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Godiva, 1898 / John Collier, Courtesy of the Herbert Art Gallery & Museum, Coventry
난 블로그를 개설하고 글을 쓰던 중 아름다운 한 여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여인은 바로 11세기에 주민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 주기위해 벌거벗고 시장을 한 바퀴 순례했다는 설화로 유명한 고디바(Lady Godiva)부인 그런데 실존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가 발견됐다고 한다.
영국 코벤트리 지방 고고학자들은 고디바의 얼굴로 보이는 여인이 그려진 14세기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조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옛 수도원의 동쪽 창 일부로 보이는 이 조각에는 금발의 곱슬머리 미인이 묘사돼 있었는데,
당시 전통적으로 창문에 기부한 영주들의 모습을 담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고디바일 가능성이 높다
는 주장이다.
설화를 통해 전해내려오는 고디바는 11세기 당시 코벤트리 지방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러프릭 영주의 어린 부인. 주민들의 과중한 세금 부담을 안쓰러워하던 고디바 부인은 남편에게 세금을 감해 줄 것을 집요하게 간청했고, 이에 영주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인간의 裸身(나신)을 神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으로 생각했다는데,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면 세금을 감해 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튿날 열일곱 살의 앳된 부인은 긴 머리를 늘어뜨려 가슴과 국부를 가린 채 나체로 거리에 나 섰고, 이 소식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않기로 약속해서 그녀의 체면을 지켜 주었다.
하지만, 단 한명 Tom은 부인을 훔쳐보았고 천벌을 받았는지 맹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관행이나 상식, 힘의 역학에 불응하고 대담한 逆의 논리로 뚫고 나가는 정치」라는 뜻에서 「고디바이즘」이라는 말이 유래되기도 했단다.
Lady Godiva, 1971 / Dali
1086년 토지대장에는 1057년 남편이 사망한 뒤 넓은 영지를 물려받은 고디바가 종교기관에 헌금을 많이 했고 유리창 조각이 발견된 코벤트리에 수도원을 세웠다는 기록이 사실說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가장 초기 기록조차 고디바의 사망 시점보다 한 세기 늦게 쓰여졌으며, 중세의 기술법은 과장과 정치적 왜곡을 특징으로 한다.
기록도 다양해서 11~12세기 기록에는 종교적인 여성으로 고디바가 등장하지만 세금을 위한 나체 행진 기록은 없고, 14세기 기록에는 나체 행진을 했는데 아무도 보지 않았다고 돼있고, 17세기 기록에는 톰이라는 소년만 몰래 훔쳐봤다는 내용이 추가돼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말의 어원이 됐다고 한다.
Lady Godiva, 1852 / Engraved by J. B. Allen after the painting by G. Jones
18세기 이후부터 코벤트리 마을은 고디바 설화를 관광 상품화해왔으며, 지금도 말을 탄 여인의 형상을 마을 로고로 삼고 있다.
고디바는 헌신의 참의미를 알고 몸으로 실천한 아름다운 여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