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례
1장 이런 성격이 있는 사람
2장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
3장 이런 노력을 하는 사람
4장 이런 습관이 있는 사람
5장 이런 말을 하는 사람
6장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
7장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
8장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
1. 이런 성격이 있는 사람
결론을 빨리 내리는 사람
비즈니스의 요체는 '자르기'이다. 자르기란 지금까지 쏟아 부은 자금, 시간, 노력 혹은 눈에 보이는 이익 등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진행하는 데 위험을 느꼈다면 망설이지 말고 자를 것. 이것이 회사도 사원도 성장하는 비결이다.
예전에 우리 회사에서 적외선 센서를 사용하는 고막체온계를 개발했다. 고막은 뇌와 가깝기 때문에 정확한 체온을 잴 수 있는 획기적인 신제품이었기 때문에 매우 잘 팔렸다. 그러자 브라운, 마쓰시타전공 등 여러 대기업이 이 분야에 참여했다. 우리는 이런 대기업들의 참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를 직원들과 의논했다. 결론은 '철수'였다. 선발주자로서 기술에도 자신이 있었고, 또 그때까지 잘 팔리고 있는 제품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왜였을까? 수요와 가격은 반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고막체온계가 대량으로 보급되면, 그에 따라 가격도 당연히 내린다. 전자계산기가 그 좋은 예인데, 가격으로 승부하자면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노하우와 설비를 갖춘 업체가 승리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벤처기업인 호리바제작소가 대량생산에 의한 가격경쟁에서 대기업과 승부하는 것은 결코 좋은 대책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원들 중에는 조금 더 이익을 낸 뒤에 물러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장인 내 입장에서는 돈을 잘 버는 지금이야말로 철수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자르기'이다. 거품경제 시기에는 많은 기업이 땅을 굴려서 손쉽게 돈을 벌었다. 그러나 적당한 때 자르기를 하지 못해서 결국 거품경제의 붕괴와 함께 도산했다. 회사도 사원도 근거 없는 "조금만 더" 하는 욕심이 자기 묘자리를 스스로 파게 만드는 것이다.
한 번 정한 것은 끝까지 하려는 사람
나는 극단적으로 포기가 빠른 사람이다. 이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커녕, 단점이라 생각하고 반성하며, 고쳐지지 않는 성격이라고 늘 한탄하고 있다. 그렇지만 되돌아보면, 이런 발빠른 포기가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의 호리바제작소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비즈니스 세계에서 '포기가 빠른 사람 = 쓸모 없는 사원'이라는 정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즈니스에서는 끈질기게 매달려서 이룬 성공이야말로 높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 역시 경영자로서 근성 없는 사원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정설은 '지금까지는'이라는 주석을 붙여야 한다. 왜냐하면 경제가 상승곡선을 타던 지금까지는 끈질기게 매달리기만 하면 뭐든 이룰 수 있었다. 경제성장이라는 맛있는 파이가 점점 부풀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참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확실한 힘으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일본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미체험 영역에 들어서면서 '일 잘하는 사람'의 정의가 크게 변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포기가 빠르다'고 해서 '일을 못한다'고 단정 짓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차라리 하나가 실패하면, 바로 다음 일에 착수하는 빠른 전환, 풍부한 발상이 커다란 무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오히려 포기가 늦은 사람은 새로운 일에 도전할 용기가 없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아날로그 발상을 하는 사람, 디지털 발상을 하는 사람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했을 때 당신은 윗사람에게 어떻게 보고하겠는가? "죄송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력했다는 것만은 평가해주십시오." 하고 노력을 호소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비즈니스는 결과가 전부다. 과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며 노력해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다. 반대로 빈둥빈둥 놀아도 성공하면 승자다.
과정도 평가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날로그 발상'이고, 결과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디지털 발상'이다. 시계를 떠올려보면 알기 쉽다. 아날로그 시계는 시침과 분침이 있어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지만, 디지털 시계는 숫자만 있어 항상 '결과' 외에는 표시하지 않는다.
