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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뒷간에 담긴 겨레의 슬기로움

천하한량 2007. 7. 25. 19:43

전통 뒷간에 담긴 겨레의 슬기로움

 

뒷간의 이름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
 

 

 

▲ 순천 선암사 전통 뒷간(문화재자료 제214호) ⓒ 김영조

 

 

순천 선암사(仙岩寺)는 백제 성왕 7년(529년) 아도화상이 지은 절로 고려시대 의천 대각국사(1092) 때는 100여 동에 이르는 대가람과 2천여 명의 스님이 정진했던 큰절이었다고 한다. 현재 선암사는 한국불교 태고종(太古宗)의 총본산이며,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절에서 살아있는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지허스님을 뵙고 절집들을 돌아보다가 나는 아담하고 정감어린 정(丁)자 모양의 집 한 채를 본다. 아니 집치고는 좀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깐뒤”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웬 “깐뒤”? 고개를 갸우뚱하다 생각한 것은 옛 사람들이 글씨를 오른쪽부터 썼다는데 미친다. 그러면 “뒤깐” 아하! “뒷간”의 옛글자임을 드디어 깨닫는다. 안쪽을 다시 보니 “대변소(大便所)”라는 글씨가 보인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 뒷간은 유명한 곳이란다. 전통적인 절집 화장실로 환경친화적인 이층구조여서 재래식 변소지만 냄새도 안 날뿐더러 밑에서는 바로 거름으로 쓸 수 있다나. 또 나무결을 잘 살려 지어서 아름다운 건축물의 완성을 보여준다. 이 뒷간은 유일하게 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된 곳이다. 전남지역 뒷간의 전형적인 평면구조인 '정(丁)'자형 건물로 가장 오래됐기 때문이다.

또 현존하는 절집 뒷간 가운데서 가장 크다. 가로 10미터, 세로 3.8미터, 깊이 5미터로 동시에 남자 8명과 여자 6명이 일을 볼 수 있는 규모다. 그 후 몇 년 뒤 명당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대명당이라는 선암사를 다시 찾았는데 그 뒷간도 대명당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당의 기운을 받기 위해 뒷간에 머무르다 왔다나.


변소․서각․측간․화장실, 뒷간의 다른 이름들

 



 

▲ 안동 병산서원 머슴 뒷간(<안동 사랑의 사진 이야기> 누리집에서) ⓒ 강일탁

 


▲ 안동 병산서원 양반 뒷간(<안동 사랑의 사진 이야기> 누리집에서) ⓒ 강일탁

 

 

뒷간이라는 낱말이야말로 우리네 말이고, “뒷물을 하기 위하여 만든 공간”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사람이 바라보는 쪽을 우리는 앞이라고 부르고 그 반대편은 뒤라고 부른다. 항문이 뒤에 있기에 뒷일을 보는 곳을 뒷간이라고 부른 것이다.

뒷간을 가리키는 말들은 참 많다. 변소(便所)․서각(西閣)․정방(淨房)․측간(厠間)․측소(厠所)․측실(廁室)․측옥(厠屋)․측혼(厠溷)․모측(茅厠)․청(圊),청측(圊厠)․회치장(灰治粧)․세수간(洗手間)북수간(北水間)․ 등으로 불렀으며, 절에서는 해우소(解憂所), 해우실(解憂室)이라 부르고, 요즘은 보통 화장실(化粧室)로 통한다.

변소라는 말은 일정강점기 때 쓰기 시작하여 몇십 년 전까지 써왔던 말이며, 세수간과 화장실은 뒷간을 나타내는 영어 “A water-Room” 또는 “A dressing-room” 따위를 한자로 바꿔 표현한 것이다.

서각(西閣)은 우리나라 집들이 남향이기 때문에 뒷간이 통풍이 잘되는 서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측간처럼 뒷간에 곁 ‘측(厠)’자를 붙인 것은 집에서 보았을 때 한쪽 편에 자리를 잡기 때문이고, 모측(茅厠)이라고 부르는 것은 짚으로 엮어 뒷간을 만든 때문에 띠 ‘모’ 자를 쓴 것이다.

또, 뒷간을 북수간(北水間)이라고 부른 까닭은 남향집에 사는 사람의 몸 앞쪽은 남쪽, 뒤편은 북쪽이라고 보아 몸의 뒷부분을 씻는 뒷물을 북수라고 부른 데서 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뒷간을 ‘작은 집’ ‘급한 데’ ‘일보는 데’라고 돌려서 말하기도 한다.

해우소와 해우실은 ‘근심을 푸는 방’이라는 뜻으로, 절에서 쓰이는데 동학사는 뒷간에 ‘해우실’이라는 팻말이 붙어있고, 뒷간에 이르는 다리에도 해우교(解憂橋)라 새겨 놓았다.

