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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스페인'에서의 비몽사몽 대국

천하한량 2011. 7. 21. 19:19

'밤의 스페인'에서의 비몽사몽 대국
시에스타, 플라맹코, 투우의 나라 스페인
2010-08-16 오전 10:32:28 입력 / 2010-08-16 오후 12:43:12 수정


▲세비야의 밤(조명 왼편: 황금 탑 13세기 감시탑 오른편: 대성당/알카자르)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주택가


<안달루시아의 비밀>

스페인 남쪽지방 안달루시아(Andalusia)는 내가 벌써부터 가 보고 싶었던 곳이다. 서기 711년 서고트 왕국을 물리치고 무어족이 이스람 왕국을 세운 후 8백 년 동안 기독교유럽에서 생존한다. 회교, 유대교, 기독교 3종교가 공존하며 그 오랜 기간 황금기를 누렸던 비밀은 무엇일까? 이런 이질적 복합문화는 안달루시아의 정서, 과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아직도 숨쉬고 있다.

안달루시아의 크기는 남한과 비슷하다. 이스람이 지배하는 동안 이 곳은 유럽에서 과학이 가장 발달된 곳이었다. 이 황금기는 2백 년 이상 계속 되었다. 영국 옥스포드대학 교수들도 이 곳에 와서 공부한 후 가서 가르쳤다. 당시 안달루시아는 유럽의 타 지역에 비해 학문적으로 우월했고 종교, 문화적으로는 관대했다. 이 지역을 정복한 아랍계 우마야드(Umayyad) 왕조가 이슬람정신을 올바르게 실천해서 가능했다고 한다. 이 다문화사회(Multi-cultural society)에서 현 세계가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번영을 누리던 이 지역은 점차 이슬람 세력이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오만해 지면서 기울어진다. 그들은 회교로 개종을 강요하고 저항세력은 처형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분열이 일어나 여러 작은 나라로 갈라지고 자기네끼리 싸우기 시작한다. 국력이 약화된 회교왕국은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공동 왕에게 멸망한다. 기독교 세력은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지 3개월 내로 카톨릭교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교 신자들은 추방됐고 회교는 금지됐다.



회교가 종말을 고한 1492년에 콜럼버스(Columbus)는 이 곳을 떠나 미 대륙을 탐험한다. 무어족은 자기네가 왔던 북 아프리카로 철수한다. 부부 왕은 알함브라 궁을 비롯 아랍문화재의 아름다움에 매료 당해 헐지 말라고 한다.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기독교로서는 예외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1519년에는 마젤란(Magellan)이 여기를 떠나 최초로 세계일주에 성공한다.

아랍어로 알-안달루스(Al-Andalus)라 불렸던 안달루시아의 황금기 유산은 보존 되었고 이 아랍문화는 전 유럽에 과학, 학문, 예술 분야 발전에 오래도록 영향을 끼쳤다. 역사의 현장으로 주인이 여러 번 바뀐 곳이라 그 만큼 문화유산도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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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교도들은 자기네 역사에서 알-안달루스를 자랑스러운 황금기로 회상하고 있다. 그런 역사교훈을 오늘날 회교사회가 잘 배워야 한다. 회교가 다른 문화와 친화적일 때 번창하고 배타적일 때 기울어지던 패턴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파울로 코엘로(Paulo Coelho) 작품 “연금술사 (The Alchemist)”에서 주인공 산티아고 소년이 아프리카에 가서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안달루시아 황야에서 몇 년을 보낸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안달루시아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 더욱 커 졌다.

내가 마드리드에서 볼 일을 끝내고 나니까 안달루시아에 빨리 가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진다. 기차역으로 가서 세비야행 급행열차표를 샀는데 ‘AVE’라는 우리나라 ‘KTX’같은 기차다. 가격이 30만원 이상이나 된다. 세비야(Sevilla)는 인구 75만으로 안달루시아 최대도시다. 오페라 광(狂)인 나는 모차르트의 ‘돈조바니(Don Giovanni)’와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로시니의 ‘세빌리아 이발사(Barbiere di Siviglia)’ 비제의 ‘카르멘(Carmen)’ 등 4개의 오페라 무대인 세비야를 어려서부터 동경해 왔다.


