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시모음 ▒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천하한량 2007. 8. 5. 01:25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산다는 것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산다는 일, 호흡하고 말하고 미소할 수 있다는 일 귀중한 일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 권의 새 책이 맘에 들 때, 또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 올 때, 또 마당에 핀 늦장미의 복잡하고도 엷은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또 비가 조금씩 오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 진한 커피, 향기로운 포도주, 햇빛이 금빛으로 사치스럽게 그러나 숭고하게 쏟아지는 길을 걷는다는 일,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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