온 나라 절의 해우소를 3년이나 찾아다니며 토종 뒷간을 연구해온 홍석화씨에 따르면 위치 구조 모양새가 전국 최고라는 선암사 해우소, 전면 3면이 연못으로 꾸며진 연밭으로 웅장함을 자랑하는 순천 송광사 해우소, 토종 해우소의 전형이라는 불일암 해우소, 고산지대 바위틈새를 이용한 청랑산 해우소, 영월 보덕사 해우소 등 옛모습을 간직한 절의 해우소들은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참고로 사람은 뒷간에서 똥을 누지만 보통 개는 아무 데서나 똥을 싼다. '싸다'는 "똥이나 오줌을 참지 못하고 함부로 누다."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싸는 것을. ‘누다’는 사람처럼 사리분별이 있어 눌 때와 눌 장소를 가리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우리말을 쓴다며 “똥을 싼다.”라고 말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그런데 애완견처럼 똥을 정한 곳에서만 싸는 경우도 “똥을 누다.”라고 해야 할까?



뒷간 대신 이동식 요강

 

 

▲ 임금의 변기 매우틀과 이동용 변기 요강 ⓒ 김영조

 

 

요즘은 요강을 쓰는 집은 거의 없다. ‘사돈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라는 속담처럼 뒷간은 집 과 떨어져 한쪽에 있었지만, 이젠 집의 현대화에 따라 뒷간은 화장실로 변하여 집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요강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요강은 밤에 뒷간에 가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것으로 한마디로 실내용 간이화장실 또는 이동식 변기인 셈이다.

부인네들은 아침이면 요강을 씻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부잣집에는 요강 닦는 일을 도맡는 ‘요강 담사리’를 따로 두기도 하였다.

요강은 놋대야와 더불어 여자들의 혼수품 가운데 필수이었다. 혼례를 치르는 신부의 가마 속에도 반드시 요강을 넣어두는데, 쌀겨나 솜, 모래를 살짝 깔아두고, 물을 자작자작하게 미리 부어 두어 소변을 볼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배려를 한다. 조선시대에는 놋쇠나 사기요강 말고도 오동나무나 쇠가죽에 옻칠을 하거나 기름을 먹인 것들도 있었다.

1979년 3월 부여 군수리에서 이상한 모양의 그릇이 출토되었다. 마치 동물이 앉아있는 모습으로 얼굴 부위에는 둥그렇게 구멍이 뚫려있는데 높이 25.7센티미터, 주둥이의 지름 6.6센티미터로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도대체 이 그릇은 무엇에 쓰던 물건이었을까?

 



 

▲ 1979년 부여 군수리에서 출토된 이상한 모양의 그릇, 이동용 변기 호자로 보인다. ⓒ 국립부여박물관

 

 

이 그릇은 ‘호자(虎子)라고 부른 남성용 소변기로 짐작한다. 그 까닭은 중국에서 이와 같은 것들이 발굴되었는데 문헌에 소변통이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서를 보면 옛날에 기린왕이라는 산신이 호랑이의 입을 벌리게 하고, 거기에 오줌을 누었다고 전하며, 새끼호랑이 모양이라고 하여 호자라고 부른 듯하다.

그런가 하면 임금과 왕비는 뒷간이 아닌 침전의 방 하나에 ‘매우틀(梅花틀)’을 놓고 용변을 보았다. 매우틀은 세 쪽은 막히고, 한쪽은 터져 있는 ‘ㄷ’자 모양의 나무로 된 좌변기이다. 앉는 부분은 빨간 우단으로 덮었고, 그 틀 아래에 구리로 된 그릇을 두어 이곳에 대소변을 받았다.

나인들은 미리 매우틀 속에 ‘매추’라고 부르는 여물을 잘게 썬 것을 뿌려서 가져오고, 용변을 다 보면 내의원에 보내 임금과 왕비의 건강상태를 살피게 했다. 강릉의 선교장(船橋莊)에도 매우틀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귀족들도 썼음을 알 수 있다. 임금의 이동식 변기를 ‘매우틀’이라고 한 것을 보면 임금의 용변은 그냥 똥이 아니라 매화꽃이라고 거룩하게(?) 표현해야 했나 보다.


생태계 순환법칙을 따르는 뒷간

 



도시의 아이들은 시골에 가면 재래식 뒷간이 무서워 똥을 제대로 누지 못했다. 그 재래식 뒷간에 달걀귀신이 있다는 말에 아이들은 기겁을 한다. 또 숭숭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에 겨울엔 온몸을 움츠리며 겨우겨우 똥을 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들은 그 뒷간을 가난의 상징으로 생각기도 한다. 서양식 수세식 좌변기의 사용을 품위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 비데까지 설치된 롯데 호텔의 최고급 화장실(위), 화장실에도 꽃으로 장식을 한다(아래) / 겉은 품위있고 화려한듯 하지만 실제론 오염을 확산시키다. ⓒ 박관우

 

 

먼저, 수세식 화장실은 똥오줌을 처리하는 데 50배 이상의 물을 써서 물을 엄청나게 낭비하는 구조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오염이다. 똥오줌은 정화조에 들어가 희석되는데 바꿔 말하면 똥이 똥물이 되어 냇가로 흘러들어간다.

