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여성 3명이 유방암 덕분에 인생이 확 바뀌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최경숙 원장(58)은 유방암을 앓고 난 후 의료 봉사 활동에 푹 빠졌다. 초등학교 교사이던 강태욱(43)씨는 학교를 그만두고 소아암 환자를 위한 자원봉사에 나서 ‘병원 학교’ 교사로 변신했다.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김명자(45)씨도 퇴직 후 아예 유방암 예방 홍보강사로 나섰다. 그들은 “봉사를 통해 삶의 새로운 기쁨을 얻게 됐다”며 “유방암이 오히려 우리 인생에 축복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의료 봉사가 주업이 된 최경숙 원장
1990년대 그는 나름대로 유명한 산부인과 개업의였다. 그러다 1999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는 유방을 잘라내고, 암세포가 전이된 겨드랑이 임파선도 제거했다. 거기에 자궁과 난소까지 떼내는 대수술을 함께 받았다. 이후 그는 6개월간의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최 원장은 “생사의 고비에 있을 때 내 몸이 회복되면 남은 인생을 남을 위해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된 2000년부터 최 원장은 노숙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등을 위한 의료 봉사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의 진료는 예전과 달랐다. 환자가 뭘 진정으로 원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물나는 나환자를 끌어 안고, 장애 환자를 손수 씻어주었다. 20평 남짓한 그의 동네의원(동서 산부인과)에는 의약품과 링거액 상자가 여기저기 잔뜩 쌓여 있다. 진료 요청이 들어오면 언제든지 달려가기 위해서다.
- ▲ 유방암을 앓은 뒤 봉사를 통해 새로운 삶의 기쁨을 얻은 여성들. 왼쪽부터 의료봉사활동에 푹 빠진 최경숙 산부인과 전문의.
동남아시아 지역 나환자 촌을 돌며 무료 진료도 하고,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이라크, 북한에도 찾아가 의료 봉사를 했다. 2002년 카자흐스탄 의료 봉사 중에 뇌염에 걸려 또 다시 죽음의 위기를 맞았지만 이후에도 봉사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소록도 나환자를 돕는 ‘소록 밀알회’를 만들고, 교통사고 등으로 후천적 장애인이 된 사람들을 위한 후원 모임도 이끌고 있다. 가장이 없는 탈북자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보는 가정 맺어 주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병원 학교 선생님이 된 강태욱씨
강씨는 작년 봄 유방암이 처음 발견됐을 때 이미 임파선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그 후 유방 한 쪽을 도려내는 수술과 36번의 방사선 치료, 8번의 항암 치료를 견뎌야 했다.
“무용지물이 된 느낌에 참담했습니다. 병이 나으면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죠.”
- ▲ 서울 신촌세브란스 어린이병원 내 병원학교에서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강태욱씨. /세브란스병원 제공
그는 몸이 회복되자마자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이 운영하는 ‘병원 학교’ 교사로 자원 봉사를 시작했다. 빡빡머리에 링거를 주렁주렁 매단 어린 암 환자들이 학생인 데다 학년도 제각각이라 수업 준비가 만만치 않다. 강씨는 지난 9월 첫 수업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수업 도중에 한 학생이 갑자기 토했어요. 비릿한 항암제 냄새가 확 풍기는데, 내가 겪었던 항암 치료의 끔찍한 고통이 떠올라서, 그리고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불쌍해서 펑펑 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엄마가 마음 아파할까 봐 울지 않는다는 어린 여학생도 있다”며 “아이들에게서 제가 되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일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땐 늘 뭔가 부족하다 싶었는데 지금은 제가 교사로서 꿈꾸던 수업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방암 예방 홍보 강사가 된 김명자씨
김씨는 지난 2000년 가슴에 멍울이 만져졌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1년 이상 암을 키웠다. 2001년 가을에야 병원을 찾은 김씨는 유방암 2기말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가 양쪽 가슴에 퍼졌기 때문에 그는 두 유방을 모두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항암주사 맞을 땐 전기고문이라도 받는 느낌이었어요. 유방암을 조기에만 발견해도 이런 고통은 막을 수 있었잖아요.”
- ▲ 유방암 예방 홍보 강사로 변신한 김명자씨. /서울대병원 제공
더 이상 자기와 같은 환자가 나와선 안 된다는 생각에 그는 항암 치료가 끝난 2004년 서울대 간호대학에서 운영하는 ‘유방암예방 홍보강사’ 교육을 수료했다. 그 후 여학교나 여직원 모임은 물론 골프장, 찜질방 등 여성들이 많이 모인 곳이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서 유방암 예방 강의를 한다.
“제가 직접 유방암을 겪은 환자라고 하면 다들 눈빛이 달라져요. 수강자 중에 내 강의 덕분에 초기에 유방암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전화를 걸어 왔을 때가 가장 큰 보람이지요.”
그는 “이제 남편에게 내 가슴을 더 따뜻하게 안아 달라고 말할 용기도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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