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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 목숨건 인생… 하루 15시간 달려도 월 130만원”

천하한량 2011. 11. 18. 17:54

퀵서비스 기사 구철회(33)씨의 배기량 125㏄ 오토바이가 13일 오전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 늘어선 차량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시속 80㎞/h로 달렸다. 이날 수시 2차 논술 시험을 두 곳의 대학에서 치르는 한 수험생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까지 15분 만에 실어다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논술 시험이 있는 오늘만 특별히 그런 게 아니라 매일같이 길바닥에 목숨을 내놓고 분초를 다투면서 산다"고 말했다.

↑ 열악한 저임금 구조 속에서 교통사고 위험을 안고 사는 오토바이 배달원들이 13일 서울 종로구 종로6가 동대문종합시장 부근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

퀵 서비스 기사로 살아온 지 4년. 구씨의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두툼한 방한 바지를 무릎까지 올리자 정강이 군데군데에 피멍자국도 보였다. 그는 "대부분 고객들이 재촉을 해 빨리 달리는 통에 맨홀 뚜껑에 미끄러지거나 자동차에 부딪혀 타박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며 "비나 눈이 오는 날에 큰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 4년 동안 구씨에게 휴일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꼬박 15시간을 일하고, 주말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을 달린다. 구씨는 특별하게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쉬지 않고 일을 한다. 하루 15시간 주 7일 근무로 얻는 한 달 수입은 130만∼ 200만원. 운이 좋으면 200만원을 벌지만 일거리가 없으면 130만원 정도가 고작이다.

구씨는 "대부분 퀵 기사들은 프리랜서 형태로 일을 하기 때문에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면서 "하루 평균 20건의 주문을 받아도 배달 가격이 택시처럼 표준 요금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수입이 불안정하다"고 말했다. 구씨는 6개월 전만 해도 서울 시내 안에서 물건을 배달하면 보통 1만3000원에서 1만5000원 정도의 요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우후죽순 생겨난 퀵 서비스 업체끼리 가격 경쟁이 붙어 같은 일을 하고도 반값만 받고 배달을 하고 있다.

구씨는 결혼비용이 없어 아내와 예식도 치르지 못했다. 월세 3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사는 그는 백일된 딸과 아내와 함께 사는 세 식구의 가장이다. 구씨가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하루 담배 한 갑 2500원이 전부다. 하지만 그는 "내가 못 쉬고 못 입고 못 즐기더라도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돈을 많이 모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면서 "회사에 납부하는 수수료 23%가 조금이라도 낮아지면 한결 형편이 나아질 텐데…"라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쯤 구씨는 휴대정보단말기에 '주문이 떴다'며 황급히 노원구 상계동으로 떠났다. 그는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퀵서비스노동조합에 따르면 구씨와 같은 퀵 서비스 기사는 전국적으로 대략 17만명으로 추산된다. 대부분 평균 12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면서도 벌이는 시원찮다. 더구나 퀵 서비스 기사의 85%가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배달 중 사고를 당하더라도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도로에서 일하는 퀵 서비스 기사들은 각종 호흡기 질환 및 안구건조증, 난청 등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만난 퀵 서비스 기사 민경복(59)씨는 "항상 오더(주문)를 받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니다 보니 이명 현상이 생겼다"며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귀 상태가 안 좋다"고 말했다.

낮 시간 동안 분주히 도심을 질주했던 퀵 서비스 기사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출 때 또 다른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들이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달리기 시작한다. 바로 음식 업종 배달 근로자들이다. 14일 서울 중구 흥인동의 한 야식 전문 식당에서 만난 배달원 주도완(50)씨는 매일 오후 9시부터 오전 9시까지 야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2003년 다니던 공기업에서 퇴직을 한 후 번번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그는 마지막 생계 수단으로 배달 일을 시작했다. 아내와 열아홉, 스물셋 된 아들 둘에게 '미안했다'는 주씨는 3개월 전 배달 일에 뛰어들었다. 주씨는 "배달 일을 하면서부터 저체온 증상이 생겼다"며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땀이 흘러 옷을 두껍게 입지 않는데, 오토바이를 탈 때는 바람 때문에 몸이 언다"고 말했다.

주씨는 교통사고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그는 "30분 배달제가 폐지됐다곤 하지만 여전히 고객들은 음식을 빨리 갖다 주길 바라기 때문에 급할 땐 100㎞/h 정도까지 달리기도 한다"며 "들어놓은 보험 하나 없는데, 사고가 나면 끝장"이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만난 식자재 운반 배달부 이모(43)씨도 "야간 오토바이 배달부들은 다들 목숨을 내놓고 산다"면서 "힘든 배달일 하면서라도 어떻게든 살려고 아등바등 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정경기자 verit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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