비즈니스가 결과로 승부하는 이상 아날로그 발상을 하는 사원은 앞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단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이란 기본적으로는 아날로그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감정은 항상 흔들리고 움직이며 망설이기 때문에 도저히 디지털 식으로 가려내기가 불가능하다.
결국 '아날로그적 생물'인 인간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항상 '예스 아니면 노'라는 디지털적인 결단에 부딪히는 셈이다. 그러면 디지털 발상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바로 어떤 일이든지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치를 정해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5대 5일 경우에는 '노'라고 말한다. "7대 3이라면 '예스'라고 말한다."라는 기준을 정해놓고 그것을 결단의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뭐든 자기가 하지 않으면 속 시원하지 않은 사람
부하직원이 지시를 받고 복사해온 것이 매수가 맞는지 안 맞는지 한 장씩 세어 확인하는 사람이 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한 것이지만 달리 해야 할 일도 많을 터인데 쓸데없는 수고다. "완벽주의자 중에서 일 잘하는 상사 없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진실이다.
왜냐하면 완벽주의자는 일을 남에게 맡기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혼자서 일을 전부 떠맡기 때문에 얄궂게도 완벽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결과로 끝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는 '아웃소싱형'이다. 단, 제품의 기획이나 개발 등 '생각하는' 두뇌 작업만큼은 내가 책임지고 한다. 나는 손발은 남에게 맡기고 두뇌는 내가 맡아 해온 결과가 오늘의 호리바제작소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남에게 일을 맡기기 위해서는 배짱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배짱이란 일을 맡긴 동료나 부하를 무조건 신뢰하는 배짱이다. 한번 믿은 이상 그 사람이 실패하더라도 내가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배짱이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한 완벽주의자란 이런 배짱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2.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
면밀히 계획을 세우는 사람
무모하게 보이는 모험도 그 성공의 뒷면에는 만전을 다한 준비가 있다. 모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도 좋을 듯 싶다.
아는 사람 중에 아이거 북벽을 등정한 사람이 있다.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위험해 보이지만, 그 사람은 왜 그것이 무모한 등정이 아닌지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는 등산하기 전에 등정 루트 전부를 사진으로 찍어 발을 거는 곳은 여기, 손을 대는 곳은 여기 하고 미리 정해둔다고 한다. 그것도 만일의 경우를 위해 첫 번째 후보 외에 두 번째 후보도 준비하고, 날씨의 변화에 대비해서 대피장소까지 면밀히 계산한다. 그런 준비를 마친 다음에 등정을 시작한다고 한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1997년 9월 호리바제작소는 광학분석기 분야에서 세계 톱클래스의 프랑스 회사를 인수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 회사는 세계 50개국에 독자적인 판매망을 갖고 있으며, 나사(NASA)를 비롯한 세계 최첨단 연구기관에서도 품질을 인정받은 상태였다.
놀랍게도 이 인수 프로젝트의 담당자는 아직 40대 초반의 사원이었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인수합병이라면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지만 그 사원은 마치 아이거 북벽을 오르는 것처럼 용의주도하게 그리고 면밀히 계획을 다듬어 홀홀 단신으로 교섭에 임해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유형의 사원은 언뜻 보면 눈에 띄지도 않는 데다, 소심한 사람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평상시에도 용의주도한 만큼 큰 프로젝트를 안심하고 맡길 만한 사원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하고 다른 것을 하려는 사람
우리 회사에 아이디어 맨으로 불리는 E부장이라는 사원이 있다. 그는 프로젝트 회의를 할 때마다 언제나 결정적으로 멋진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E부장에게 아이디어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E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회의에서는 누구든지 어떻게 하면 프로젝트가 잘 될까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떻게 하면 잘되지 않을까를 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 안 될 방법을 알게 되면 그 반대 방안을 제안합니다. 실패할 내용을 거꾸로 하면 성공하는 것이니까요."
E부장의 아이디어 원천은 이 '역발상'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낸다고 하는 행위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발명'이 아니라 숨겨진 답을 찾아내는 '발견'이라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차례차례 샘솟아 나오는 사람은 '발견'하기 위한 방법을 자기 나름대로 갖고 있는 사람이다.
