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구로동 골목의 10평 남짓한 사무실. 박문수씨(50)가 커피 기계들과 낚싯대, 각종 생활용품 더미 속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박씨는 이들 제품을 국내외에서 구해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하는 일을 한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자신이 만든 '에이제이샵'에 들어간다. 밤새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고 배송을 위해 상품을 챙겨 포장한다. 그는 이 쇼핑몰을 운영하는 'AJ상사'의 사장이자 유일한 직원이기도 하다. 이곳이 그의 다섯 번째 직장이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다. 연배 친구들은 대기업으로 치면 부장, 차장 말년쯤이다. 젊을 적에는 취직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경기는 좋았고 일자리도 많았다.
서울 구로동에서 1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박문수 사장은 "자영업이 절망스럽지만 그래도 살아야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동생·친척에 돈 빌려 창업
대출 이자 내면 생활 빠듯
"자영업자 갱생 지원 절실"
첫 직장은 보증보험사였다. 다른 대기업보다 급여도 20~30% 높았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어떤 젊은이가 사업하면서 담보로 맡긴 시골집을 추심하러 갔어요. 그 젊은이의 부모들이 살고 있더군요. 나가라 할 수도 없고. 못하겠더라고요."
10년 다니던 회사에서 짐을 쌌다. 퇴직금과 은행 대출을 합해 3억원을 들여 프랜차이즈 영화 CD 대여점 개점 준비를 했다. 당시 뜨던 사업이었다. 그런데 시기가 좋지 않았다. 바로 외환위기가 터졌고 가맹본부는 부도가 났다. 가게 문은 열지도 못한 채 돈을 모두 날렸다. 집도 압류됐다. 가족들은 흩어졌고 엄청난 빚만 남았다.
"딸이 하나 있는데 그때 엄마가 데려가서 지금도 따로 살아요."
다시 게임기 총판사업을 시작했다. 2~3년을 악물고 버텼지만 쉽지 않았다. 새 사업 운영 자금 빚까지 더해졌다. 방황이 시작됐다. 노숙도 했다. 죽고 싶은 때도 많았다. "서너 번쯤 자살을 시도했어요. 괜히 회사 나왔다는 생각도 들었죠."
1년여 만에 어렵게 취업이 됐다. "그때는 그래도 40대니까 회사에서 써주더라"고 했다. 로봇을 만들어 대학 등에 납품했는데 반짝 잘되던 사업 아이템이 시들해지자 회사가 부도가 났다. 3년 만에 또 실업자가 됐다.
"도시에서는 일용직 할 게 없어요. 건설 경기가 죽어 있으니까. 여자들은 식당일이나 이런 게 있는데 남자들은 더 없죠."
그래도 구직을 계속했다. 장사는 안 하고 싶었다. 실업 급여를 받으면서 이력서를 20번도 넘게 넣었다. 어떤 회사의 인사 담당자로부터는 "그 나이면 회사에서 나갈 시기인데 누가 뽑겠냐"는 말도 들었다. 자영업을 다시 하려 해도 종잣돈이 없었다. 막막한 마음으로 1년을 보냈다.
"정치인들이 보편적 복지 얘기는 하는데 그 틀은 갱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예요. 은퇴하고 사업 한 번 망했다고 일 안 할 수 없는 거 거든요. 체력의 한계는 있지만 요즘 60대는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연령이잖아요. 또 일을 해야 건강하게 살지."
친구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하나 내줬다. 그때 커피 기계를 사무실이나 가게에 설치해 주는 일을 1년 동안 곁눈으로 배웠다.
"하다 보니 커피 용품 파는 쇼핑몰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커피숍은 망해도 용품은 그대로 있을 테니. 자본이 적어도 쇼핑몰을 열 수 있어서 인터넷몰을 해보자 했죠."
문제는 돈이었다. 동생과 친척들에게 3000만원을 빌리고 정부 창업 비용 1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정부의 창업자금 대출을 받고 지난해 추가로 1, 2금융권에서도 돈을 빌렸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는 데 빚 없게 할 수는 없다"며 "없으면 좋지만 1억~2억원씩 여유자금 깔고 있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지금 쇼핑몰을 운영한 지도 2년째다. 매출은 300만~500만원에서 들쭉날쭉한다. 물건 대금을 치르고 가게 임대료와 카드수수료, 대출 이자를 주고나면 월 100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지난 2년간의 성적표는 4000만원 적자.
가장 큰 짐은 이자다. 대출이 늘어나는 게 문제다. 기존 빚을 갚으려 새 대출을 받고 이자비용을 더 키우는 식으로 꼬리를 문다.
"정부 대출은 금리가 4%지만 은행권만 해도 10~15%로 뛰어요. 캐피탈은 20%나 되죠. 원리금, 이자 합치면 월 80만원은 나가는데 원리금 상환도 3개월마다 미루고 있지. 계속 쌓이면 금융비용만 월 100만원 될 거란 말이에요. 그럼 또 돈 빌려야 하니 악순환인 거예요. 그래서 실제 얼마나 버는지 따지기 싫더라고요."
혼자 장사하는 것이 힘들지만 인건비가 부담돼 사람을 쓰기도 쉽지가 않다. 아르바이트만 아주 가끔 쓴다. 그러다 보니 퇴근도, 휴일도 따로 없다.
그래도 그는 "지금이 마음 한편은 더 편하다"고 했다. 쉬지는 못하지만 직장인보다 생활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는 자영업자의 3%만이 성공한다고 봤다. 나머지는 6개월에서 1년, 3년 안에 접는다. 그만큼 신중하라는 얘기다.
