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볼수 있는 가르침
진리무상 미언설 (眞理無相 未 言說) 일체만물 무비통 (一切萬物 無非通).
진리라고 하는 것은 생명력이 유지되어 있는 가르침이요, 실천덕목일 것이다. 그것은 언어 이전에 설하고 가르칠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체만물은 통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 같아도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세상이다.
열반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어떤 왕이 네 마리의 독사를 한 궤짝에 넣고 기르게 하였다. 네 마리 중 한 마리만 화를 내어도 기르는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여기서 궤짝은 나의 몸이며, 네 마리의 독사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의 사대(四大)를 의미한다. 네 마리의 독사를 3~40년을 보살피고 잘 길렀으므로 이쯤에서는 길러준 나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그 궤짝에 손을 집어넣는다면 그 뱀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겠는가?
모든 중생의 사대도 그와 같아서 흙의 성분, 물의 성분, 불의 성분, 바람의 성분 중 하나만 성을 내어도 이 몸은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너는 일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말씀은 일생에 얼마나 숨을 쉬느냐는 말씀이었는데, 제자들이 몇 달이라 대답하는 이도 있고 몇 일이라 대답하는 이도 있고 몇 년이라 대답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한 제자가 답하기를 “호흡 하나에 있나이다.”하였다. 이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 “선재 선재라, 그렇느니라.” 하셨다 한다.
바람이라는 뱀에게 물리면 죽게 되고, 불이라는 뱀에 물리면 병고에 시달리게 되며, 물이라는 뱀에 불리면 늙게 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오래 오래 병이 들었으면 마땅히 지성으로 의원을 구해서 치료해야 한다. 만일 부지런히 치료하지 않으면 그는 죽게 될 것이다.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항상 정신을 차려서 방일하지 말아야 한다.”
초발심자경문에 파거불행(破車不行)이요, 노인불수(老人不修)라는 말이 있는데, ‘부서진 수레는 움직이기 힘들고, 늙은 사람은 닦기 힘들다’ 는 말이다. 여기서 늙은 사람이라는 말은 게으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게으른 사람이 노인이다.
“불자들이여, 마치 굽지않은 날기와는 비바람이나 던지거나 밟는 것을 견디지 못하듯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목마름과 더위와 추위와 비바람 그리고 때리고 얽히고 꾸짖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세상에는 해치는 것과 채찍을 드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두 가지 다 상대에게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선정삼매를 닦아야 하고 반야지혜를 드날려야 하는 수행정진에 대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정삼매를 닦는 것의 하나는 게으르지 않기 위함이요, 둘은 큰 지혜를 장엄하기 위함이요, 셋은 자재함을 얻기 위함이니라.”
사람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가 불자로 살면서 수행정진을 하며 다듬어 가야 할 것은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남을 볼 수 있겠는가? 내가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모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내가 나를 볼 수 있을 때 너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 부부 사이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 몸이란 것은 빌려온 것이기 때문에 잘 사용하고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볼 수 있을 때에 이러한 세 가지가 이루어 지게 된다.
“반야지혜를 닦으면 첫 번째 나고 죽는 나쁜 과보를 관찰하려 함이요, 둘은 모든 선근을 증장하려 함이요, 셋은 모든 번뇌를 깨뜨리려 함이니라.”
아무리 어두워도 불을 밝히면 그 순간 어둠은 사라진다. 그러나 모든 이치가 그러하지는 않다. 찌든 빨래는 한번 빨았다고 깨끗해지지는 않는다. 찌든 빨래를 씻을 때는 초벌로 빨아서 양잿물을 타서 삶고 다시 방망이질을 해서 더운물로 헹구어야 비로소 깨끗해질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야, 때묻은 옷을 빨 적에 먼저 잿물에 담그고 뒤에 맑은 물로 씻으면 옷이 깨끗하여지나니,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우리가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 불자였고, 불자는 삼귀의 오계를 지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사람들이 무슨 연고로 현세에 받을 가벼운 업보를 어떤 사람은 지옥에서 받고, 또 어떤 사람은 지옥에서 무겁게 받을 과보를 현세에서 가볍게 받는 것인가.
가벼운 업을 무겁게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불자들아, 하나는 어리석은 탓이요, 둘은 선근이 적은 탓이며, 셋은 악한 업이 무거운 탓이요, 넷은 참회하지 아니한 탓이요, 다섯은 근본 선업을 닦지 못한 탓이니라.”
또 나쁜 업을 닦아 익힌 탓이요, 규범 안에서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살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요, 선근을 자꾸 멀리 여윈 탓이요, 마음의 지혜를 닦지 않은 탓이요, 나쁜 벗을 가까이 한 탓이다.
지옥에서 무겁게 받을 업도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는 이치가 있다. 어리석은 이도 닦으면 되고, 지혜로운 이는 그냥 지혜로운 것이 아니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몸과 마음으로 지혜를 닦아서 익히면 다음 생에 무겁게 받을 업을 이 생에서 가볍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방일하지 말아야 하고, 지혜를 닦아야 하고, 선근을 증장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사느냐에 따라 관점이 일정하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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