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恭愍王薨, 天子每徵執政大臣, 皆懼不敢行。 門下侍中李穡欲昌親朝, 又欲王官監國, 自請入朝。 昌遣穡及僉書密直李崇仁, 如京師賀正, 且請王官監國。 太祖稱穡曰: “慷慨哉, 是翁!” 穡以太祖威德日盛, 中外歸心, 恐其未還乃有變, 請一子從行, 太祖以殿下爲書狀官。 及入朝, 遇一官人於逆旅, 語穡曰: “汝國崔瑩將精兵十萬, 李【太祖舊諱。】執之易如捕蠅。 汝國之民, 李【太祖舊諱。】罔極之德, 何以報之!” 至京師, 天子素聞穡名, 從容語曰: “汝仕元爲翰林, 應解漢語。” 穡遽以漢語對曰: “請親朝。” 天子未曉曰: “說甚麿?” 禮部官傳奏之。 穡久不入朝, 語頗艱澁。 天子笑曰: “汝之漢語, 正似納哈出。” 回至渤海, 與二客船同行, 及半洋山, 颶風大作, 二客船皆沒。 殿下所乘船, 亦幾不救, 人皆驚懼顚仆, 殿下神色自若, 竟得全而歸。 穡還語人曰: “今此皇帝, 心無所主之主也。 我意帝必問此事, 則帝不之問。 帝之所問, 皆非我意也。” 時論譏之曰: “大聖人度量, 俗儒可得而議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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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1권 총서 095 / 이색이 정조를 하례하고 명과 수교하기 위해 경사에 가면서 태조의 변란을 방지하려고 아들인 태종을 서장관으로 데리고 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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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이 세상을 떠난 후로부터 천자(天子)가 매양 집정 대신(執政大臣)을 부를 때마다 모두 두려워하여 감히 가지 못하였다. 문하 시중(門下侍中) 이색(李穡)이 창왕에게 친히 조회하도록 하고, 또 왕관(王官)으로 국사(國事)를 감독하려고 하여 들어가 조회하기를 자청하니, 창왕이 이색과 첨서 밀직(僉書密直) 이숭인(李崇仁)을 보내어 경사(京師)에 가서 정조(正朝)를 하례하고, 또 왕관(王官)으로 국사(國事) 감독하기를 청하였다. 태조가 이색을 칭찬하면서 말하기를, |
하였다. 이색은 태조의 위엄과 덕망이 날로 성하여, 조정과 민간에서 마음이 그에게 돌아감으로써, 자기가 돌아오기 전에 변고가 있을까 두려워하여 태조의 아들 하나를 같이 가기[從行]를 청하니, 태조가 전하(殿下)로써 서장관(書狀官)으로 삼았다. 들어가 조회할 적에 관인(官人) 한 사람을 여관(旅館)에서 만났는데, 그 관인이 이색에게 말하기를, |
“너희 나라 최영은 정병(精兵) 10만 명을 거느리고 있으니 이성계(李成桂)를 잡기는 파리를 잡는 것처럼 쉬울 것이지만, 너희 나라의 백성은 이성계의 한없는 덕을 무엇으로 갚겠는가?” |
하였다. 경사(京師)에 이르니 천자가 평소부터 이색의 명망을 듣고 있었으므로 조용히 말하기를, |
“그대가 원(元)나라에 벼슬하여 한림(翰林)이 되었었으니 응당 중국말[漢語]을 알 것이다.” |
하므로, 예부(禮部)의 관원이 전(傳)하여 이 말을 아뢰었다. 이색이 오랫동안 중국에 들어와 조회하지 않았으므로 말이 자못 어려워 통하지 아니하니, 천자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
“그대의 중국말 하는 것은 꼭 나하추(納哈出)와 같다.” |
하였다. 돌아오다가 발해(渤海)에 이르러 두 객선(客船)과 동행(同行)했는데, 반양산(半洋山)에 이르러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어나서 두 객선(客船)은 모두 침몰하였다. 전하(殿下)가 탄 배도 또한 거의 구원되지 못할 것 같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여 넘어졌으나, 전하는 신색(神色)이 태연자약(泰然自若)하여 마침내 보전되어 돌아왔다. 이색이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
“지금 이 황제는 마음에 주장이 없는 임금이다. 내 생각에 황제가 반드시 이 일을 물을 것이라 여겼으나, 황제는 묻지 아니하고, 황제의 묻는 것은 모두 내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
“대성인(大聖人)의 도량을 속유(俗儒)가 평론할 수 있겠는가?”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외교(外交) / *역사(歷史)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