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녹는 그린란드·남극 '빙하'..거침없이 치솟는 '해수면'
이정호 기자 입력 2020.03.29. 21:39 https://news.v.daum.net/v/20200329213959888[경향신문] ㆍ작년 폭염 탓 그린란드서 6000억톤 줄어 전 세계 해수면 2.2㎜ 상승
ㆍ남극 ‘덴먼 빙하’는 22년간 5.4㎞ 육지 방향으로 후퇴 밝혀져 ‘충격’
ㆍ‘수몰 위협’ 시드니·뉴욕 등 긴장…“각국 ‘탈탄소화’ 정책 서둘러야”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오로지 바닷물뿐이다. 그런 망망대해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엮어 만든 작고 허름한 인공섬 곁으로 보트 한 대가 천천히 접근한다. 섬에 발을 디딘 보트 주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그저 평범한 한 줌의 갈색 흙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섬 주민들은 이런 흙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생존에 필수적인 마실 물과 선뜻 교환한다.
1995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워터월드>의 도입부는 이렇게 온 세상이 바닷물로 뒤덮인 음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온난화로 빙하가 모두 녹고 육지가 물에 완전히 잠긴 세상에서 ‘마른 흙’의 의미는 마실 물만큼이나 높은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세계적 톱스타였던 케빈 코스트너를 주연인 ‘보트 주인’으로 내세우고 제작비를 1억7000만달러, 약 2000억원이나 쓴 이 대작은 미국 내 흥행 수익이 8000만달러에 그쳤다. 영화적인 완성도와 함께 지적된 건 온난화로 인한 극단적인 해수면 상승이라는 개념이다. 당시 대중에게는 물밖에 없는 지구의 모습이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거라는 얘기다.
25년 전 이 영화가 관객 앞에 내놨던 극단적 해수면 상승의 시대가 이제는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과학계의 경고가 나왔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와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지구물리학연구회보’ 최신호를 통해 지난해 북극 근처에 있는 지구 최대의 섬이며 빙하의 보고인 그린란드에서 무려 6000억t의 빙하가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6000억t은 2002년부터 2019년까지 그린란드에서 사라진 연평균 빙하량의 두 배에 이른다.
그린란드에서 빙하가 이렇게 기록적으로 많이 사라진 건 전례 없던 지난해 폭염 탓이다. 초여름인 6월부터 프랑스 파리 등 유럽 곳곳에선 낮 기온이 40도를 넘었다. 북극권인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선 7월4일 낮 기온이 32.2도를 기록하는 일도 일어났다. 호숫가에서 물놀이를 한 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는 알래스카 시민들의 모습은 폭염이 만든 진풍경이었다.
폭염으로 사라진 그린란드 빙하는 곧바로 해수면 상승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전 세계 해수면을 즉각 2.2㎜나 끌어올린 것이다. 이 정도 높이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과학계에서는 해수면이 10㎜ 올라가면 지구 인구 600만명이 홍수 등에 시달리는 기후 이재민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이사벨라 벨리코나 NASA 제트추진연구소 수석과학자는 “그린란드에서 이렇게 많은 얼음이 녹아내린 건 실로 엄청난 일”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런 비슷한 문제가 남극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남극은 그린란드와 함께 지구의 빙하를 품고 있는 양대 냉동고 중 하나다. 연구진은 남극 동부에 있는 ‘덴먼 빙하’가 1996년부터 2018년까지 22년간 5.4㎞나 육지 방향으로 후퇴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게 사라진 빙하는 고스란히 바다로 녹아들어가 해수면을 상승시켰다.
그동안 과학계는 남극 빙하가 녹고 있다는 점은 익히 알았지만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극 동부의 빙하가 매우 두꺼워 서부보다 온난화에 대한 내성이 크다고 봤던 것이다. 이 때문에 남극 동부에 위치한 덴먼 빙하의 대규모 손실은 과학계에 충격이었다. 특히 덴먼 빙하 코앞에는 폭이 10㎞에 이르는 산이 방어벽처럼 발달해 있어 따뜻한 바닷물에 빙하가 직접 노출되는 일을 막는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 결과 이 산지에 뜻밖에 골짜기가 숨어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 골짜기가 깔때기처럼 따뜻한 바닷물을 빙하 하단부에 유입시키는 구실을 했던 것이다. 연구진은 남한 크기의 4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덴먼 빙하가 모두 녹으면 지구 해수면 높이가 1.5m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녹아내리는 빙하가 만든 해수면 상승은 몇몇 국가에선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토 대부분이 해발 2m 전후에 불과한 남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는 2014년 이웃 나라 피지에서 땅을 사 국토를 대체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인근의 또 다른 섬나라인 투발루도 수몰에 대비해 국민들을 옮길 땅을 찾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암스테르담, 시드니, 뉴욕, 런던 같은 서구 사회의 주요 도시도 위협한다. 이들은 집단 이주보다 바닷가와 인접한 곳에 방어용 제방을 쌓는 방법으로 해수면 상승에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기술력과 자금을 동원해 기존 대도시를 어떻게든 지키는 편이 경제적으로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미국 NASA와 콜로라도 보울더대 연구진 등은 현재 연간 3㎜ 높아지는 해수면이 2100년에 이르면 10㎜씩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온난화가 가속화되며 바닷물 수위도 더 빨리 상승하는 것이다.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그린란드 등에서 나타나는 빙하 감소는 최근 들어 꾸준히 속도가 붙던 현상이었다”며 “금세기 말 지구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이하로 묶는다는 목표 아래 ‘탈탄소화’를 위한 각국 정부의 실천적인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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