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자료 ▒

스페인 40대 가장 가르시아 “내게 잘못 있다면 집 한 채 산 것”

천하한량 2012. 6. 19. 23:11

디에고 가르시아는 스페인의 평범한 40대 가장이다. 그는 2007년 은행에서 20만유로(약 2억9100만원)를 대출받아, 마드리드 시내에 있는 45㎡(약 13.6평) 크기의 주택을 구입했다. 1000유로짜리 월세를 살던 그는 이 집을 되팔아 목돈을 챙길 계획이었다. 가르시아는 "당시 월급이면 은행에 매월 내야 하는 대출이자를 감당할 자신이 있었고, 주변에서 이런 방식으로 집을 사고팔아 이익을 얻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르시아가 집을 산 이듬해인 2008년부터 집값은 폭락하기 시작했고, 그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위기가 찾아와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됐다. 가르시아는 "새 직장을 찾았지만,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며 "벌이가 줄면서 대출금을 제때 갚을 수 없었다. 결국 연체를 하게 됐고, 집은 은행에 차압당했다"고 말했다.

당시 가르시아가 은행에 갚아야 할 대출금은 18만유로가량. 20만유로를 웃돌던 집값은 14만유로까지 떨어졌다. 그는 "집을 빼앗기고도 4만유로의 대출금을 갚아야 했다"며 "대출금도 제때 못 갚으니 28~38%가량의 가산이자가 붙으면서 갚아야 할 대출금은 점점 불어났다"고 말했다. 19일 이런 사정을 기자에게 털어놓은 가르시아는 "잘못이 있다면 집 한 채 산 것인데, 내 인생은 지금 '파산' 상황에 몰려 있다"고 하소연했다.

마드리드 쿠아트로 카미노스 주변 시장에서 공인중개업체를 운영하는 고르카 오헴바레나 사라초(33)는 "1996년 오르기 시작한 스페인의 부동산 가격은 2008년 정점을 찍었다"며 "이 기간 부동산 가격은 해마다 10~15%가량 올랐고, 부동산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르면서 너도나도 부동산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들도 주택 관련 세금까지 대출해주겠다면서 '거품 키우기'에 동참했다"며 "빚을 내서 집을 사고, 이 집을 팔아 차익을 남긴 후 더 많은 금액을 대출받아 여러 채의 집을 사서 팔아넘기는 방식의 부동산 투기가 도처에서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10채 정도를 사고파는 일도 흔했다"며 "중산층뿐이 아니다. 저소득 가정들도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면서 마드리드 시내 주택 가격은 폭락을 거듭했다. 쿠아트로 카미노스 인근의 한 건물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80만유로를 호가했지만 현재는 30만유로가량으로 떨어졌다. 또 불경기로 공사를 중단한 건물들이 속출했다. 마드리드 외곽을 둘러보면 짓다 만 건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거리마다 빈 상점들도 부지기수다.

마드리드 주 당국자는 "부동산 담보대출 부실화로 인해 스페인 금융권이 감당해야 할 손실 규모는 최대 2600억유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사라초는 "스페인 주택 가격은 내년까지 계속 하락할 것"이라며 "터져버린 부동산 거품과 이에 따른 은행 부실이 지금 스페인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마드리드 |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