▲스페인 색깔(Spanish red)의 세비야 역 안내소. 내가 길을 묻고 있다.

힘들여서 온 안달루시아에서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 말라가, 론다는 물론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을 돌며 백색마을(White villages)도 돌아 봐야지. 마음이 설렌다. 집 사람도 나에게 얘기만 들어 오던 안달루시아 여행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세비야에 도착하니까 전날 미리 와있던 오사범 부부가 역에서 우리 부부를 맞이한다.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자 곧 세비야 바둑회장 호세(José Manuel Vega)에게 연락하여 만날 장소를 약속하고 시내로 나갔다.



▲차 한잔 하려고 모퉁이 카페로 향하고 있다







▲세비야 거리




<세비야 왕궁 알카자르>

호세가 퇴근 후에 만날 수 있다고 하여 우리는 그 동안 말로만 듣던 이슬람 왕궁엘 가 보기로 했다. 세비야 왕궁인 알카자르(Alcazar)는 대성당과 마주하고 있었다. 큰 기대를 않고 들어간 요새 겸 왕궁인 알카자르를 돌아 보면서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이제까지 보아온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이나 러시아의 에르미타지 궁에서 보던 미(美)와는 전혀 다르다. 성 내부는 여러 다른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알카자르는 쓸데없는 힘이 안 들어가 있다. 모든 게 무리가 없고 자연스럽다. 정원(Patio), 아치도 부담을 안 주면서 완벽하다. 각종문양으로만 장식된 내부는 우리 부부를 계속 감탄만 하게 만든다. 내 기준으로는 이슬람 심미안(審美眼)이 유럽 보다 확실히 상수다. “이 세상에 뭐가 이 보다 아름답겠는가?” 내 기대치를 훨씬 넘는 수준이다. 이번 여행을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오사범에게 “안달루시아 여행은 이 왕궁 하나 본 거만으로도 본전을 뺀 것 같다”고 하니까 웃는다.



▲대성당 옆 길. 저 뒤로 알카자르(Alcazar) 성곽이 보인다




▲세비야의 왕궁 알카자르 입구/성곽내부 왕궁



▲이슬람 왕궁






▲복도



▲천장




▲8가지 색으로 조합된 타일 무늬



▲ 중세에 만든 타일 무늬




▲현대에 만든 타일 문양. 이런 타일 패턴은 공공장소나 가정까지 다 있다.


왕궁을 나오자 오사범이 나에게 바로 건너 편에 있는 대성당을 보겠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슬람 왕궁을 본 감동과 환상을 깨기 싫어서 거절했다. 우리는 카페에 가서 차도 한잔 마시고 점심도 먹은 후 시내에서 호세를 만났다. 호세는 무어족의 피가 많이 흐르는 사람 같았다. 그의 직업이 형무소 간수라고 바르셀로나에서 마크가 귀띔해 주었는데 물어 보지는 않았다. 바둑은 초단이다. 마크가 나에게 “호세의 실력은 2급도 약한데 회장이 되고 난 후에 초단이라고 스스로 올렸다”고 해서 3급인 마크와 실력이 비슷한 줄 알았는데 내가 두어보니까 초단으로도 짠 사람이다.



▲알카자르 성곽 이슬람 궁전은 요새 안에 있다


바둑이라는 공통분모는 인종, 직업, 연령을 초월하여 누구나 가깝게 만든다. 호세를 따라 시내를 몇 시간 걸었더니 몸이 나른해 온다. 그 전에 이미 거리와 왕궁에서 계속된 강행군 때문인 거 같다. ‘여행은 피곤이 그림자처럼 쫓아다닌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피곤은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거리에는 회교양식 주택이 많이 눈에 띈다. 자기 연인의 창가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던 ‘음유 시인(Troubadour)’이 나올 것만 같다. 내가 오페라를 들으며 동경하던 세비야는 이런 주택가 같은 풍경이었다.