아무리 산소요구량이 10피피엠(ppm) 이하로 희석된 물이라지만, 대장균 덩어리인 똥오줌이 물에 섞임으로써 이를 분해 발효시키는 박테리아가 공기로부터 차단되어 죽어버리고, 오히려 수인성(水因性) 질병의 병원균들을 더욱 번성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세계위생기구의 발표를 보면 정화조에서 나온 희석된 물 1시시(cc)에는 대장균이 무려 43만 개가 득실거렸다고 한다.

수세식 화장실이 깨끗하며 위생적이라는 생각은 이렇듯 그럴싸한 포장에 가려진 거짓이다. 깨끗한 것은 단지 화장실 내부일 뿐이며, 똥오줌을 눈 뒤는 오히려 더러움을 확산시켜 우리의 환경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 임의진 목사의 뒷간, 수양각 ⓒ 작은 것이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 뒷간은 한참을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는 대신, 항문을 뚫고 나오는 똥의 모양새를 보면서 내장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배려된 구조이거니와, 모든 힘을 직장과 대장 쪽으로 모아 똥을 누는데 유리한 자세를 만들어 주어 좋다. 어쩌면 변비를 예방하는데 가장 좋은 자세인지도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동범 씨의 ‘자연을 꿈꾸는 뒷간’이란 책을 보면 뒷간의 또 중요한 점은 ‘음식→똥→거름→음식’이라는 전통적인 자연순환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예전 우리 겨레는 똥을 더럽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시 밥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길을 가다고 똥이 마려우면 아무 데서나 누지 않고, 서둘러 자기 집에 가서 누었다. 1900년 초까지 수원에서는 똥 상등품이 한 섬에 30전에 거래됐고 한밤중에 다른 사람들이 똥을 몰래 퍼갈까 봐 감시까지 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똥돼지와 똥개가 ‘맛있는’ 까닭도 똥의 풍부한 영양분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 옛날 뒷간에서 논밭에 똥을 내는데 쓰던 똥장군 ⓒ 김영조

 

 

그러기 위해 전통 뒷간은 똥을 누고 나면 재와 왕겨를 덮어 냄새를 없애줄뿐더러 발효시켜 좋은 천연 거름을 만들어 낸다. 생태계 순환의 기본법칙은 동물의 주검, 똥, 낙엽 등을 말하는 유기폐기물을 흙 속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이 먹고 무기물 즉 흙을 만들어 내고, 이 흙이 다시 유기물을 만들어 내는 구조이다.

이 순환구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흙 속의 미생물인데 이 미생물은 세균 따위의 다른 흙 속의 유기물들과 함께 사람이 눈 똥을 영양분으로 삼아 활동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효와 더불어 열을 발생시켜 똥을 가장 좋은 거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화학비료는 흙을 산성화시키고, 식물을 부드럽게 하여 각종 병충해에 시달리도록 하지만 똥이 발효되어 만들어진 거름은 이런 부작용 없는 훌륭한 재원이 된다.



우리의 뒷간, 다시 찾아야

 



그동안 우리 스스로 많은 것을 서양의 잣대로 재어 맞지 않으면 무조건 비과학적이고, 비위생적인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미개인이 먹는 음식으로 비아냥 받았던 김치와 된장은 이제 세계 최고 음식으로 대접받는다. 그 속에 과학이 들어있음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역시 우리의 전통 뒷간도 마찬가지이다. 비위생적이고, 가난의 상징으로 뒤안에 묻혀버린 뒷간이 이제 생태계 순환법칙을 따르는 가장 과학적 처리방식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절에서는 이 뒷간을 실상사처럼 “해우소(解憂所)”라고도 부르는데 근심을 푸는 곳이란 뜻일까? 뒷간이야말로 근심을 푸는 곳일진 데 현대인들은 어리석게도 뒷간을 버리고, 오히려 생태계 파괴의 근심을 부르는 수세식 화장실에 푹 빠져 있다. 그렇지않아도 걱정이 끊일 날이 없는 지금 근심을 푸는 토종 뒷간에 관심을 두어볼 일이다.

이 작은 일이 어쩌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아니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줄 일이다.


 

 

▲ 실상사 뒷간의 설명문, 뒷간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 김영조

 

 

“뒷간에 쪼그려 앉아
세상 가장 편안한 자세로 쪼그려 앉아
담배 한 대 붙여 무니, 머리가 맑아진다.
오만 가지 번뇌망상 어둠 저 너머로 뿔뿔이 흩어지고
몸속으로 작은 도랑 하나 흐른다.“(백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