호리바제작소의 회사 소개 팜플렛 제목은 'Abrioh'이다. 좀 색다른 이름이지만 아무 뜻이 없다. '호리바(Horiba)'를 거꾸로 읽은 것뿐이다. 회사 내에서 바깥(사회)을 보면 회사의 간판이 밖에서 보는 것과는 딱 반대로 읽힌다는 발상이다. 항상 밖을 향해 일하려는 마음자세를 나타낸 것이다. 우리 회사의 기업이념을 이 한마디로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아이디어가 펑펑 샘솟는 사람
책상 위 아이디어가 그대로 한 가지 제품이 되면 누구라도 세계 제일의 대부호가 될 수 있다. 주전자 뚜껑의 구멍처럼 별 것 아닌 아이디어라도 특허를 따면 순식간에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원리는 그렇지만 세상에 그렇게 많은 발명가 중에 대부호가 된 사람은 정말 적다.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것과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상머리에서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대로 실현한다면 얼마든지 히트상품이 탄생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소니의 이부카 마사루 씨는 이렇게 말한다.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든 에너지를 1이라고 하면, 상품 샘플을 만드는 데 10, 상품화하는 데 100, 최종적으로 이익이 나오기까지 1,000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실현할 때까지의 과정을 염두에 두지 않은 아이디어는 최고경영자의 눈으로 보면 그냥 떠오른 생각에 불과하며 단순한 장난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단순히 그것만 가지고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샘솟지만 좀처럼 햇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개발 비용을 포함해 실현화 과정이 아이디어 속에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상사의 평가에 신경 쓰는 사람
당신은 일을 잘하는 사원인가, 못하는 사원인가? 당신의 능력을 처음으로 판단하는 것은 직속 상사이다. 옆 부서의 장도 아니고 사장도 아니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상사에게 유능한 부하라고 평가받는 것이 사내에서 평가받기 위한 첫 관문이 된다. 따라서 상사가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늘 그 마음을 읽으려는 사람은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좋다.
예를 들어 내가 부하직원에게 자료준비를 명령했다고 하자. 부하는 지시 받은 자료 외에 관련자료를 첨부해서 가지고 왔다. 나는 이것에 매우 만족했는데, 이것은 직원이 그때 내 마음, 다시 말해 '지금 지시한 일은 120%의 결과를 원한다'는 마음을 읽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상사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이 지시 받은 그 일의 기대도가 50%인가, 100%인가, 120%인가 하는 마켓 리서치를 뜻한다. 어떤 일에서 50%의 결과밖에 요구되지 않는다 해도 100%의 결과를 추구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반대로 120%를 원할 경우, 100%의 결과로는 상사가 불만을 표시하기 마련이다.
결국 일에는 '절대평가'란 없으며 상사의 마음, 곧 기대치라는 '모호한 평가'로 유능한가 무능한가가 결정된다. 그러나 상사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그 한 가지만으로도 무능하다고 단정지어도 좋을 것이다.
여자 사원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
이성에게 인기 있는 것은 일 잘하는 사람의 절대조건이다. 농담이 아니라 여자사원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위기감을 가지는 게 좋다. 여자사원에게 인기 있다는 것은 술집에서 인기가 있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좋은 분위기를 갖출 뿐만 아니라 신뢰감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사람 밑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한 매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여자사원에게 인기를 모을 수 있는 매력을 어떻게 하면 몸에 익힐 수 있을까? 당연하지만 우선 일에 유능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인격인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자세가 필요하다. 여자사원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은 '이성에게 인기 있다.'는 속된 뜻으로 해석할 게 아니라, 존경이라는 좀더 높은 수준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3. 이런 노력을 하는 사람
손윗사람과 사귀는 사람
일류가 되고 싶으면 일류인 사람과 사귀도록 하라. 이것이 성장하기 위한 철칙이다. 단, 그것은 자신도 덩달아 으쓱 올라간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류와 만나면서 그 사람이 왜 일류가 되었을까를 생각하고, 그의 좋은 점을 흡수해 그것을 자기 양식으로 삼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회사원인 경우 회사 밖에서 일류를 만날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따라서 직장 선배나 상사 가운데 일류를 찾는다.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상사나 선배가 있으면 그 사람과 만날 기회를 갖기 위해 신경 쓰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접근해라는 뜻이 아니라,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일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해야 한다.
