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건축물과의 조우는 그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여행에서도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의식주. 그중에서 ‘주住’는 흥미로운 촬영의 대상이 된다. 수백년, 어쩌면 수천년의 과거와 조우할 수 있는 우리 인류의 기록. 건축물 사진을 멋지게 찍는 법을 알아본다.
건축물에 숨을 불어넣다
현재 한창 짓고 있는 빌딩들도 많지만 여행지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예전에 지어진 과거의 존재다. 그렇다고 내가 촬영한 건축물을 과거의 유물로만 남게 하기는 싫었다. 실제로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역사책으로만 만났던 수많은 사건과 기록과 함께했을 건축물들. 그렇게 우리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축물을 살아 있게끔 찍고 싶다는 것은 무리한 욕심일까?
조선 왕조가 세워진 후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는 광화문. 이 광화문을 역사책이나 도감에 수록된 좌우상하 반듯한 기록사진으로 찍기보다는 새롭게 촬영하고 싶었다.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느낌. 그런 느낌을 내기 위해 광화문 오른편에 있는 해태 상을 주목했다. 있는 그대로만 찍힐 듯하지만 어떤 초점거리의 렌즈를 쓰는가, 또 촬영자가 위치와 앵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현실의 왜곡이나 압축이 발생한다는 점이 사진의 묘미 중 하나다.
16~35mm 광각렌즈를 카메라 바디에 물리고 해태 상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섰다. 그리고 앉은 채로 가장 짧은 초점거리인 16mm를 선택해 최대한 넓은 화각을 선택했다. 해태 상 뒤편으로 보이는 광화문의 사면이 해태 상에 가리지 않도록 프레임을 구성했다. 이렇게 하니 실제로는 광화문보다 클 리가 없는 해태 상이 프레임 속에서는 훨씬 크고 위압감 있게 표현되었고, 프레임 왼편 끝에 소실점이 생김으로서 시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게 하는 원근감 또한 표현할 수 있었다.
마침 날씨가 화창하고 빛이 풍부했기에 ISO는 100, 조리개는 F9를 선택했다. 그러고 나서 준비된 사수처럼 바로 셔터를 눌렀을까? 바로 셔터를 눌러도 됐겠지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만 촬영하면 과거의 흔적만 기록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
그래서 좌우를 관측하다가 오른편 뒤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을 발견하고 다시 프레임을 고정하고 해태 상과 광화문 사이에 자전거가 들어오는 순간을 노려 촬영했다. 이렇게 프레임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들어오게 함으로써 건축물이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의 삶에 녹아 있는 존재로 느껴지도록 한 약간의 기다림. 2016 병신년丙申年 한 해에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뜨거운 삶의 현장을 지켜봤던 광화문은 그렇게 잠깐의 기다림 덕분에 사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듯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건축물을 잘 촬영하기 위한 최선의 세팅
여행에서 가장 많이 찍게 되는 대상은 의외로 그 지역의 건축물이다. 뻔한 패키지여행의 프로그램조차 여행지의 유명한 건축물을 관광하는 것 위주로 일정표가 짜여 있다. 그리고 특정한 건축물 하나가 그 여행지를 선택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고대했던 건축물과 조우하게 되는 순간, 어떻게 촬영해야 할까?
Horizontality & Verticality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수평과 수직
잘 찍은 사진의 첫 번째 기준은 수평과 수직이 잘 맞았냐는 것이다. 수평과 수직은 건축물 사진에서 수없이 강조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건축물을 촬영할 때는 일단 수평부터 맞춘다. 그리고 수직을 맞춰야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초점거리의 선택이다. 높이가 낮은 건물을 찍을 땐 크게 문제없지만 키가 큰 건물을 촬영할 때 대부분의 촬영자들은 카메라를 위로 향하게 하고 줌을 최대한 넓게 해서 광각으로 찍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문제는 사다리꼴 형태로 생기는 왜곡이다. 애초에 왜곡을 염두에 두고 찍는다면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발생하는 수직 왜곡은 보기 흉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왜곡이 안 생기게 촬영하려면 표준 초점거리에 가장 가까운 50mm, 혹은 35~70mm 내외의 초점거리로 촬영하는 게 좋다. 그 정도의 초점거리로 건물을 다 담을 수 없다면? 렌즈 줌 링을 돌릴 게 아니라 한참 더 뒤로 걸어가 왜곡이 없는 사진을 촬영하도록 한다.
