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는 재난과 참사 속에 시름하고 있다. 사건을 겪은 피해자들은 위로하기조차 힘든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은 슬픔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국민들은 국가 혹은 공동체의 시스템이 참사를 막아내거나 피해를 최소화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국가와 사회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나라를 떠나기까지 한다. 위의 글은 조선 후기의 문신 홍여하(洪汝河, 1620~1674)가 지은 「성지설(城池說)」의 일부이다. 작자는 성(城)에 거주하기를 원하지 않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어 정치의 방법을 논하였다. 성은 위험으로부터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기능을 한다. 위정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에게 성에 들어가 살 것을 강요하였으나 백성들은 성에 거주하길 원하지 않았다. 성은 성벽만 있을 뿐 안전을 지키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차라리 사방으로 달아나 산과 들을 떠돌아다니며 안전을 스스로 책임지는 길을 선택하였다. 백성들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를 잘 안다. 백성들이 성을 떠난 이유는 성 밖을 떠도는 삶이 성에 거주하는 삶보다는 안전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성들을 성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그들을 총칼로 위협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성에 거주하는 삶을 이롭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성이 안전을 보장하는 제 기능을 회복한다면 백성들은 성에 거주하는 삶을 이롭게 생각하여 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성으로 돌아올 것이다. 21세기에 성(城)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현대 국가의 여러 제도가 그 기능을 대신할 뿐이다. 그러나 과거에 성을 떠났던 사람들처럼 국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며 국가에 머무는 일이 해롭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떠나가는 이유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국가가 사람들에게 어떠한 이로움을 제공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외면받은 국가, 공동체는 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에는 존속되지 못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