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稼亭 이곡〈李穀〉)이 36세 적에 정동성 향시(征東省鄕試) 제1명(第一名)에 합격하고
원(元) 나라 조정에 들어가서 드디어 제과(制科)에 뽑혔다.
이에 앞서 본국 사람으로서 비록 제과에 합격하였으나 죄다 하열(下列)이었는데,
공이 지은 대책(對策)은 독권관(讀券官)이 크게 칭찬하여 제2갑(第二甲)에 들어,
한림 국사원 검열(翰林國史院檢閱)로 제수되었다가,
중서성 좌우사 낭중(中書省左右司郞中) 벼슬까지 하였다.
'▒ 가정자료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문집의 서 -권근(權近)- (0) | 2007.03.03 |
---|---|
춘풍가(春風歌). 연경(燕京)에 가는 명중(明仲)을 보내다-서거정(徐居正)- (0) | 2007.03.03 |
이곡〈李穀〉)께서 36세 때 원(元) 나라 조정에 들어가서 제과에 이갑(二甲)으로 등과하였다-송와잡설- (0) | 2007.03.03 |
의풍루가 또 불타 버려서 선유(先儒) 가정(稼亭) 이선생(李先生)의 기(記)도 따라 없어졌으니,(경상도 경주) (0) | 2007.03.03 |
이곡(李穀)이 젊어서 영해(寧海)에 놀았을 때,-신증동국여지승람- (0) | 2007.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