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보내는 마지막 인사는 왜 다 비슷할까요
김준일 입력 2021. 01. 02. 16:36 댓글 746개news.v.daum.net/v/20210102163600596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생각나게 하는 한 장면
현재 캐나다 온타리오 주 시골마을에서 패러메딕(응급구조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911 현장에서 만나고 겪는 이 곳의 삶,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기자말>
[김준일 기자]
제가 학생으로서 현장 실습을 마치기 얼마 전인 2018년 초 늦겨울의 일입니다.
2년 과정인 패러메딕 전공의 마지막 과목인 현장 실습을 통과하지 못했던 저는 그 다음 해 졸업을 위해 2017년 9월부터 현장실습을 다시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두 번째 현장실습을 통과하면서 캐나다에 이민 온 지 4년 만인 제 나이 마흔 셋에 2년짜리 패러메딕 프로그램 전체 과정을 3년 만에 겨우 마칠 수 있었지요.
오늘은 그 두 번째 현장 실습의 마지막 날 있었던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한 생명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지켜봐야 했던 흔치 않은 경우인데요,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그래서 잘 죽는 것 또한 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해서 지난 일이지만 글로 옮겨 봅니다.
집에서 임종 맞은 부부
밤 12시쯤에 911 신고전화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70대 중반의 만성 폐쇄성 폐질환 (COPD) 여자 환자가 극심한 호흡곤란을 호소한다는 신고입니다. 제 현장실습을 담당하고 있는 사수 둘과 함께 시골 밤길을 부리나케 내달려 갔지요.
현장에 도착해 보니 환자 분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침대에 누워 입을 벌리고 얕은 호흡만 겨우하고 있었습니다. 눈동자는 위로 치켜 올라가서 흰자가 거의 덮었고, 빛에 대한 동공반응도, 통증반응도 없는 단계였지요. 혈압 60초반, 심박수 110정도, 산소 포화도 74정도, 청진을 해봐도 폐로 공기가 들고 나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평소 이런 경우에는 바로 기도삽관과 인공호흡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그게 임종 직전에 내쉬는 호흡(agonal breath)인지 몰랐습니다. 제 사수 둘이 환자를 넘겨 받아서 다시 한 번 환자를 살펴 봅니다. 그리고 환자의 남편에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묻습니다.
남편 분에 따르면 4년 전 COPD 진단을 받았고 그때 이미 6개월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더군요. 하지만 현재까지 잘 버텼고, 호스피스 병원도 알아보고 있긴 했지만 조금 전까지 잘 견디던 사람이 이렇게 급격히 나빠질 줄 몰랐다고 합니다.
911로 패러메딕을 부르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전과 같은 수준은 아니더라도 또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어서 다시 올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 사수들은 환자를 보고 나서 바로 알았던 거죠(그래서 경험이 무섭습니다). 이대로 환자를 이송하게 되면 거의 100% 이송 중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환자의 남편 분에게 심폐소생술 포기각서(DNR)가 있는지 묻습니다. 남편이 환자 대신 의료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임장(POA)이 있는지도 확인하고요.
그리고 보호자 분께 차근차근 설명을 하더군요. 이대로 이송을 하게 되면 환자는 이송 도중에 심정지 상태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며, DNR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규정에 따라 아무 조치도 해 드릴 수가 없다, 이송을 하게 되면 환자 분은 집이 아니라 앰뷸런스 안에서 생을 마감할 수가 있다, 어떻게 하고 싶으시냐고요
남편 분께서는 눈물을 터뜨리시면서 "와이프를 그렇게는 보낼 수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라고 하십니다. 이미 환자분 하고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얘기를 다 해놨다고 하시면서 당신들의 추억이 깃든 이 집에서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COPD로 인해 굳어진 기도라도 좀 편하게 풀어 드리려고 천식 환자들에게 쓰는 약을 기포로 들이마실 수 있도록 입에 대어 드렸습니다. 이 상황에서 패러메딕이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45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 분의 작별 인사가 이어집니다. 살짝 자리를 비켜 드렸고요, 아... 반평생을 함께 한 배우자의 마지막 인사는 어쩜 다 그렇게 한결 같을까요.
"힘들게 해서 미안해, 같이 살아줘서 고마워, 여기서 더 이상 힘들게 있지 말고 어서 가... 사랑해..."
▲ 심박동이 110에서 점점 떨어집니다. 110, 90, 80, 60, 50, 30 그리고 평행선을 긋습니다.? |
ⓒ envato elements |
두 분이 함께 한 45년 세월 앞에 주어진 10분 남짓의 작별 시간은 너무나 짧기만 합니다. 환자의 호흡 수가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바보 같은 소리지만, 저대로 두면 정말 죽을텐데... 지금이라도 당장 기도삽관을 하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심박동이 110에서 점점 떨어집니다. 110, 90, 80, 60, 50, 30 그리고 평행선을 긋습니다. 침대에는 바짝 마른 환자와 그 환자를 끝까지 어루만지는 남편 그리고 침대머리 맡에는 환자의 젊은 시절을 그린 큰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단발 머리에 안경을 머리 위로 올리고 무언가를 읽는 듯한, 자신만만한 표정, 하지만 그 초상화의 주인공은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초라하고 약한 모습으로 삶을 마감하는 중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장면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것 같네요.
경찰과 검시관이 올 때까지 저희는 남편 분과 최대한 말씀을 많이 나누고자 했습니다. 다른 가족들 이야기, 은퇴 전 직업 이야기, 벽에 걸린 많은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 등등. 제가 한국 출신인 걸 알고 김정은 얘기가 '또' 나왔습니다. 그리고 경찰과 검시관에게 상황을 인수인계 했고요. 남편 분에게 깊은 애도의 말씀을 전하고 그 집을 나왔습니다.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분
그렇게 현장 실습의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새벽은 어찌나 달리 보이던지요. 제가 올 때까지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던 아이들과 와이프가 고맙고 사랑스럽고, 지금 살아 있는 내가 고맙고, 이 순간이 다행이라는 생각 그리고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업도 중요하고, 사업이나 승진도 중요하고, 아이들 교육도 중요하고, 각자 저마다 중요한 것들이 있어서 각자의 자리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고 건강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인생을 함께 하는 가족이 아닐까요?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어야 - 나중 일이 되겠지만 - 죽는 것 또한 잘 죽을 수 있을 테니까요.
죽음은 삶과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죽음은 우리의 삶과 늘 함께 합니다. 따라서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며 잘 죽는 것은 우리 삶의 마침표를 잘 찍는 것과 같지요.
물론 살다보면 저부터도 그런 것들을 잊고 살곤 합니다. 그런데 감사히도 위에 계신 조물주께서 이런 기회를 통해 한 번씩 일깨워 주시니 저 역시 한 번 주위를 상기시켜 드리고자 부족한 글솜씨로나마 몇 자 적어봤습니다.
여기 오타와는 이제 막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간 멀어진 물리적인 거리만큼 마음의 추위도 함께 견뎌야 하는 혹독한 겨울이 되겠지만 새 생명이 피어나는 봄이 올 때까지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가꾸며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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