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며느리
-춘성스님-
스님이 조계사 법당의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시는 어느 날의 해질녘이었다.
육십고개를 갓 넘은 부인이 스님을 찾아와서
큰절을 하고서 하는 말이 "스님이 도인이라고 해서 왔습니다.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스님이 웃으면서 "나를 도인이라? 물을 것이 있으면 점쟁이를 찾아가야지, 도인이 무엇을 안다고 도인에게 묻겠다는건가. 도인은 워낙이 할 말이 없는 법이야" 하셨다. 그래도 부인이 자꾸만 스님에게 묻고 싶다고 하니, 스님은 "내 말은 저녁 찬거리의 양념도 안 돼, 그래도 묻고 싶으면 물어 보지" 하셨다. 가까스로 승낙을 받은 부인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지금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고부(姑婦)사이의 갈등이었다. 청상과부로 외아들을 키워 장가를 드린 지 1년이 지났는데 며느리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며느리를 예쁘게 보려고 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며느리의 미운 점이 생각 나서 마음이 더 편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시어머니의 간섭을 마땅치 않게 여기니 마주치면 된소리가 오간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 며느리와 떨어져 살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럴 형편도 못되고,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것이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스님이 당신의 얼굴을 부인의 얼굴 가까이 대고서 작은 소리로 "며느리가 밉다는 생각을 버리면 되네."하셨다. 그러나 부인이 "어떻게 해야 밉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습니까." 물었다. 스님은 쯧쯧 혀를 차고서 "선방(禪房)깨나 다닌 모양인데 헛 다녔다"하시고서 이번에는 주변의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 때 법당 안에는 저녁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부처님에게 절을 하는 사람, 염주를 돌리며 입 속으로 염불하는 사람, 조용히 앉아서 참선은 하는 사람 등. 이 사람들이 갑작스런 스님의 목소리에 놀라 스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며느리가 밉다. 시어머니가 밉다고 흔히 말하지만 며느리가 미운 것도 아니고 시어머니가 미운 것도 아니야. 며느리가 언제 어떤 미운 짓을 했다던가 시어머니가 언제 며느리를 구박했다고 하는 기억이 미운 것이야. 그 기억을 버리면 미워할 일이 없지"대강 이러한 말씀이었다. 그 뒤 얼마가 지나고였다. 그 부인이 며느리와 함께 스님을 다시 찾아왔다. 와서 하는 말이 집에 돌아가 며느리에게 스님의 말씀을 전하고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앞으로도 섭섭한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잊기로 서로 약속을 한 뒤부터는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고 했다. 그 때, 스님은 두 사람에게 반야심경을 열심히 독송하라고 권하고서 기억하건대 대강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반야심경에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구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때가 묻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 마음은 마치 거울과 같다. 꽃이 거울에 비치면 그 거울 속에 꽃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거울 속에는 꽃이 없다. 그러니 꽃이 생긴 것이 아니며 거울에 비춘 꽃이 없어졌다고 해서 거울에 비쳤던 꽃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거울 속에는 생긴 것도 없고 사라진 것도 없다. 그와 같이 사람의 마음에 며느리를 미워하고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생각이 비쳤다 사라졌다 할 뿐,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미워해야 할 일은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거울에 똥이 비쳤다고 해서 거울이 더러워지면 아름다운 꽃이 비쳤다고 해서 거울이 깨끗해지는가. 거울은 더러워지지도 않고 깨끗해지지도 않는다. 그것이‘불구부정’이다. 거울에 무거운 것이 비쳤다고 해서 거울이 무거워지고 그 무거운 것을 비추지 않는다고 해서 거울이 가벼워지는가. 거울은 무거워지지도 않고 가벼워지지도 않는다. 이것이 ‘부증불감’이다.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미워할 일을 비추지 않으면 미워하지 않게 된다.” 평소 긴 말을 하지 않는 스님이 이같이 친절하게 반야심경을 인용해서 설하는 말씀을 듣고 감탄했다. 더욱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을 설하는 반야심경의 요체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갈파한 말이어서 그것을 이토록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스님이 남다른 산지혜의 소유자임은 말해준다. 그 뒤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고부사이의 갈등이 없어졌다고 하는 소문은 여기저기로 퍼져서 고부간의 갈등이 있는 사람들이 자주 스님을 찾아와 물으면 으레 며느리 밉다는 생각을 버리고 며느리의 미운 짓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셨다. 또한 며느리가 와서 물으면 시어머니 밉다는 생각을 버리고 시어머니의 구박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은 한 시어머니가 찾아와서 기독교를 믿는 며느리와의 갈등을 이야기하였다. 제사도 지내려 하지 않고 시어머니 절에 가는 것을 마귀 싫어하듯이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스님은 한 마디로 며느리와 함께 교회에 나가라고 하셨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시어머니에게 "한 달쯤 열심히 며느리를 따라서 교회에 다닌 다음, 며느리에게 절에 가자고 권하시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따라서 교회에 다녔으니 다음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따라서 절에 가는 것은 공평한 것 아니겠소"하셨다. 그러자 시어머니 "며느리를 따라서 교회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며느리를 데리고 절에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절에 가자고 권해 보았으나 막무가내였습니다. 설사 절에 간다해도 절에 가서는 무엇을 어떻게 합니까"하셨다. 시어머니의 목소리에 전혀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는 시어머니에게 스님은 단호하게 "무엇을 하기는, 참선을 시켜야지.‘내가 누군가 ’생각하라고 해. 이것이 화두야"하셨다. 이 일이 있은 뒤, 두어 달이 지난 늦가을의 어느 날, 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스님과 함께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뜻밖 이어서 어찌된 일인가 묻자 며느리가 말하기를 처음 시어머니가 자진해서 교회에 따라나섰을 때는 시어머니의 심경이 어떻게 해서 갑자기 바뀌었는가 의심했다. 그러나 교회에 함께 가시는 것이 고마워서 묻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한 달가량 교회에 나가시던 시어머니가 하루는 함께 절에 가자고 해서 당황하고 또 그러한 속셈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시어머니가 밉기 짝이 없고 배신감이 느껴져서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 얄미운 지혜를 가르쳐 준 사람이 더욱 미워서 그 사람을 만나 한바탕 해댈 양으로 만난 사람이 스님이었다. 그 때, 스님께서 며느리에게 "절에 가지 않아도 좋으니 내가 누구인가’를 항상 생각하라"고 이르시고 "머지 않아서 며느리를 맞아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의 나를 생각하라"하신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며느리는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시어머니 대하기를 마귀 대하듯 한 자기의 허물을 통감했고 앉은 자리가 꺼지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 뒤로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면서 자연히 반성을 하게 되고, 시어머니 에게서 미래의 자기 자신을 보게 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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