아부하기 위한 일시적인 마음이 아닌 인생에 대해서 뭔가 배우려고 하는 진지한 자세로 윗사람과 사귀려는 그런 자세가 일에서도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 틀림없다. 이제는 상사에게 붙어서 파벌의 힘으로 성장하려는 생각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생각이다. '이왕 기대려면 그늘이 큰 나무'의 시대에서 '일단 기대면 큰 그늘 때문에 컴컴해지는 나무'의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누구보다 빨리 출근하는 사람
나는 사원의 출근시간에는 흥미가 없다. 물론 아침 일찍 나오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아침 일찍 회사에 나오는가 하는가이다. 물론 이른 아침에 회사도 조용하고 능률이 올라서 일찍 나온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용건도 없는데 누구보다 먼저 회사에 나와 다른 사람보다 늦게 퇴근하는 것을 자랑삼는다면 그것은 헛수고다. 아침 일찍 회사에 나오는 사원이 회사에 이바지하는 듯한 인상은 준다. 출근 시간에 임박해서 뛰어 들어오는 사원보다는 분명 평가할 만하지만, 그것뿐이다. 회사에 필요한 사원은 빨리 출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다.
이제 근무형태는 통신 네트워크의 발달로 통근근무에서 재택근무로 바뀌는 추세다. 또 변동시간 근무제가 도입되어 출근시간이 빠르다는 이유로 회사에 이바지한다고 자부하는 것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본업 승부의 시대다. 얼마나 유효하게 시간을 사용하는 가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결정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시간당 생산성이 앞으로 승부의 관건이다.
인맥 만들기에 동분서주하는 사람
어느 파티장에서나 명함을 잔뜩 들고 다니며 명함 교환에 동분서주 뛰어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쁘게 뛰어 다니는 이유는 나중에 회사에서 교환한 명함을 동료들에게 잔뜩 과시하며 OO철강의 A전무를 안다든지, XX상사의 B부장을 안다는 둥 인맥이 얼마나 넓은지를 자랑하기 위해서다.
경영자 가운데도 "얼마 전에 00 장관과 만났는데..." 하고 쓸데없이 정치가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실제로는 단둘이 만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넘치는 파티에 같이 참석한 것인데 어느새 "00 장관하고 만났어."가 되어버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면회용 인맥 만들기"에 부심하는 사람은 인맥을 일에 활용하는 것은 잘 못한다. 인맥은 조바심으로 안절부절못하며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다가와서 생기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인간다운 매력과 능력을 보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맥이다.
인맥을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이상 이해관계가 개입한다. 서로 이득이 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맥'으로 연결된다. 자신도 상대를 고르지만, 상대도 자신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명함을 교환했다고 해서 인맥이 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멋진 인맥을 만들고 싶으면 자신이 먼저 멋진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 자신을 갈고 닦아 인간다운 매력으로 남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자연히 사람이 모이고 인맥은 저절로 생기게 마련이다.
4. 이런 습관이 있는 사람
10정도 이야기를 12로 부풀리는 사람
미국의 비즈니스맨은 10쯤 되는 공적을 20 정도로 떠들어댄다. 내가 미국의 자회사에 가면 사원들이 일제히 달려와 입을 열기 바쁘게 자기를 선전한다. "회장님이 일본에 계시는 동안 저는 이런 대단한 성적을 올렸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인 주재원은 "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별로 성적을 올리지 못해서..."라며 사과한다.
그래서 조사해 보면 호들갑스럽게 자신을 선전하는 미국 사원일수록 실제로는 별로 대단치 않은 일을 한 경우가 많다. 반면, 일본인 사원은 말과는 반대로 확실히 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20인 공훈을 10으로 보고한 것이다. 겸양의 미덕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국경 없는 경쟁사회에서는 이 '허풍쟁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승부를 겨루어야 한다.
