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프로레슬링 전성기 이끈 '당수촙' 대가 장충체육관 미어터져… " 그때 인기 말로는 못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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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했다. 프로레슬링 경기가 있는 시간엔 거리에 택시가 뜸했고, 경기장인 서울 장충체육관은 관중들이 미어졌다. 일제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일본 선수들과 경기할 때는 " 쥑이라(때려라), 쥑이라 " 를 연호하며 열광했다. 텔레비전이 있던 만화가게는 모여드는 사람들로 경기장 대신 몸살을 앓아야 했고, 중앙정보부까지 나서 " '경기를 더 하라'고 할 정도 " 였다. 정치는 암울했고, 생활에선 아직 보릿고개이던 때다.
" 그때 인기, 그건 말로 못하는기라. " '당수촙 대가' 천규덕(75)씨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김일(2006년 78살로 별세)의 박치기, 재일동포 여건부(69·일본 프로레슬링 이벤트업체 신일기획 회장)의 알밤(꿀밤)까기와 함께 1960~70년대 한국 프로레슬링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허약한 몸을 단련하려고 중학교 2학년 때 태권도(당시엔 흔히 '당수'라 불림)를 시작했다. 공인 3단 때 부산에서 태권도 사범이 됐다. 우연히 동네 전파사 앞에 몰린 사람들을 따라서 본 텔레비전에 재일동포 역도산(본명 김신락·일본프로레슬링협회 창설·1963년 38살로 별세)의 경기가 기가 막히게 멋있게 보였다고 한다. 그는 " 역도산처럼 나도 당수를 하니까 안될 것도 없겠다 " 고 생각해 곧바로 태권도부 옆 레슬링부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1m80·110㎏의 당당한 체구가 " 날아다녔다 " .
대한프로레슬링협회(KWA) 초대챔피언 장영철(2006년 77살로 별세)씨와 함께 일본선수들을 국내로 불러 경기를 치렀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김일씨가 " 미국에 가서 본고장 기술을 배워오라 " 고 했다. 미국에 도착하자 현지 관계자들은 " 무슨 기술이 있냐 " 고 물었고, 그는 대뜸 " 돌을 좀 가져달라 " 고 했다. 그리고 맨손으로 돌을 '작살'냈다. 그뒤 그는 거기서 " 레슬링이란 게 이런 거구나 " 라는 걸 배워 한국에 돌아왔다. 한-일 최고 인기스타였던 역도산이 손을 딱 한번 잡아보고 일본에 데려가겠다고 했을 정도로 단련이 돼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활은 엉망이었다. 시합이 뜸하게 열려 생계유지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전해들은 영진약품 김생기 창업주가 그를 불러 정식직원으로 채용해줬다. 낮엔 일하고 밤엔 맘놓고 훈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대목을 보면 마치 영화 < 반칙왕 >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 경기가 있을 땐 회사에 허락을 얻어 링에 올랐고, 경기가 끝난 다음날엔 몸이 뻐근하고 아파와도 출근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기 마련. " 레슬링은 쇼다 " 라는 논란이 번지면서 분신과 다름없던 레슬링이 팬들한테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 아니다. 천규덕씨에게는 당시를 기억하게 해줄 빛바랜 사진조차 남아있지 않다. 신문사에서 가져간 뒤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 산증인은 이제 나만 남았다. 살아있는 동안 레슬링을 다시 살리고 싶다 " 고 했다. 그래서 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 프로레슬링 동우회(서울 종로 소재)를 만들어 자택인 인천 간석동에서 이곳을 오가며 후배들을 돕고 있다. " 저물어가는 프로레슬링을 다시 일으키는 시발점으로 삼아야죠. " 내년 봄엔 중국 베이징과 북한에서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준비에 여념이 없다.
한국프로레슬링 1세대 천규덕. 맞잡아본 그의 두손에서 돌같던 단단함은 사라졌지만, 따뜻하다. 이제 75살이 됐다. 그는 여전히 프로레슬링팬들이 다시 환호하는 날을 매일 꿈꾼다고 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천규덕 프로필
1932년 부산 출생
1949년 육군항공대 입대
1961~1985년 프로레슬링 선수
1964~1985년 영진약품 근무
1975년 한국프로레슬링 헤비급 챔피언
1978년 극동 태그매치 챔피온 등
1998년 프로레슬링동우회 결성
부인과 탤런트 천호진 등 2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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