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200107060349071
(중) "서울도 이젠 '기회의 땅' 아냐" .. 해외취업 청년 3년 새 2배 / "서울도 고향도 마음 편한 곳 없어" / 이민 문 두드리는 밀레니얼 세대 / 경쟁적인 질서에 회의감 "나를 위한 삶 찾고 싶어" / 유학·영주권 문의 급증 / 치열한 서울살이에 이주 결심해도 / 정작 고향 내려가면 일할 직장 없어 / 중장년층과 다르게 '자아실현' 중시 / 워킹홀리데이·현지취업 등 관심 높아 / "더 나은 일자리 있는 곳 선호는 당연 / 각자 사정 맞는 대안 찾아가는 과정"
지난 2일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김소영(34·여)씨가 출국에 앞서 정리한 한국 생활의 ‘전부’다. 서울에서 7년 동안 했던 직장 생활을 접고 유학길에 오른 김씨는 석사과정을 마치면 어떻게 해서든 현지에서 취업할 예정이다. 그는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가족과 친구가 많이 그립겠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올 생각은 없다”고 본지 취재팀에 잘라 말했다.
한때 김씨의 장래 희망은 무조건 서울 안에서 버텨 살아남는 이른바 ‘인(in)서울’이었다. 중공업 단지가 밀집한 지방 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는 생활 모습이 비슷비슷한 고향의 삶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한국의 중심인 서울에서 치열하게 살아 인정을 받고, 그를 통해 보람을 느끼는 ‘보통 직장인’의 삶을 꿈꿨다. 하지만 서울살이에 대한 그의 기대는 회사 생활을 거치면서 산산이 깨졌다.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휴일에도 회사가 시키면 무조건 나가서 일했고, 성과도 괜찮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상사 한 분이 절 부르더니 ‘나중에 뭐 할 거냐’고 묻더군요. 어차피 나갈 것 아니냐는 뜻이었죠. 그러고 보니까 임원 중에 여자는 한 명뿐인 거예요. ‘여기서 아무리 죽어라 일해봤자 나에 대한 평가는 딱 이 정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이 빠졌죠.”
6일 국내 이민·이주업계에 따르면 최근 청년들의 탈한국 움직임은 과거와 비교할 때 동력이 확연히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에는 생계나 자녀 교육 문제 등 때문에 이민을 결심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온전히 ‘나’ 한 사람의 자아실현이 선택의 중심에 있다.
정중호 하나이주개발공사 대표는 “중장년층이 주로 자녀 교육이나 은퇴 이후의 삶을 고려해 이민을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요즘 20∼30대 청년들은 ‘자기를 위한 삶을 찾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이민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20대 청년들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해외로 나가 현지에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을, 그 이상 연령층은 유학이나 현지 취업 등을 통한 영주권 취득 방법을 주로 문의한다”며 “과거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경쟁적인 질서에 회의감을 느끼는 청년 비율이 높아지면서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마음만은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게 젊은 이민자들이 말하는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청년들은 해외취업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의견을 교환하거나 유튜브 등에서 ‘탈조선 후기’, ‘미국 영주권 따는 법’ 등 제목의 동영상을 통해 정보를 공유한다. 지난해 유튜브에 ‘야근 반복 직장 생활이 만든 탈조선’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올린 ‘줠던’이란 아이디의 누리꾼은 “초과근무수당이란 마치 전설 속에 등장하는 보물섬과 같은데 왜냐하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3년 전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정착한 것이 스스로도 대견스러울 정도로 잘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댓글 창에는 ‘이 나라는 노답(답이 없다)’, ‘열악한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 탈출이 부럽다’ 등 공감을 표시하는 청년 누리꾼들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해외로 취업하는 청년들의 숫자는 매년 늘고 있다. 이날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2015년 2903명이던 해외취업 청년의 수는 2016년 4811명, 2017년 5118명으로 해마다 늘어 2018년에는 5783명을 기록했다. 3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많은 청년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데에는 서울이 나름의 장점을 상실했다는 점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랫동안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기회의 땅’이자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로 통했던 그 서울이 옛 모습과 매력을 잃었다는 뜻이다. 서울에서보다 고생은 덜하면서도 더 나은, 혹은 비슷한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만 있다면 굳이 서울살이를 고집하거나 ‘서울 사람’이 되는 것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양 교수는 6일 세계일보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많은 청년들이 서울을 떠나면 비싼 주거비와 취업 경쟁 등을 피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며 “이미 서울살이의 고통을 체감할 정도의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방에) 내려가서도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그 이유로 탈지방 현상과 지방 회귀 욕구 간의 ‘모순성’을 짚었다.
“지방을 떠나는 많은 청년들은 대학 진학이나 일자리 마련을 위해 20대 초반에 서울로 향합니다. 본격적인 성인기에 접어듦과 동시에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서울사람’으로서 정체성이 만들어진 겁니다. 이런 청년들이 갖는 ‘고향에 가고 싶다’는 느낌은 안온했던 아동·청소년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리움이 크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양 교수는 “단지 그 지역에 부모님이 계시고, 친구들이 있고, 익숙했던 환경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방을 ‘안식처’로 꼽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아울러 “서울의 비싼 주거비와 경쟁 위주 분위기에서 벗어나겠다며 지방으로 가면 이번엔 개인이 사라진다”며 “우리나라에서 서울 빼고 부산이나 대전 정도 규모의 도시를 제외하면 (도시 생활을 경험했던) 청년이 잘 살 만한 지역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방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이 다양하지 않은 곳에서는 삶의 모습이 단일화되고, 결국 청년 개인의 공간 역시 확보하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양 교수는 “미국 뉴욕과 디트로이트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며 “다양한 지식기반 산업의 뉴욕에서는 다양한 이주자가 어울려 사는 게 어색하지 않지만, 제조업 기반의 단일 산업 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는 자리 잡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고 설명했다. 또 “성차별, 소수자 배려 등을 비롯한 의식에 대한 체감도 서울과 지방 간 차이가 크다”며 “전문직종에 종사하거나 젊은 사람이 많은 혁신도시 등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개인이 혼자 혹은 소수로 내려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양 교수는 이와 관련해 “교통망을 확충하는 게 도시와 지방 간 격차를 줄이고, 청년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돕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광역시 등 일부 도시에는 전철이 깔려 있지만 특정 도시와 다른 권역 간의 ‘연결성’ 측면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도시에 위치한 대학을 모두 지방으로 옮길 수 없으니 지방 거주 청년이 배움터까지 오가는 경로를 보다 촘촘히 엮을 필요가 있다“며 “예를 들면 광주광역시와 전남 여수시를 오가는 게 비용 면에서 큰 부담이 없고, 피로도 덜해야 일터와 삶터, 배움터가 서로 연결될 수 있고 청년들이 활동하는 공간 역시 넓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태훈·김민순·이창수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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