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종사진 50년
한 컷 한 컷… 격동의 현장서 역사를 담았다
사진은 역사의 순간을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증언한다.
사진 한 장은 100줄의 기사보
다, 100마디의 웅변보다 정확하다.
한국일보에 몸을 담은
사진기자들이 포착한 명장
면들을 다시 본다. 국내외 사진보도전서
수상한 작품들이다. 사진기자들은 이 한 컷
을 필름에 남기기 위해 최루탄이 자욱한 거리에서,
첩첩산중에서, 역사적인 현장에
서 두 눈을 부릅뜨고 낮과 밤을 지샜다
아! 나의 조국 1987. 6.10 AP 선정 20세기
100대 사진 선정 고명진기자
6·26 평화대행진이 벌어진 부한
문현로터리에서 웃옷을 벗은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마라"고 외치며 다탄두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에게 달려가고 있다.
한국 민주
화의 상징적인 이 사진은
1999년 AP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됐다. 사진
의 주인공은 찾아지지 않았다.
이동수군의 분신
1986. 5.20. 제 18회 한국기자상,
권주훈 기자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거행된 5월제 개막식 도중,
농대 원예과 이동수군이
학생회관 4층에서 온몸에 불을
붙인채 "미제는 물러가라""경찰은 물러가라
"를 외치
며 투신하고 있다.
분신자살은 이후 대학가에
열병처럼 퍼졌다.
이 사진은 계엄령
하에서 보도되지 못하다가
외신으로 먼저 보도돼 세상에
알려졌다.
김영삼 前 대통령 페인트 달걀 봉변
1996. 6. 3, 제 31회 한국기자상,
고영권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해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
던 중 붉은 페인트가 들어 있는 달걀
세례를 얼굴에 맞고 있다.
순간적인 포착이어
서 김 전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은
아직 사태를 느끼지 못한 상태다.
기적의 소녀 1972.12.2,
제 6회 한국기자상, 1972년 세계보도사진전 은상,
박태홍 기자
서울 고아화문의 시민회관 대화재
당시 4층 회전창틀에 다리가 낀채 매달려
있는 조
수아양을 소방관이 구출하고 있다.
이 사진은 계엄 하에서 보도되지
못하다가 2개
월 후에야 햇빛을 보았다.
박 기자와 소방관은 이후 이 소녀의
후견인 역할을 했
다. 조 양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아기 반달가슴곰1978.10.12, 16회 보도사진전 동상, 한융 기자
바위 틈에서 나뭇가지로
장난질을 치던 반달곰이
셔터 소리를 들었다. 순간적을 긴
장하면서 30m 전방의 위장한
카메라쪽을 바라봤다.
살이 통통하게 쪄 귀여운 반달가
슴곰의 생태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컬러 필름에 담긴 순간이다.
지리산 해발
900m의 무명 능선에서 찍었다.
낙천 분풀이 폭력 2000.2.18,
제 32회 한국기자상,
제 32회 한국기자상, 손용석 기자
공천에 탈락한 한나라당 김호일
(왼쪽.마산 합포)
의원이 18일 오후 당무회의 직후 서
둘러 집무실로 향하는 하순봉총장(오른족)을
?아가 주먹과 발길길로 난타하고 있
다. 김의원이 청년당원의 제지를 뚫고
하총장을 후려치고 왼손 주먹으로 얼굴을 때
린 뒤(사진 가운데) 오른발로
사타구니를 걷어타고 있다.(사진 아래)
다대포항의 이별 2002.10.15, 제 39회
보도사진전 금상, 최흥수 기자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돌아가는 북한 여성응원단이
다대포항에서 만경봉
호에 오르며 눈물을 머금은
채 손을 흔들고 있다. 이들을
뒤따라 온 노인이 철조망
에 올라가 한반도기를 흔들며
배웅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의 첫 증언
1992. 1.13. 제 29회 보도사진전
특별상, 신상순 기자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벌어진
"정신대 피해보상 요구 시위"에서 군대위안부 출
신 김학순 할머니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사진은 역사의 뒷전에 숨겨져
있던 군대위안부 문제를 우리 사회에
알린 첫 보도사진으로 평가받았다. 고 김학순
할머니는 첫 증언자였다.