'겸양'은 동양에서만 통하는 지역적인 문화로, 세계 표준의 미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10의 이야기를 20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20% 정도는 올려서 12라고 선전할 필요는 있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어필을 잘하는 사람이 성장한다.
영업 일선에 나가서 "이 기계는 성능이 그저 그렇지만, 열심히 만들었으니 사주세요."라고 한다면 과연 팔리겠는가? "솔직한 것만으로도 됐어!" 하고 감격하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고, 현실에서는 하나도 팔리지 않는다. 거짓말은 논외로 치더라도 상대가 10인 이야기를 12 정도로 느끼게 하는 것은 어필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렸다. 자신을 어떻게 어필하느냐가 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나누는 구분점이다.
미국 비즈니스 계에서는 능력이 10인 사람이 15라고 말해서 파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15의 능력이 있으면서도 8뿐이라고 낮추어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불신을 부른다. 자신을 비하하는 행동이 그들에게는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아침형 인간, 밤형 인간
일본의 경영자 중에는 먼동이 트기 전에 벌써 일어나서 사원보다 일찍 회사에 나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일찍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득이 된 것은 전기가 없었던 옛날 이야기이고, 현대 비즈니스에서는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에 별 의미가 없다. 아침에 강한 사람은 일찍 일어나서 일하면 되고, 밤에 강한 사람은 밤에 하면 된다. 그뿐이다.
내 경우, 흥이 나서 밤늦게까지 일했을 때는 당연히 다음날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 혹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비몽사몽간에 일의 아이디어가 번뜩이며 튀어나올 때도 있다. 따라서 '아침형', '저녁형'이라고 구별하기보다는 하루 중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두 시간만 집중해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루의 일을 프랑스 요리의 코스 메뉴라고 봐도 좋다. 코스 메뉴에서는 갑자기 '집중'이라는 메인 요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우선 전채요리나 수프, 이어서 생선 요리가 나와서 위가 준비됐을 때 비로소 메인 요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요리를 즐긴 뒤 마지막으로 디저트가 나온다.
바꿔 말하면 하루 중에 지금 어떤 요리를 먹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전채요리일까, 아니면 수프일까, 그리고 이제부터 '집중'이라는 메인 요리에 들어가는지, 혹은 별로 의식하지 않은 채 어느새 메인 요리가 지나가 버리고 디저트를 먹고 있는지, 그런 식으로 오늘 하루를 돌아봄으로써 얼마만큼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는지에 대해 반성한다.
이런 일을 매일 계속하면 한 가지 경향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자신은 '아침형'인가, '오후형'인가, '저녁형'인가 하는 부분이다. 집중하는 방법은 '짧은 시간 피크(peak)형'인가, '긴 기간 플랫(flat)형'인가 하는 것 말이다. 자신의 경향을 알았다면 집중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중요 안건을 기획해 보자. 그러면 일이 좀더 효율적이고 멋지게 될 것이다. 자신의 집중 시간을 아는 것은 일 잘하는 사람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뭔가 있으면 바로 회의를 여는 사람
회사 내에서 회의의 4분의 3은 사실 불필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의라고 불리는 것의 내용은 '단순 보고회'이자 일방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장이다. 내가 몸으로 느낀 결과, 본래 의미인 토론이 이루어지는 회의는 기껏해야 전체의 4분의 1이다. 그러면 불필요한 데도 왜 회의가 열리는가?
결국은 사원들의 책임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두 함께 정한 것이잖아!" 하고 발뺌하기 위한 '알리바이 만들기'라고 해도 좋다. 그래서 뭔가 있으면 금방 회의를 열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 안건에는 자신이 없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겁쟁이라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그럴듯한 일을 멋지게 해낼 리 없다.
같은 회의라도 일본과 미국이 생각하는 방법은 매우 다르다. 일본에서는 부장급 회의에 실무담당 과장을 동석시키는 예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부장급 회의에 담당과장을 참석시키면 매우 불쾌해 한다. 담당 부장은 "왜 제 부하를 참석시키시는 겁니까? 회장님은 저를 신뢰하지 않으십니까?" 하면서 강하게 항의해온다.
