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거 라이너스 지음 / 김용현 옮김 | 한스미디어 刊 | 287쪽 | 1만원
삶의 무게에 축쳐진 어깨를 펴라 50代, 이제 남은 3분의 1 인생
더 늦기전에 즐겨라 지금 아니면 언제 즐길 것인가
TV를 보다 또래 사내가 나오면 놀라운 것이라도 발견했다는 듯 아내에게 묻곤 했다. “나도 저 사람 만큼이나 늙어 보여?” 아내는 “저 정도는 아니다”고 얼버무렸다. 이런 문답이 몇 차례 거듭되면서 아내의 대꾸가 다분히 위로성이라는 것, 내 얼굴도 적어도 나이 만큼은 삭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이제 그런 우문(愚問)은 하지 않는다. 나이 쉰이 되자 그리 됐다.
나 이 들어가는 과정은 점진적이지도 순하지도 않다. 우스꽝스러워진 제 모습을 받아들일 준비도 안 돼있는데 예고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눈꼬리는 처지고 안구 흰자위는 탁해졌다. 온 얼굴에 세월과 피곤의 더께가 앉았다. 미어지고 비어져나온 살들은 또 어떤가. 황지우의 시처럼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쉰부터는 거울 보기가 싫다. 시인 강태기도 “가끔 화장실 거울을 보며 별 볼 일 없는 사내에게 욕을 퍼붓는다”고 했다. 그는 쉰 넘긴 사람을 보면 참 지겹게도 오래 산다고 경멸하던 때가 있었는데 정작 그도 이냥저냥 살다보니 쉰줄에 들더라고 했다.
잡지사에 취직한 김동인이 중절모를 쓴 채 책상에 앉아 일했다. 보다 못한 사장이 “김선생, 사무실에서는 모자를 벗으시지요” 한마디 했다. 김동인은 벌떡 일어나 나가더니 종내 무소식이었다. 밥벌이에 목을 매는 쉰 살 들에게 김동인의 일화는 일화일 뿐이다. 곤고(困苦)한 불모의 시대에 감정은 무뎌 가고 욕망은 소진돼 간다. 모든 게 심드렁하고 시큰둥하다.
활력 넘치고 완숙한 50대를 구가하는 이도 많을 텐데 너무 처량한 넋두리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독일 건축가이자 작가 홀거 라이너스가 쓴 ‘남자 나이 50’은 그렇게 어깨 처진 남자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동년배 50대 남자들을 꾸준히 관찰하고 평가한 뒤 자신에 관한 성찰을 썼다고 했다. 그는 흔히 ‘중년’과 ‘위기’를 한 쌍으로 간주하지만 이 비참한 짝짓기는 50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암울한 환상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저자는 인생의 3분의 2는 결정됐고 3분의 1을 남긴 쉰 살이 인생 최고의 시기라고 강조한다. 밑천은 누구나 쥐고 있는 두 장의 ‘히든 카드’, ‘창창한 미래’와 ‘과거 경험’이다. 그는 가족·정치·종교·죽음·섹스부터 집·자동차·몸치장에 이르는 20여 항목에서 시종 스스로에게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라고 이른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