화염병에 불붙은 전경 고명진기자 -
1987년 23회 보도사진전 금상 , 1986년 4월 30일 중앙대
민민투결성식을 마친 중앙대 학생들이
후문으로 진출,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
자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이 경찰의 몸에
맞아 불이 붙어 뒹굴고 있다.
석등도 쓰러지고 이종철기자 -
39회 보도사진전 가작, 1994년 4월 11일
11일 하오 "개혁의회"승려 7백여명이
총무원 건물로 다시 진입하려다 저지하는 경
찰과 몸싸움을 벌여 대웅전 옆 석등이 넘어졌다.
이 아픔 누가 아랴 최종욱기자 -
28회 보도사진전 동상, 1997년 8월 9일
대한항공 801편 추락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나미츠힐에 처참하게 부서진 기체
를 내려다보며 오열하고 있다.
캄보디아 훈할머니 김민규기자 - 1998년 8월 4일
캄보디아에 버려져 조국을 잊고 살았던
종군위안부 출신 훈할머니가 김포공항을 통
해 귀국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이남이"
라고 써진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훈할머
니는 본지의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로인해 조국을 되찾게 되었
다.
불꺼진 회담 박서강기자 2001.11.8
제 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해 8일
오후 금강산 호텔에 도착한 홍순영(왼쪽)남측
수석대표와 북측 김령성 단장이
북한의 어려운 전력사정으로
갑작스럽게 정전이 되
자 촛불을 켜놓고 환담하고 있다.
제6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위해 금강산호텔에 도착
한 홍순영(왼쪽)
남측수석대표와 김령성 북측 수석대표가
갑작스런 정전으로 촛불
을 켜놓고 환담하고 있다.
린다 김 독점 인터뷰 김희원기자 2000년 5월 8일
린다 김이 8일 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 응접실에서 본보 기자를 만나 이양호
전 국방장관과의 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린다 김은 비교적 건강하고
분명한 태도로 질문에 응했다.
최초로 그와의 면담 인터뷰했었다.
뒤늦은 귀대신고
왕태석기자 -31회 보도사진전 특별상,
1994년 10월 25일
국립묘지 전사잔 명단에 올라와 있던 조창호
소위가 포로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탈출
하여 한국에 들어왔다. 25일 層?통합병원에서
문병온 후배인 이병태 국방부장관에
게 43년만의 귀대신고를 하고 있다.
학우의 분노 고명진 기자 -
1987년 세계보도사진전 3위, 1987년 6월 15일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입원중이
15일 하오 3시 연세대에서 최루탄 추방 궐기 대
회가 열려 민주광장에 4천여명의
학생.시민들이 모인가운데 진행되었다. 집회가 끝
난 후 많은 학생들은 교문밖진출을
위해 미리 대치돼 있던 진압경찰과
밀고 밀리는
과정을 번복하였다. 교문주변의
담벽철책을 뜯어내어 방석망을
쳐놓은 전경들에게
교련복을 입은 학생 1명이 쇠막대기를
휘두루며 학우를 살려내라고 울부짖고 있
다.
시민에게 뺨맞는 전경환 권주훈 기자 -
25회 보도사진전 금상, 1988년 3월 30일
검찰이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를
해외 재산도피 및 공금횡령등의 죄목으로
소환하자 국내외 보도진 150여명이
청사 마당에서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던 중 한
시민이 전경환씨의 뺨을 때리고 있다.
당시 34세의 젊은 회사원인 김인철씨는 "버스
를 타고 가다가 전경환씨의 소환소식을
듣고 분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며 검찰조사에서 밝혔다.
의령 총기 난동 이기룡기자 -19회 보도사진전 금상, 1982년 4월 28일
의령 우순경의 총기난동으로
12명의 희생자를 낸 문두출 씨의
노제(路祭)에 어머니
와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문씨의
손자가 제주(祭主)가 되어 잔을 올리고 있
다.