박씨는 "5년만 버티면 기반 잡히고 시장에 고정 고객 생겼다고 본다"며 "근데 매출 안 나오니 있는 돈 까먹고 또 대출받고 하니까 감당 안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산업부), 이재덕(경제부), 이혜인(사회부) 기자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
박씨는 이들 제품을 국내외에서 구해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하는 일을 한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자신이 만든 '에이제이샵'에 들어간다. 밤새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고 배송을 위해 상품을 챙겨 포장한다. 그는 이 쇼핑몰을 운영하는 'AJ상사'의 사장이자 유일한 직원이기도 하다. 이곳이 그의 다섯 번째 직장이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다. 연배 친구들은 대기업으로 치면 부장, 차장 말년쯤이다. 젊을 적에는 취직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경기는 좋았고 일자리도 많았다.
▲ 동생·친척에 돈 빌려 창업
대출 이자 내면 생활 빠듯
"자영업자 갱생 지원 절실"
첫 직장은 보증보험사였다. 다른 대기업보다 급여도 20~30% 높았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어떤 젊은이가 사업하면서 담보로 맡긴 시골집을 추심하러 갔어요. 그 젊은이의 부모들이 살고 있더군요. 나가라 할 수도 없고. 못하겠더라고요."
10년 다니던 회사에서 짐을 쌌다. 퇴직금과 은행 대출을 합해 3억원을 들여 프랜차이즈 영화 CD 대여점 개점 준비를 했다. 당시 뜨던 사업이었다. 그런데 시기가 좋지 않았다. 바로 외환위기가 터졌고 가맹본부는 부도가 났다. 가게 문은 열지도 못한 채 돈을 모두 날렸다. 집도 압류됐다. 가족들은 흩어졌고 엄청난 빚만 남았다.
"딸이 하나 있는데 그때 엄마가 데려가서 지금도 따로 살아요."
다시 게임기 총판사업을 시작했다. 2~3년을 악물고 버텼지만 쉽지 않았다. 새 사업 운영 자금 빚까지 더해졌다. 방황이 시작됐다. 노숙도 했다. 죽고 싶은 때도 많았다. "서너 번쯤 자살을 시도했어요. 괜히 회사 나왔다는 생각도 들었죠."
1년여 만에 어렵게 취업이 됐다. "그때는 그래도 40대니까 회사에서 써주더라"고 했다. 로봇을 만들어 대학 등에 납품했는데 반짝 잘되던 사업 아이템이 시들해지자 회사가 부도가 났다. 3년 만에 또 실업자가 됐다.
"도시에서는 일용직 할 게 없어요. 건설 경기가 죽어 있으니까. 여자들은 식당일이나 이런 게 있는데 남자들은 더 없죠."
그래도 구직을 계속했다. 장사는 안 하고 싶었다. 실업 급여를 받으면서 이력서를 20번도 넘게 넣었다. 어떤 회사의 인사 담당자로부터는 "그 나이면 회사에서 나갈 시기인데 누가 뽑겠냐"는 말도 들었다. 자영업을 다시 하려 해도 종잣돈이 없었다. 막막한 마음으로 1년을 보냈다.
"정치인들이 보편적 복지 얘기는 하는데 그 틀은 갱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예요. 은퇴하고 사업 한 번 망했다고 일 안 할 수 없는 거 거든요. 체력의 한계는 있지만 요즘 60대는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연령이잖아요. 또 일을 해야 건강하게 살지."
친구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하나 내줬다. 그때 커피 기계를 사무실이나 가게에 설치해 주는 일을 1년 동안 곁눈으로 배웠다.
"하다 보니 커피 용품 파는 쇼핑몰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커피숍은 망해도 용품은 그대로 있을 테니. 자본이 적어도 쇼핑몰을 열 수 있어서 인터넷몰을 해보자 했죠."
문제는 돈이었다. 동생과 친척들에게 3000만원을 빌리고 정부 창업 비용 1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정부의 창업자금 대출을 받고 지난해 추가로 1, 2금융권에서도 돈을 빌렸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는 데 빚 없게 할 수는 없다"며 "없으면 좋지만 1억~2억원씩 여유자금 깔고 있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지금 쇼핑몰을 운영한 지도 2년째다. 매출은 300만~500만원에서 들쭉날쭉한다. 물건 대금을 치르고 가게 임대료와 카드수수료, 대출 이자를 주고나면 월 100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지난 2년간의 성적표는 4000만원 적자.
가장 큰 짐은 이자다. 대출이 늘어나는 게 문제다. 기존 빚을 갚으려 새 대출을 받고 이자비용을 더 키우는 식으로 꼬리를 문다.
"정부 대출은 금리가 4%지만 은행권만 해도 10~15%로 뛰어요. 캐피탈은 20%나 되죠. 원리금, 이자 합치면 월 80만원은 나가는데 원리금 상환도 3개월마다 미루고 있지. 계속 쌓이면 금융비용만 월 100만원 될 거란 말이에요. 그럼 또 돈 빌려야 하니 악순환인 거예요. 그래서 실제 얼마나 버는지 따지기 싫더라고요."
혼자 장사하는 것이 힘들지만 인건비가 부담돼 사람을 쓰기도 쉽지가 않다. 아르바이트만 아주 가끔 쓴다. 그러다 보니 퇴근도, 휴일도 따로 없다.
그래도 그는 "지금이 마음 한편은 더 편하다"고 했다. 쉬지는 못하지만 직장인보다 생활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는 자영업자의 3%만이 성공한다고 봤다. 나머지는 6개월에서 1년, 3년 안에 접는다. 그만큼 신중하라는 얘기다.
박씨는 "5년만 버티면 기반 잡히고 시장에 고정 고객 생겼다고 본다"며 "근데 매출 안 나오니 있는 돈 까먹고 또 대출받고 하니까 감당 안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산업부), 이재덕(경제부), 이혜인(사회부) 기자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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