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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외도로 술마시고 필름끊긴 여성, 결국…

천하한량 2012. 6. 7. 14:09

혼자있는 시간 많아지면서 우울증 찾아와
맥주 1~2캔으로 시작된 음주, 나중엔 소주·양주로
남편 외도·고부갈등이 주원인… 스트레스 풀려 술 마셨다가
오히려 갈등 증폭돼 결국엔 가정 파괴로 이어져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주폭의 범주엔 여성도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 주폭이 급증하고 있다. 부엌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주부를 지칭하는 '키친드링커(Kitchen drinker)'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키친드링커는 자기 몸을 심각하게 망칠 뿐 아니라 가정을 파괴하고,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본지 취재팀은 키친드링커의 개인적·사회적 문제를 들여다보고자, 주거 단지가 밀집한 서울 중랑구를 관할하는 중랑경찰서 형사과 경찰관들을 동행 취재하고, 경기도 의왕에 있는 알코올 질환 전문 병원인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한 여성 환자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5일 오후 10시쯤 한 부부가 경찰관의 손에 이끌려 경찰서로 들어왔다. 남편 임모(55)씨가 길이 20㎝의 식칼을 들이대고 위협한 아내 이모(60)씨를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막걸리 3병과 맥주 1병을 마셨다는 이씨는 술에 취해 경찰서에 온 뒤에도 횡설수설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를 거치며 술에서 깼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편 임씨는 "평소 멀쩡한 아내가 술만 마시면 180도 달라진다"고 했다. 멀쩡한 아내가 키친드링커가 돼 남편을 살해하는 살인범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술 취해 부부 싸움하다 흉기로 남편 위협… 6일 새벽 2시쯤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술에 취해 부부 싸움을 벌이다가 흉기로 남편을 위협한 여성이 조사를 받고 있다.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한 여성들도 이씨처럼 평범한 주부들이었다. 3개월 전 이 병원에 입원한 김지희(가명·30)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했고, 세 아이를 낳았다. 김씨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지금껏 뭐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이 찾아왔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김씨는 1~2캔씩 마시던 맥주와 어느새 온종일을 함께했다. 김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들 밥 주면서 마시고, 청소하면서 마시고, 전화하면서 마셨다"고 했다. 일주일에 2~3번씩 아이들에게 손찌검도 했다.

2남 1녀를 둔 정숙자(가명·53)씨는 남편의 외도로 키친드링커가 돼 4개월 전 병원에 입원했다. 지난해 9월 이전 정씨가 술을 마신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기껏 키운 자식들은 사회생활을 하느라 집에선 '잠'만 잤다. 정씨는 "삶이 너무 외로워 필름(기억)을 끊으려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사랑중앙병원 김석산 원장은 "우리나라 여성들의 음주량 증가 속도가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빠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며 "주부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한잔 두잔 먹다 보면 순식간에 키친드링커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키친드링커(kitchen drinker)

'주방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란 뜻. 주로 가족들이 없는 시간대에 집에서 지속적으로 혼자 술을 먹는 주부를 일컫는 신조어로, 술을 과하게 마시는 여성까지 통칭한다.

6일 오전 1시쯤 연신내역 부근에서 한 여성이 술에 취해 길에 앉아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천자토론] 술에 너그러운 대한민국,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