Pan Focus
팬 포커스가 진리
배경이 흐려지는 아웃 오브 포커스(Out of focus). 다양한 촬영에서 활용되지만 건축물을 촬영할 때만큼은 팬 포커스가 진리다. ‘팬 포커스Pan focus’는 마치 프라이팬의 바닥처럼 사진 전체의 초점이 고루 평평하게 깊은 것을 뜻하는 심도로 평면이 많은 건축물에서 꼭 표현되어야 할 요소다. 대부분의 건축물이 크기에 특별히 조리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대부분 팬 포커스로 표현되지만 건축물을 촬영할 때 조리개 값은 f8~11 정도로 설정하는 게 가장 좋다.
Zoom Out
때로는 왜곡을 시도하자!
수평과 수직을 다 맞춘다는 것은 곧 왜곡이 없게 건축물을 촬영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주 거대한 건축물은 표준 초점거리로 다 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초점거리가 짧은 광각렌즈로 촬영을 해야 온전히 건축물을 다 담을 수 있는 상황에는 어쩔 수 없이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그럴 때는 아예 의도적으로 왜곡을 강조해 보자. 건물의 수직면이 기울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더라도 외려 그런 현상을 통해 건축물이 더 웅장해 보이고 위압감이 느껴지게 할 수 있다.
Zoom In
멀리 있는 건축물은 망원렌즈로
멀리 있는 대상을 당겨 찍으려면 당연히 초점거리가 긴 망원렌즈로 찍어야 한다. 그러나 이럴 때 망원렌즈를 사용하는 것이 대상이 멀리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휴대전화기나 일반 디지털카메라의 초점거리는 일반적으로 28mm부터 촬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건축물이 프레임 속에 다 들어올 경우,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줌 인, 줌 아웃을 하지 않고 28mm가 만드는 화각 그대로 촬영하게 된다. 건축물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서는 상관없지만 건축물이 떨어져 있을 경우 그렇게 촬영하면 실제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작고 볼품없이 나오게 된다. 멀리 있는 건축물을 배경으로 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사람만 크게 나오고 뒤의 건축물은 정말 ‘코딱지’만 하게 나오는 이유는 그런 우를 범했기 때문. 그럴 경우에는 휴대전화기로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라도 줌 인을 해서 건축물이 크게 나오도록 한다.
Waiting for Something
뺄셈 뒤에 나만의 덧셈하기
당연한 것이지만 유명한 건축물 앞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이런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셔터를 누른다면 지저분한 사진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깔끔한 건축물 사진을 원한다면 잠시만 인내를 갖고 기다려 보자. 사진에서는 덧셈보다 뺄셈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 아무리 관광객들이 많아도 순간 건축물 앞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때가 있다. 그때를 노려서 순발력 있게 셔터를 누르자. 그렇게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축물을 촬영했다면 그 다음에는 나만의 덧셈을 시도해 보자. 조금만 관찰을 하고 기다려 본다면 건축물과 함께한 사람, 혹은 특정 무리가 지나가는 결정적인 순간도 발견할 수 있을 터. 그렇게 자신만의 덧셈을 해서 촬영하는 순간, 건축물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생명력 있는 존재로 표현될 수 있다.
