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자료실 ▒

"나에게 건축은 OO이다" 거장 35인의 육성

천하한량 2012. 1. 28. 16:23

건축가―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작품과 말

루스 펠터슨·그레이스 옹-얀 엮음|황의방 옮김
까치|376쪽|4만원

건축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일반인이 건축 서적을 넘기기란 쉽지 않다. 건축 책을 펴면 건축가 이름도 생소한데 쏟아지는 전문용어 속에 길을 잃고 만다. 교과서 없이 참고서부터 읽는 격이랄까.

이 책은 색다른 구성으로 건축의 문턱에서 망설이는 독자들에게 꽤 친절히 다가간다. 안도 다다오·렌조 피아노·노먼 포스터 등 프리츠커(Pritzker)상을 탄 현대 건축계의 거장(巨匠) 35명을 한데 모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프리츠커상은 1979년 미국의 프리츠커 가문이 소유한 호텔 그룹 하얏트 재단이 제정한 건축상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책은 2010년 수상자인 일본의 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부터 연대순으로 거슬러 올라가 1979년 초대 수상자 필립 존슨까지 매해 수상 건축가별로 대표작 4~6점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책 의 가장 큰 미덕은 화자(話者)가 35명의 건축가 자신이라는 점이다. 수상 건축가들이 저서·인터뷰·강연 등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여기저기서 발췌한 다음 이를 재주 좋게 이어 붙여 완결된 글을 만들어냈다. 100% 'Ctrl+C(복사하기)'와 'Ctrl+V(붙여넣기)' 과정을 통해 한 권의 책이 탄생한 것이다. 때문에 간간이 허술한 이음매가 보이기도 하지만 비평가의 왜곡이나 가미(加味) 없이 건축가의 목소리로 건축물의 설계 과정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스위스의 자크 에르조그·피에르 드 뫼롱이 설계한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나뭇가지를 얽은 듯한 형태 때문에 새둥지란 별명이 붙었다. 중국의 인권 문제를 들어 설계 참여를 비난하는 목소리에 대해 두 사람은“베이징의 그 누구도 우리에게 이데올로기적인 건물을 지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까치 제공

건축가들의 명언을 보고 있노라면 '건축 잠언집(箴言集)' 같기도 하다. 콜룸바 미술관을 설계한 페터 춤토르는 "나는 모든 건물이 일정한 온도를 가진다고 믿는다"고 속삭인다. 런던의 총알 모양 건물 '30 세인트 메리 액스'로 유명한 노먼 포스터는 "건축은 짓는 기술이다"며 건축에 드리워진 온갖 미사여구를 걷어낸다.

작품에 대한 허심탄회한 소회도 귀기울일 부분이다. 프랑크 O. 게리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 대해 "의식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육감적으로 한 발상이었다"고 말한다.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스위스의 자크 에르조그·피에르 드 뫼롱은 중국의 인권 문제를 들어 자신들의 설계 참여를 비난하는 목소리에 대해 "베이징의 그 누구도 우리에게 이데올로기적인 건물을 지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렘 콜하스는 신문기자에서 건축가가 된 개인적 경험을 말하며 "채워지지 않는 호기심과 정보를 재빨리 찾아내서 농축시키는 저널리스트의 경험이 늦게 건축 공부를 시작하는 데 대한 두려움을 덜어줬다"고 한다.

문자의 수렁에 빠지기 싫다면 방대한 사진 사이를 산책하며 세계 건축 기행을 한다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책장을 넘겨도 좋다. 책장을 덮는 순간, 작은 아쉬움이 새나올지도 모른다. 일본은 4번이나 가져간 프리츠커상을 언제쯤이면 한국 건축가가 탈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