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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어진

천하한량 2007. 4. 24. 03:33

                                         

 

                                        태조어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로 가로 150㎝, 세로 218㎝이다. 태조의 초상화는 한 나라의 시조로서 국초부터 여러 곳에 특별하게 보관되어 총 26점이 있었으나 현재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초상화 1점만이 남아있다.

이 초상화는 임금이 쓰는 모자인 익선관과 곤룡포를 입고, 정면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상으로 명나라 태조 초상화와 유사하다. 곤룡포의 각진 윤곽선과 양다리쪽에 삐져나온 옷의 형태는 조선 전기 공신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또한 바닥에 깔린 것은 숙종 때까지 왕의 초상화에 사용된 것으로, 상당히 높게 올라간 것으로 보아 오래된 화법임을 알려준다. 의자에 새겨진 화려한 용무늬는 공민왕상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왕의 초상화에서 나타나고 있다. 익선관은 골진 부분에 색을 발하게 하여 입체감을 표현하였고, 정면상임에도 불구하고 음영법을 사용하여 얼굴을 표현하였다.

고종 9년(1872)에 낡은 원본을 그대로 새로 옮겨 그린 것인데, 전체적으로 원본에 충실하게 그려 초상화 중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정면상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소화해 낸 작품으로 조선 전기 초상화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전문]

조선왕조의 태조인 이성계(1335∼1408)의 자는 중결(仲潔), 호는 송헌(松軒)이었다. 고려후기에 삼군도총제사(三軍都摠制使) 등을 지냈으며, 1392년에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조선왕조를 일으켰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각종 기록에 의하면 태조어진(太祖御眞)은 모두 25점이나 그려졌는데, 면복본(冕服本) ·정건본(幀巾本) ·익선관본(翼善冠本) ·곤복본(袞服本) ·황룡포본(黃龍袍本) ·입자본(笠子本) ·마좌본(馬坐本) 등이다. 물론 모두 영전(影殿)이나 진전봉안용(進展奉安用)이다.

이들 태조어진은 문소전(文昭殿) ·선원전(璿源殿) ·집경전(集慶殿) ·경기전(慶基殿) ·영숭전(永崇殿) ·목청전(穆淸殿) ·영희전(永禧殿) ·남별전(南別殿) 등에 봉안(奉安)되었다.

태조어진 봉안에 참여한 화가를 보면 윤상익(尹商翊) ·조세걸(曺世傑) ·이재관(李在寬) ·조중묵(趙重默) ·조석진(趙錫晉) ·채용신(蔡龍臣) 등이 있다.

현재 전주 경기전에 봉안되어 있는 태조어진은 고종(高宗)9년(1872)에 조충묵(趙重默)이 모사(模寫)한 익선관본이다. 물론 현재 유일의 태조어진이다.

어깨와 앞가슴에 황룡(黃龍)을 수 놓은 청포(靑袍)를 입고 용상(龍床)에 정좌한 태조의 모습은 공식적인 어진도상형식(御眞圖像形式)으로 그려졌다.

참고로 현존하는 조선왕조의 어진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안의 연대는 모사년대(模寫年代)이다.

태조어진(1872), 모조어진(模祖御眞)(1714 ·1744), 익종어진(翼宗御眞)(1826), 철종어진(哲宗御眞)(1852), 고종어진(高宗御眞)(1891 ·1899 ·1901 ·1909) 등이다.

소재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102 경기전



왕조로 본 조선왕조오백년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