▲호세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의논하고 있다 / ‘황금 탑’이 보이는 곳에서 쉬고 있다



▲호세가 열심히 설명하고 다닌다




▲세비야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야행성 생활>

스페인에서 저녁식사 약속을 하면 나는 황당해 진다. 저 쪽에서 “열 시에 하자” 하면 내가 당황해서 “너무 늦다”고 하면 “그럼, 아홉 시 반?” 이런 식이다. 처음엔 여덟 시쯤 되니까 너무 배가 고파서 간식을 좀 먹으면서 견디었다. 바르셀로나에선 아홉 시 반, 마드리드에선 열 시 반, 세비야에선 12시에 저녁을 먹었다. 코르도바에서 아홉 시에 식당에 갔더니 “열 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세비야 바둑회장 호세의 부인이 일하는 클럽도 자정에 문을 열고 새벽까지 영업을 한다. 스페인에서는 새벽 1시나 2시에 하는 음악공연도 많다. 호세가 “스페인에선 밤 열 한시부터 하루가 시작한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의 생활은 완전히 야행성(Nocturnal)이다. 이런 관습은 시에스타(La Siesta 낮잠) 때문이다. 시에스타는 낮 동안에 잠시 일터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스페인의 고유풍습이다. 거의 모든 상점과 사무실이 두세 시간 정도 문을 닫는다. 시내 버스는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섭씨 40도가 넘는 낮 기온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스페인 의회에서 시에스타를 관공서에서는 금하겠다고 발표하여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시에스타는 스페인의 요가다” 하며 데모를 하고 있다.



▲새벽 1시 세비야 거리. 아이들도 나와 놀고 밤이 완전히 살아 있다




▲세비야 클럽. 밤12시쯤 모인다




▲새벽 3시에도 바둑을 둔다.


<세비야 바둑클럽>

호세가 자정쯤 자기 부인이 매니저로 일한다는 클럽에 데려간다. 이 곳에서 바둑 클럽이 만난다. 내가 쇼를 먼저 보고 바둑을 두는데 피곤해서 꾸벅꾸벅 조는데도 “미안하다”고 하면서 클럽 회원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가 바둑을 둔다. “우리에게 앞으로 6단과 두어 볼 기회가 일생에 몇 번이나 있겠느냐?”며 염치 없이 다음 사람이 계속 둔다. 나와 오사범은 이날 새벽까지 비몽사몽간에 바둑을 5 판 이상씩 두었다.

기가 막힌 이야기는 바둑인이 5~60명 밖에 안 되는 세비야에 클럽은 두 군데 있다고 한다. 바둑회장이 부정을 저지르니까 일부가 나와서 클럽 하나를 더 만들었다고 한다. 서로 만나지 않고 따로 논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선 자기네가 스페인 바둑의 중심이라고 하는데 마드리드에서는 “바르셀로나는 바둑인끼리 싸워 클럽에 아무도 안 나오고 망했다”고 한다. 내가 본 사실은 반대다. 꼭 다른 클럽이 안 되길 바라는 사람들 같다. 그러나 누구던지 한국 사람에겐 잘 대해 준다. ^^



▲호세 초단에게 5점 바둑. 스페인 바둑대표로 마인드 스포츠대회에 참가했던 그의 부인이 관전하고 있다




▲세비야에서 호세와 ‘타파’로 야(夜)참


<스페인 음식>

호세와 새벽에 4~5가지 코스로 나오는 ‘타파’를 먹었다. 그 시간에도 손님이 북적 인다. 이 친구가 음식이 나오는 중에도 가방에서 9줄 바둑을 꺼내어 두자고 한다. 스페인 사람은 하루에 식사를 다섯 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빠에야’와 햄의 일종인 ‘하몬’이 있다.





▲빠에야(쌀이 있어 한국인이 잘 먹는다)/ 하몬(스페인식 햄) <플라멩코와 투우의 지방>

<플라멩코(Flamenco)>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니아 사람들이 “안달루시아는 투우하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놀고 먹는다” “우리가 죽어 라고 일해서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분노하는 지역이다. 스페인은 ‘투우’와 ‘플라멩코’의 정열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지만 내가 느끼는 스페인은 좀 다르다. 플라멩코(Flamenco) 춤을 한참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복잡한 역사가 만들어 낸 ‘한(恨)’의 표현 같다. 절제된 움직임, 짙은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보는 이의 마음을 복 바치게 만든다.



