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는 최저임금에 못 미쳐도
밤마다 두세번씩 깨며 쪽잠 자도
관절염·우울증 시달려도 손주키워
공공 보육 맞춤 인프라 강화해야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응애~ 응애~" 60대 부부의 집에 울려 퍼지는 생후 5개월 아기의 울음소리. 지난 15일 새벽 4시 전업주부 이금례(64)씨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벌써 세 번째다. 이씨의 아들과 며느리는 맞벌이 부부다. 아들은 육아휴직 자체를 받지 못했고, 며느리는 출산 후 3달만에 복귀했다. 이제 양육은 오롯이 이씨의 몫이다.
"손자가 하룻밤에도 두 세번씩 깨요. 아무리 귀여워도 매일 잠이 부족해서 힘이 드니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캄캄하네요."
어르고 달래기를 30분, 손자는 잠에 들었지만 이씨는 아예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평소 좋지 않았던 허리에 통증이 재발해 누워있기 어려워서다. 이씨는 자식으로부터 한 달에 양육비로 50만원을 받는다. 분유ㆍ기저귀 등 육아용품 비용도 이걸로 충당한다. "좀 모자란 듯 하지만 며느리에게 돈 이야기 하기도 좀 그렇고…."
60~70대 조부모들의 '황혼육아'는 한국 사회에서 더이상 이상할 것 없는 '일상'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없이는 아이 못 키운다'는 말은 상식에 속한다. 직업적으로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을 쓰자니 맞벌이의 의미가 사라진다. 팍팍한 삶은 결국 자신들을 키워준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게 만든다. 한국의 가정 열 중 넷은 맞벌이다. 전체 부부 가구 중 비율은 1990년 15%에서 2010년 37%로 급증했고 2013년엔 41.4%까지 높아졌다. 가장 최신 통계인 2017년 맞벌이 가구는 545만6000가구로 전체의 44.6%를 차지했다.
그러는 사이 인생의 휴식기에 접어든 '황혼'들은 관절염ㆍ불면증에 시달린다.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사이의 여성 우울증 환자들 중 네 명 중 한 명은 황혼육아가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손자ㆍ손녀를 키우는 일을 굳이 '돈'과 연결해야 하느냐, 누군가 따질 수 있겠으나 현실은 엄연히 현실이다. 단적으로 말해 황혼육아 노동의 가치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황혼 육아자들은 주당 평균 42시간을 육아에 할애하면서 월평균 양육비로 57만원을 받았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3350원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펴낸 '맞벌이 가구의 영유아 자녀 양육지원 실태 및 개선방안(2016)'도 봤다. 맞벌이 가구의 조부모나 친인척이 양육을 맡는 경우는 63.6%였다. 이중 외할머니와 할머니는 각각 56.8%, 38.8%의 압도적인 비율을 보였다. 아이돌보미, 가정보육사는 각각 5.0%, 5.4%였다.
친정 어머니에게 세 살배기 딸의 육아를 맡긴 이송정(33ㆍ여성)씨는 "직장이나 국공립 어린이집은 수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사립 어린이집에선 아동학대 사건이 심심찮게 나온다. 아이를 마음 편하게 맡길 곳이 없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의 직장ㆍ국공립 어린이집 대기 경험률은 각각 30.7%, 약 27.4% 였다. 평균 대기 기간은 7.9개월이다.
육아정책연구소 관계자는 "일하는 부모의 경력단절을 예방하면서 동시에 자녀를 돌볼 권리를 보장하는 데 모든 정책의 중점을 둬야 한다"며 "실수요자에 부합하는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 우선순위 조정, 영아 대상 공공보육 인프라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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