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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돌·칠순 잔치 … `글쎄요`

천하한량 2007. 10. 24. 00:27
요란한 돌·칠순 잔치 … `글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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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로부터 아이 돌잔치에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장소는 결혼식과 돌잔치 등 집안행사 치르기 좋은 곳으로 최근 떠오르고 있는 서울 시내 모 호텔. 1인당 밥값이 6만원이란다. 사진·비디오 촬영 등 각종 부대비용은 제외한 금액이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오고 말았다. “하객한테 옷 선물이나 축의금을 받으면 절대로 안 되겠다. 금반지 안 받으면 어디 본전이나 뽑겠니.” 아닌게 아니라, 친구는 이미 적자를 각오하고 있었다.

다음은 직장동료로부터 들은 얘기.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아 야근 후 스포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단다. 대형 연회장과 찜질방·마사지실·피부관리실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입구에 들어설 때 어렴풋이 들리던 쿵쿵 하는 음악 소리가, 누워서 마사지를 받으려는데 귀청을 찢는 듯한 노래 소리로 청력을 시험하더란다. 종업원 왈, “이해하세요, 어르신 한 분이 칠순 맞으셨대요.” 그날 밤, 자자손손 돌아가면서 마이크 쥐고 효심을 과시한 탓에 마사지 받는 1시간이 10시간처럼 느껴졌다나. “꼭 나 70살 됐네 하면서 요란스럽게 잔치를 해야 하는 거야?” 동료의 불평이었다.

돌잔치와 칠순잔치는 옛 시절의 유산이다. 유아사망률이 높던 시절, 평균 수명이 오늘날처럼 80을 오르내릴 것을 예상치 못하던 시절 말이다. 그때는 태어나 100일간, 1년간, 60년간, 70년간 살아있는 것이 축하 받을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잔치를 해야 하는 당위성은 소멸됐다. 오히려 다가올 고령화 사회에서 칠순은 고민이 시작되는 나이 아닐까. 자신의 여생을 단순한 연명(連命)이 아닌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더 무겁기 때문이다. 환갑의 고민이 더 깊음은 말할 나위 없다.

아이의 첫번째 생일도 마찬가지다. 첫돌은 이 아이를 앞으로 이렇게 키우자는 다짐을 굳건히 하는 날이어야 하지 않을까. 부모라는 무거운 책임이 주어졌음을 통감해야 하는 날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한테 불편한 옷 입혀 사진촬영을 하도 시켜 다음날부터 고열에 시달렸다는 돌잔치 후일담은 이제 그만 들려왔으면 싶다. 가계에 펑크내면서, 남들 눈살 찌푸리게 하면서 마련한 자리에 미래에 대한 진지한 구상이 끼어들 틈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요즘은 칠순잔치 대신 여행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먹고 마시고 풍악을 울리는 비용으로 부부동반 여행을 다녀온다는 것이다. 소위 ‘실리 선호형’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이들도 간혹 보인다. 자식들이 모아준 잔치비용을 갖고 양로원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며 칠순을 보내기도 한다. 지난해 구호전문가 한비야씨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칠순잔치 비용을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을 살리는 데 써달라”며 보내왔다는 할머니 얘기를 읽고 ‘참 멋진 칠순’이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의미 부여형’쯤 될 것이다. 왜 태어났는지, 왜 여태껏 살아왔는지 의미를 찾고 싶다면 한번쯤 골똘히 생각해볼 일이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