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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안의 박물관" 책 표지 ⓒ 효형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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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레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기에 전통문화와 관련한 많은 책을 읽는다. 그런데 이 책들에는 소위 명망가들이 쓴 것들이 많다. 학계의 큰 인물이라든지, 아니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쓴 책이다. 하지만, 나는 수없이 그 책들에서 실망만 얻었다. 그들은 잘난 체를 하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용어나 한자어들을 남용하여 책을 든 독자들이 질리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책이든 읽기 전에 참 조심스럽다. 이번에 내가 받아든 책 ‘손안의 박물관“(이광표, 효형출판)도 그런 명망가급은 아니지만 문화담당 전문기자가 2000년에 펴낸 ‘문화재 이야기―보는 즐거움, 아는 즐거움’의 개정판으로 이미 그때 큰 호평을 받은 바 있기에 명망가의 책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것임을 금방 깨달았다. 글쓴이는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려 애를 쓴 것은 물론 독자들이 굼금해할 것들을 하나하나 손에 쥐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일본인들이 주장한 “비애의 곡선”을 통렬히 비판한다. 아니 한발 더 나아가 나이키의 상징 표시(마크)와 코카콜라병이 20세기를 대표하는 곡선이라면 이 곡선들은 이미 고구려 고분의 청룡벽화와 고려청자 참외모양병에 있다는 대담한 주장을 한다.
책은 ‘종묘’가 왜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영원의 공간인지. ‘숭례문’은 국보인데 ‘흥인지문’은 왜 보물인지, 부석사 무량수전이 어떻게 곡선의 미학을 직선의 목재로 빚었는지를 낱낱이 밝혀내고, 한여름에 얼음을 보관할 수 있었던 ‘석빙고’의 비빌, 팔만대장경을 완벽하게 보전해온 ‘장경판전’의 과학,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둘러싼 한중일 세 나라의 자존심 대결을 펼쳐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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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강서대묘 청룡벽화/청룡의 몸통 선이 나이키 상징 마크와 비슷하다, (오른쪽)고려청자 참외모양병/병의 모양과 곡선이 코카콜라병과 닮았다 ⓒ 효형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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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만대장경을 보존해온 장경판전의 과학(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수다장의 앞 벽창, 뒷 벽창, 법보전의 뒷 벽창, 앞 벽창)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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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가 쉽게 놓쳐버릴 유리 속에 갇힌 ‘원각사지탑’도 조명한다. 100년의 유랑 끝에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홀에 복원 조립한 국보 86호 ‘경천사 10층석탑’은 그래도 낫지만 서울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10층석탑’은 유리 보호각 속에 갇혀 탑의 호흡을 방해하고 있는 듯하다는 안타까움을 이야기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쉽게 보지 못했던 북한의 문화재들, 국보유적 1호 ‘평양성’, 국보유적 19호 ‘을밀대’, 국보유적 122호 ‘만월대 터’, 국보유적 98호 ‘보덕암’, 국보유적 144호 ‘보현사 8각 13층석탑’들이 어떤 아름다움과 가치가 있는가를 상세히 설명해 준다.
이 책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우리 그림의 특징을 낱낱이 드러낸다. 술에 취하고 그림에 취했던 조선의 화가들을 얘기하고, 난초 그림의 쌍벽인 대원군과 민영익의 ‘묵란도’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와 대원군의 난초에 왜 가짜가 많은지를 밝힌다. 또 신윤복의 ‘미인도’는 조선 후기의 미인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윤선도의 ‘자화상’에 목과 두 뒤 그리고 윗몸이 없는 까닭에 대한 논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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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국립중앙박물관의 경천사 10층석탑. (오른쪽) 유리보호각에 갇혀있는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10층석탑 ⓒ 김영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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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국보유적, (왼쪽)금강산 만폭동의 보덕암, (오른쪽)금강산 내금강 바위의 묘길상 |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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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의 가장 훌륭한 부분을 꼽으라면 당연히 마지막 6부 “알고 싶은 문화재 뒷이야기‘편이다. 여기서는 가짜 문화재 이야기, 복제품 만드는 과정, 진땀 나는 문화재 운반 과정들을 풀어내며, 우리가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기까지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가 펼쳐진다.
또 문화재들은 600억 원대에 달하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500억 원대의 ’신라 금관총 출토 금관‘처럼 고가로 평가됨을 밝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간송 전형필 선생이 수집한 것은 돈이 아니라.’민족정신‘이었음을 강조한다.
글쓴이는 책을 마무리 지으면서 강조한다. “우리 문화재를 다른 나라에 비교해서 왜소해 보인다는 등의 생각은 안 된다. 우리 문화재도 무려 80미터에 달해 25층짜리 고층빌딩과 비슷했던 ‘황룡사 9층목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한 왕조의 역사를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가장 방대한 분량으로 기록해 놓은 ‘조선왕조실록’들은 우리가 자존심을 가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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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신윤복의 미인도/조선후기의 미인상이다, (오른쪽)윤두서의 자화상/귀, 목, 윗몸이 없다 ⓒ 효형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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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포장하는 모습, (오른쪽)동양에서 가장 큰 춘궁리 철불/옛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길 때 아에 건물 벽을 헐어야 했다.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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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과도한 국수주의도 경계한다. 우리 것이 최고라며,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깎아내리는 것도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겨레에 대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되, 다른 민족의 문화재도 그 가치를 인정하는 인류 보편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마지막에 친절하게도 ‘테마 문화재 답사’를 실었다. ‘소박한 백제의 미소와 만나다’의 ‘서산.태안’, ‘대가야 순자의 비밀’의 ‘고령’, ‘윤선도, 윤두서, 정약용을 낳은 예향’ ‘해남.보길도’, ‘서동의 사랑과 백제 부흥의 꿈’ ‘익산’의 답사지도와 함께 답사지의 의미를 살펴준다.
이 책은 어쩌면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낸 최고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후 전통문화 분야의 가장 뛰어난 걸작일지도 모른다. 또 어떤 면에서는 그 책에 비해 또 다른 훌륭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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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가의 문화재들(왼쪽/600억 원대에 달하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오른쪽/500억 원대의 ’신라 금관총 출토 금관‘)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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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훌륭한 책에도 옥에 티는 있다. 2005년 문화재청이 광화문 현판을 바꾸겠다고 했을 때 반대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드셌던 것은 한글 현판을 한자로 된 것으로 바꿀 수 없다던 한글운동계이다. 그런데 이 내용이 빠져서 아쉬운 느낌이 든다. 또 독자들이 따라갈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글쓴이가 문화재를 지나치게 극찬한 나머지 너무 앞서나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우리 전통문화, 문화재에 대해서 알려는 사람들에게 쉽고도 재미있게 그리고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훌륭한 책이라고 분명 말해주고 싶다. 깊어가는 가을 밤, 또 이해를 마무리해가는 때에 우리는 이 책을 읽어 무엇이 우리 문화의 훌륭함인지 공부하고, 우리의 가장 확실한 재산인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해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