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
*영수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1952년 7월 2일 밤
옥과도 같이 금과도 같이
아무리 혼탁한 세속에 젖을지언정
길이 빛나고 아름다와라.
착하고 어질고 위대한 그대의
여성다운 인격에
흡수되고 동화되고 정화되어
한 개 사나이의 개성으로
세련하고 완성하리.
행복에 도취한 이 한밤의 찰나가
무한한 그대의 인력으로서
인생코스가 되어 주오.
그대 편안히 잠자는 모습을 보고
이 밤이 다 가도록 새날이 오도록
나는 그대 옆에서 그대를 보고 앉아
행복한 이 시간을 영원히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저도 바닷가에 혼자 앉아서 ―1976년 8월 5일
똑딱배가 팔월의 바다를
미끄러듯 소리내며 지나간다
저멀리 수평선에 휜구름이 뭉개뭉개
불현 듯 미소짓는 그의 얼굴이
저 구름속에서 완연하게 떠오른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이가 있는 곳에는 미치지 못한다
순간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뛰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망연이 수평선을 바라본다
수평선 위에는 또다시 일군의
꽃구름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흰 치마저고리 옷고름 나부끼면서
그의 모습은 저 구름속으로 사라져 간다
느티나무 가지에서 매미소리 요란하다
푸른 바다 위에 갈매기 몇 마리가
훨훨 저건너 섬쪽으로 날아간다
비몽(比夢)? 사몽(似夢)?
수백년 묵은 팽나무 그늘 아래
시원한 바닷바람이 소리없이 스쳐간다
흰 치마저고리 나부끼면서
구름속으로 사라져 간 그대
*추억의 흰 목련 ―遺芳千秋 1974년 8월 31일 밤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산천초목도 슬퍼하던 날
당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는
겨레의 물결이 온 장안을 뒤덮고
전국 방방곡곡에 모여서 빌었다오
가신 님 막을 길 없으니
부디 부디 잘 가오 편안히 가시오
영생극락하시어
그토록 사랑하시던
이 겨레를 지켜주소서
불행한 자에게는 용기를 주고
슬픈 자에게는 희망을 주고
가난한 자에는 사랑을 베풀고
구석구석 다니며 보살피더니
이제 마지막 떠나니
이들 불우한 사람들은
그 따스한 손길을
어디서 찾아 보리
그 누구에게 구하리
극락천상에서도
우리를 잊지 말고
길이길이 보살펴 주오
우아하고 소담스러운 한 송이
흰 목련이 말없이
소리없이 지고 가 버리니
꽃은 져도 향기만은
남아 있도다. ―
당신이 먼 길을 떠나던 날
청와대 뜰에 붉게 피었던 백일홍과
숲속의 요란스러운 매미소리는
주인 잃은 슬픔을 애닯아하는 듯
다소곳이 흐느끼고 메아리쳤는데
이제 벌써 당신이 가고 한달
아침 이슬에 젖은 백일홍은
아직도 눈물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매미소리는 이제 지친 듯
북악산 골짜기로 사라져가고
가을빛이 서서히 뜰에 찾아 드니
세월이 빠름을 새삼 느끼게 되노라
여름이 가면 가을이 찾아 오고
가을이 가면 또 겨울이 찾아 오겠지만
당신은 언제 또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한번 가면
다시 못오는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아 이것이 천정(天定)의 섭리란 말인가
아 그대여, 어느때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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