▲호세 부인 클럽의 플라멩코

플라멩코는 안달루시아, 집시, 무어, 비잔틴 문화가 합쳐서 나온 결정체라고 한다. 투우와 플라멩코는 바르셀로나 쪽 문화가 아니다. 내가 투우모자를 바르셀로나에서 쓰고 다녔더니 마크가 “그 걸 쓰고 다니면 여기에선 미움을 받는다’고 한다. 호세의 부인이 일하는 곳은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을 위한 클럽이다. 그래서 상업화가 안 되어 있다. 공연에 관객도 참여한다. 흥을 돋우기 위해 “Olleh!” 등 여러 가지 ‘추임새’ 같은 걸 넣는다. 우리는 12시 자정부터 몇 시간 동안 여기서 바둑도 두고 플라멩코도 보고 스페인 음악도 들었다. 졸려서 피곤하기는 했어도 이 곳에서 하루 밤은 많은 걸 느낀 값진 경험이었다.

 



▲플라멩코는 안달루시아, 집시, 무어, 비잔틴 문화가 합쳐서 나온 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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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Bullfight)>

투우는 소를 상대로 투우사가 대결하는 경기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투우사의 대부분이 남부출신이다. 이 경기는 일단 시작하면 소가 죽거나 투우사가 죽어야 끝난다. ‘죽음의 과정’을 보는 경기다. 바둑이 승부가 나야 끝나는 거와 같다. 인간은 죽음을 지켜 보면서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잔인한 동물이기도 하다. 로마시대 검투사나 중세에 마녀사냥도 결국은 그 걸 위해 만들어 진 거라고 생각된다.






동물애호가협회에서 ‘투우’ 반대운동을 자주 벌이나 끄떡도 안 한다. 인간본성이 그 걸 원하기 때문이다. 투우는 300여 년 전 론다에서 시작되어 스페인 문화의 일부로서 자리를 잡았다. 모든 도시에는 투우장이 있으며 안달루시아에만 투우장이 70여 곳 있다. 투우사는 노란색 옷을 입는 것은 금기 사항이어서 관객도 노란색 옷은 절대 입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재앙을 부른다는 믿음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투우사 델가도(José Delgado) 동상/세비야 투우장


투우는 엄격한 규칙에 의해 진행된다. 24시간 동안 빛을 차단한 암흑 속에 있던 소를 경기장으로 끌어내어 붉은 천으로 소를 흥분 시키면서 시작한다. 차례로 창과 작살을 꽂으면 소가 극도로 흥분하여 날뛰는데 그 때 투우사가 자기는 몸을 조금만 움직이며 붉은 천으로 성난 소를 교묘히 피한다. 이 과정은 무용처럼 예술로 받아들여진다. 약 20분에 걸쳐 투우사가 소를 서서히 죽인다. 마지막에 소의 심장에 칼을 꽂음으로 이 경기는 끝난다. 비제(Bizet)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에서 에스카미요가 부르는 ‘투우사의 노래(Toreador's Song)’는 투우사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성난 소의 돌진 투우사는 많은 훈련을 받고 실전에 임한다


스페인 3 편에 계속……

< 한상대(전 시드니대학 교수 sdhahn@gmail.com 017)276-5878)

PS: 스페인의 오은근(Lluis Oh)사범 부부와 마르크 곤잘레스(Marc Gonzales) 바르셀로나 바둑회장이 TV 방송에 출연하여 바둑을 소개했다. 스페인에 간지 3년 된 오사범은 스페인어로 강의한다. 오사범 부부의 스페인어 수준은 현지 사람들도 인정한다. 오사범은 영어(성인반), 스페인어, 카탈란(Catalan 카탈루니아 방언)까지 구사하면서 바둑 보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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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tygem.com/news/news
TYGEM / 한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