한 컷 한 컷… 격동의 현장서 역사를 담았다
사진은 역사의 순간을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증언한다.
사진 한 장은 100줄의 기사보
다, 100마디의 웅변보다 정확하다.
한국일보에 몸을 담은
사진기자들이 포착한 명장
면들을 다시 본다. 국내외 사진보도전서
수상한 작품들이다. 사진기자들은 이 한 컷
을 필름에 남기기 위해 최루탄이 자욱한 거리에서,
첩첩산중에서, 역사적인 현장에
서 두 눈을 부릅뜨고 낮과 밤을 지샜다
아! 나의 조국 1987. 6.10 AP 선정 20세기
100대 사진 선정 고명진기자
6·26 평화대행진이 벌어진 부한
문현로터리에서 웃옷을 벗은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마라"고 외치며 다탄두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에게 달려가고 있다.
한국 민주
화의 상징적인 이 사진은
1999년 AP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됐다. 사진
의 주인공은 찾아지지 않았다.
이동수군의 분신
1986. 5.20. 제 18회 한국기자상,
권주훈 기자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거행된 5월제 개막식 도중,
농대 원예과 이동수군이
학생회관 4층에서 온몸에 불을
붙인채 "미제는 물러가라""경찰은 물러가라
"를 외치
며 투신하고 있다.
분신자살은 이후 대학가에
열병처럼 퍼졌다.
이 사진은 계엄령
하에서 보도되지 못하다가
외신으로 먼저 보도돼 세상에
알려졌다.
김영삼 前 대통령 페인트 달걀 봉변
1996. 6. 3, 제 31회 한국기자상,
고영권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해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
던 중 붉은 페인트가 들어 있는 달걀
세례를 얼굴에 맞고 있다.
순간적인 포착이어
서 김 전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은
아직 사태를 느끼지 못한 상태다.
기적의 소녀 1972.12.2,
제 6회 한국기자상, 1972년 세계보도사진전 은상,
박태홍 기자
서울 고아화문의 시민회관 대화재
당시 4층 회전창틀에 다리가 낀채 매달려
있는 조
수아양을 소방관이 구출하고 있다.
이 사진은 계엄 하에서 보도되지
못하다가 2개
월 후에야 햇빛을 보았다.
박 기자와 소방관은 이후 이 소녀의
후견인 역할을 했
다. 조 양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아기 반달가슴곰1978.10.12, 16회 보도사진전 동상, 한융 기자
바위 틈에서 나뭇가지로
장난질을 치던 반달곰이
셔터 소리를 들었다. 순간적을 긴
장하면서 30m 전방의 위장한
카메라쪽을 바라봤다.
살이 통통하게 쪄 귀여운 반달가
슴곰의 생태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컬러 필름에 담긴 순간이다.
지리산 해발
900m의 무명 능선에서 찍었다.
낙천 분풀이 폭력 2000.2.18,
제 32회 한국기자상,
제 32회 한국기자상, 손용석 기자
공천에 탈락한 한나라당 김호일
(왼쪽.마산 합포)
의원이 18일 오후 당무회의 직후 서
둘러 집무실로 향하는 하순봉총장(오른족)을
?아가 주먹과 발길길로 난타하고 있
다. 김의원이 청년당원의 제지를 뚫고
하총장을 후려치고 왼손 주먹으로 얼굴을 때
린 뒤(사진 가운데) 오른발로
사타구니를 걷어타고 있다.(사진 아래)
다대포항의 이별 2002.10.15, 제 39회
보도사진전 금상, 최흥수 기자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돌아가는 북한 여성응원단이
다대포항에서 만경봉
호에 오르며 눈물을 머금은
채 손을 흔들고 있다. 이들을
뒤따라 온 노인이 철조망
에 올라가 한반도기를 흔들며
배웅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의 첫 증언
1992. 1.13. 제 29회 보도사진전
특별상, 신상순 기자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벌어진
"정신대 피해보상 요구 시위"에서 군대위안부 출
신 김학순 할머니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사진은 역사의 뒷전에 숨겨져
있던 군대위안부 문제를 우리 사회에
알린 첫 보도사진으로 평가받았다. 고 김학순
할머니는 첫 증언자였다.
