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생복지 보고서 입수
24개 문항으로 정서불안 평가
47% 우울증 진단..2%는 심각
취업난·과열된 학점경쟁 등
스트레스 심각..관리 절실
30일 매일경제가 서울대에서 입수한 '서울대학교 학생복지 현황 및 발전방안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평의원회 연구팀이 서울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6월 18일부터 7월 15일까지 '불안 및 우울 정도'에 대해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 1760명 중 818명(46.5%)이 우울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24개 문항에 걸쳐 서울대 재학생들의 우울증과 정서 불안 정도를 다각도로 진단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29.4%는 '가벼운 우울증', 15%는 '중간 정도 우울증', 2.1%는 '심한 우울증'에 해당하는 것으로 연구팀은 분류했다. 아울러 '심리 상담을 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절반이 넘는 51.7%로 집계됐다. 서울대 학생복지의 종합적인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하고자 진행된 이번 연구는 대학생, 대학원생, 외국인, 장애학생 등 복지서비스에 대해 이해관계를 달리할 수 있는 세부 집단을 누락 없이 다루도록 설계됐다.
서울대 학생들이 교내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이유도 눈길을 끈다. 대학생과 대학원생 공통적으로 '정서문제'가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가장 주된 이유로 꼽혔다. 대학생은 교우관계·진로문제가, 대학원생은 학업문제·진로문제가 각각 그 뒤를 이었다. '명문대=고(高)스펙'이란 사회적 인식이 팽배한 탓에 '명문대생은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덜할 것'이란 통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정 모씨(24)는 "다른 대학도 아니고 서울대 학생들의 정신 건강이 이 정도로 흔들리고 있는 줄 처음 알았다"면서 "취업준비 스펙은 물론 최고 대학이란 자부심까지 더해져 만사 걱정 없는 줄 알았는데 놀랐다"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 서울대 한 대학원에서 학생상담을 맡고 있는 A교수는 "서울대 학생이라고 순탄한 삶이 펼쳐질 것이란 생각은 큰 착각"이라며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다 보니 학업 스트레스로 자해를 하거나 자살충동을 호소하는 학생을 여럿 봤다"고 전했다.
청년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서울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학생들의 우울증 문제는 최근 들어 점차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오혜영 이화여대 학생상담센터 특임교수가 발표한 '대학생의 심리적 위기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전국 대학생 2600명 중 43.2%가 우울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74.5%가 불안증상에 대한 위험군 또는 잠재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학업·취업 스트레스 등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한국 대학생들의 심리적 위기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미래 경쟁력인 대학생들이 내적으로 붕괴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뚜렷한 대책 없이 방관하는 모습이다. 대학생들의 정신건강 관리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학 자율에 맡겨져 있을 뿐 이를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계획이나 예산은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대학생들의 정신건강이 악화되는 것과 관련해 현재 대학생들이 성장한 사회적 배경과 분위기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김동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 대학생들은 IMF 구제금융 시대에 태어나 가정이 기우는 경험을 했고 고등학생 때는 세월호 참사도 겪은 세대"라며 "여기에 취업난으로 인한 과열경쟁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미래와 연관된 정서적 불안감이 증폭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또 "초·중등학교는 위(wee) 클래스와 위센터, 위스쿨로 이어지는 체계적 지원 시스템이 갖춰진 반면 대학에 대한 지원 시스템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차원의 통합적 대학상담센터 운영이 필요하고 중앙센터-거점센터-개별 대학상담센터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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