비즈니스 풍토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옳다고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빨간 신호등도 모두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아."와 같은 태도로 뭔가 있으면 금방 회의를 열고 싶어하는 사람은 '덜 성숙한 사원'이라는 점만은 공통인 것 같다.
항상 멋쟁이인 사람
어느 요릿집에서 한 경제지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였다. 뭔가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기자의 양말에서 나는 냄새였다. 민완기자로서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어쩐지 흥이 식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다.
무슨 양복을 입어도 좋을 것 같지만, 역시 옷차림까지 신경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 만나는 상대방과 목적에 맞게 옷을 바꿔 입는 것이 좋다. 감청색 양복은 청결한 느낌을, 좀 화려한 재킷은 활동적인 인상을 준다. 옷차림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다른 인상으로 보일 것인가를 잘 계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가품을 사거나 유행의 첨단을 걸을 필요는 없다. 상대에게 청결하고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옷차림에 관심을 두지 않는 '센스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같은 와이셔츠를 며칠씩 입거나 매일 같은 넥타이를 매거나 구두가 먼지로 더러워져 있다든지 하면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뿐이다.
물론 '남자는 내용으로 승부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내용을 포장하는 것이 옷이다. 덧붙여 나는 남자는 '내용'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누더기를 걸쳐도 마음은 비단'이라며 구질구질한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이미 구시대의 이야기다.
5.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
일보다 가정을 우선하는 사람
일과 가정 두 가지 모두를 완전히 양립하기란 불가능하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진리이다. 물론 가정을 중요시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나는 자식들이 열이 높아서 오전에 회사를 쉬고자 하는 사람은 다정하고 이해심이 깊은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사라는 조직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불행히도 그런 사람에게는 책임감 있는 일을 맡길 수가 없다. 일개 졸병에 불과하다면 도중에 빠지더라도 조직에 영향은 없다. 그렇지만 지휘관이 개인적인 이유로 전선을 이탈한다면 명령체계가 혼란에 빠지고, 조직의 틀도 결국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회사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을 소홀히 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때 균형을 취하기가 어려운데, 나는 가정은 '인프라'라고 생각한다.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도로라든지 신호등과 같은 교통 기반 설비가 필요한 것처럼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가정이라는 '인프라' 설비가 불가결하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행복한 가정이 있다면, 집주인은 마음놓고 일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인프라'는 어디까지나 기반이지 목적은 아니다. 도로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만들어진 도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경제,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마찬가지로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기반으로 삶의 보람이 있는 인생, 일하는 보람이 있는 인생을 보내는 것이 목적이다.
내 경우 일과 가정이 차지하는 비율을 시간으로 따져보면 대체로 10대 1의 관계인데, 그게 반대로 되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는 그 사람의 인생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회사라는 조직에서는 어쨌든 '마이 홈 파파(가정을 제일로 치는 사람)'에게 책임감 있는 자리를 좀처럼 맡기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이 홈 파파이면서 출세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애사정신이 강한 사람
앞으로는 조직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이미 통하지 않게 되었다. 회사에 맹목적 충성심을 맹세하거나 애사정신을 갖고 경쟁하는 것이 평가의 대상이 되던 시대는 이미 끝난 것이다. 왜냐하면 사원은 배우, 경영자는 감독, 그리고 회사는 무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카네기홀이든 이름 없는 작은 극장이든 극장에 충성을 다짐하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배우는 작품에 목숨을 건다. 극장이 '회사', 작품이 '일'이라면 설명이 될 것 같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나 애사정신은 종신고용제 시대에 사원을 고무하기 위해 사용한 구호에 불과하다.
21세기에는 세계 경제에 국경이 없어진다. '세계의 상식'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올 것이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이 붕괴되고 새로운 가치관을 창조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것은 이제까지는 안정된 지위였지만, 그 신화는 점차 붕괴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직장'이 아니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통해서 자기 실현을 하려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왜 출세하고 싶은가?", "자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남에게 뒤떨어질 것이다.
앞으로 올 시대에는 일에 대한 철학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목표도 없이 그저 사막을 헤매는 것과 같은 꼴이 될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갖고 일에 임한다면 틀림없이 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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