화염병에 불붙은 전경 고명진기자 -
1987년 23회 보도사진전 금상 , 1986년 4월 30일 중앙대
민민투결성식을 마친 중앙대 학생들이
후문으로 진출,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
자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이 경찰의 몸에
맞아 불이 붙어 뒹굴고 있다.
석등도 쓰러지고 이종철기자 -
39회 보도사진전 가작, 1994년 4월 11일
11일 하오 "개혁의회"승려 7백여명이
총무원 건물로 다시 진입하려다 저지하는 경
찰과 몸싸움을 벌여 대웅전 옆 석등이 넘어졌다.
이 아픔 누가 아랴 최종욱기자 -
28회 보도사진전 동상, 1997년 8월 9일
대한항공 801편 추락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나미츠힐에 처참하게 부서진 기체
를 내려다보며 오열하고 있다.
캄보디아 훈할머니 김민규기자 - 1998년 8월 4일
캄보디아에 버려져 조국을 잊고 살았던
종군위안부 출신 훈할머니가 김포공항을 통
해 귀국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이남이"
라고 써진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훈할머
니는 본지의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로인해 조국을 되찾게 되었
다.
불꺼진 회담 박서강기자 2001.11.8
제 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해 8일
오후 금강산 호텔에 도착한 홍순영(왼쪽)남측
수석대표와 북측 김령성 단장이
북한의 어려운 전력사정으로
갑작스럽게 정전이 되
자 촛불을 켜놓고 환담하고 있다.
제6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위해 금강산호텔에 도착
한 홍순영(왼쪽)
남측수석대표와 김령성 북측 수석대표가
갑작스런 정전으로 촛불
을 켜놓고 환담하고 있다.
린다 김 독점 인터뷰 김희원기자 2000년 5월 8일
린다 김이 8일 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 응접실에서 본보 기자를 만나 이양호
전 국방장관과의 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린다 김은 비교적 건강하고
분명한 태도로 질문에 응했다.
최초로 그와의 면담 인터뷰했었다.
뒤늦은 귀대신고
왕태석기자 -31회 보도사진전 특별상,
1994년 10월 25일
국립묘지 전사잔 명단에 올라와 있던 조창호
소위가 포로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탈출
하여 한국에 들어왔다. 25일 層?통합병원에서
문병온 후배인 이병태 국방부장관에
게 43년만의 귀대신고를 하고 있다.
학우의 분노 고명진 기자 -
1987년 세계보도사진전 3위, 1987년 6월 15일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입원중이
15일 하오 3시 연세대에서 최루탄 추방 궐기 대
회가 열려 민주광장에 4천여명의
학생.시민들이 모인가운데 진행되었다. 집회가 끝
난 후 많은 학생들은 교문밖진출을
위해 미리 대치돼 있던 진압경찰과
밀고 밀리는
과정을 번복하였다. 교문주변의
담벽철책을 뜯어내어 방석망을
쳐놓은 전경들에게
교련복을 입은 학생 1명이 쇠막대기를
휘두루며 학우를 살려내라고 울부짖고 있
다.
시민에게 뺨맞는 전경환 권주훈 기자 -
25회 보도사진전 금상, 1988년 3월 30일
검찰이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를
해외 재산도피 및 공금횡령등의 죄목으로
소환하자 국내외 보도진 150여명이
청사 마당에서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던 중 한
시민이 전경환씨의 뺨을 때리고 있다.
당시 34세의 젊은 회사원인 김인철씨는 "버스
를 타고 가다가 전경환씨의 소환소식을
듣고 분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며 검찰조사에서 밝혔다.
의령 총기 난동 이기룡기자 -19회 보도사진전 금상, 1982년 4월 28일
의령 우순경의 총기난동으로
12명의 희생자를 낸 문두출 씨의
노제(路祭)에 어머니
와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문씨의
손자가 제주(祭主)가 되어 잔을 올리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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