수치를 기다리고 있다.

최 근 노무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개월간 스페인에서 빠져나간 자본이 스페인 GDP의 50%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스페인 주식과 채권을 매각한 탓도 있지만, 스페인 국민들이 예금을 해외 은행으로 이체한 것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를 빠져나간 자금이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재정위기국의 예금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황인 점과 비교하면 스페인 상황은 심각하다.

스페인 정부는 스페인 3위 은행 방키아가 괜찮다고 예금자를 안심시켰지만, 방키아 실패가 스페인 국민에게 지난 2001년 아르헨티나 예금계좌 동결 조치(the corralito)를 떠올리게 하면서 스페인에서 대규모 예금인출사태가 시작됐다.

당시 아르헨티나인 수백만명이 스페인으로 이민을 왔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예금 통장이 휴지조각이 되고 소송 전쟁이 벌어졌던 과거는 스페인에서 잘 알려져 있다.

그 시기에 아르헨티나에서 일했던 스페인 사람 에두아르도 페레즈(48) 씨는 예금의 80%를 잃었던 아픈 경험이 있어 스페인 은행 예금의 3분의 1을 싱가포르달러로 환전해 싱가포르 계좌로 옮겼다. 그는 "내 친구 중에 전부를 잃은 사람도 있다"며 "스페인 사람이면 누구나 코랄리토를 잘 안다"고 말했다.

페레즈 씨는 부인과 진지하게 싱가포르 이민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2년 전에 결코 이것을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스페인이 유로존을 떠날 것이란 실질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머니투데이 김국헌기자 paperc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