인도 아그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인 인도의 타지마할. 찬란한 무굴제국의 제왕 샤자한의 사랑과 애환이 담겨 있는 이 위대한 건축물을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뻔한 구도로 담기는 싫었다. 타지마할의 양 쪽에는 무슬림들이 기도를 하는 모스크가 있는데 이 사진은 오른쪽 모스크에서 타지마할을 마치 모스크의 벽면이 둘러싼 것처럼 ‘프레임 투 프레임(Frame to Frame)’으로 촬영했다. 하늘이 파랗게 나오도록 순광 방향으로 촬영했고 데칼코마니처럼 정확히 대칭이 이뤄지도록 발 위치를 몇 번이나 조정해 촬영했다. 이렇듯 건축물 촬영에서는 대칭과 평행이 무척 중요한 경우가 많다.
인도 아그라
똑같은 건축물이지만 초점거리와 촬영자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건축물이 찍히기도 한다. 대칭과 평행을 표현한 옆의 사진과는 다르게 이 사진에서의 타지마할은 왜곡이 심하게 나타났다. 타지마할 양 옆의 석주가 이렇게 기울게 표현된 것은 가까이에서 초점거리 16mm의 넓은 화각으로 촬영했기 때문. 때로는 이렇게 왜곡을 활용해 건물이 주는 위용과 규모를 색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왜곡을 하면 건물의 크기가 가늠이 안 되기 때문에 사람을 함께 넣어주면 좋다.
프랑스 몽생미셸
건축물을 항상 가까이 가서 봐야 한다는 법은 없다. 대부분의 유명한 건축물들은 입장료를 내고 가까이에서 만나기 마련인데 그렇게 다가서다 보니 다른 관광객들의 천편일률적인 기념사진과 별다른 사진을 찍기가 힘들다. 나만의 인상적인 건축물 사진을 남기도 싶다면 때로는 멀리서 건축물을 바라봐야 할 때도 있다. 프랑스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도원인 몽생미셸을 촬영한 이 사진은 약 3km 떨어진 지점에서 촬영한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망원렌즈를 사용했고 150mm 정도의 초점거리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커플들의 뒷모습과 함께 색다른 몽생미셸의 모습을 표현해 보았다.
이탈리아 피렌체
이번엔 또 다른 시선으로 건축물을 바라보자. 특히나 피렌체 두오모같이 내 여행의 로망이 되기도 한 건축물은 보다 농밀하고 진득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비가 온 다음날 생기기 마련인 물웅덩이. 그렇게 집착과도 같은 관찰을 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그 좁은 공간에 비친 두오모의 반영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두오모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독일 베를린
건축물만 온전히 촬영하려면 약간의 기다림을 갖고 건축물 앞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순간을 노려야 한다. 그렇게 촬영한 사진도 기록의 가치가 있지만 아무래도 여행에서 촬영한 사진이라면 사람이 함께 있어야 제맛일 것이다. 독일 베를린의 샤를르텐부르크 궁전을 촬영할 때 이미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진들을 꽤 찍었었지만 만족하지 않고 기다린 끝에 나만의 덧셈을 한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미얀마 바간
하나가 아닌 여러 건축물이 모여 있는 장소도 많다. 사진의 미얀마 바간의 불교 유적지처럼 수천 개의 불탑들이 함께 아우라를 뽐내고 있는 광활한 지역은 한 장의 사진으로 그 진면목을 담을 수 없기 마련. 이럴 때는 파노라마 촬영을 해 봐도 좋다. 요즘 스마트폰에는 대부분 터치를 한 후 좌에서 우로 스마트폰을 돌려 주기만 하면 파노라마가 촬영되는 기능이 있다. 그렇게 스마트폰으로 파노라마를 촬영해도 좋고, DSLR 등의 카메라로 촬영한다면 세로로 카메라를 세워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려가며 최대한 촘촘히 촬영을 한 뒤 나중에 포토샵 등의 편집 프로그램에서 합쳐 줘도 된다. 이 사진은 그렇게 20장 정도를 촬영한 후 포토샵의 ‘포토머지(Photo merge)’ 기능을 이용해 합친 파노라마 사진이다.
이탈리아 피렌체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소설과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해 수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속 로망이 된 피렌체의 두오모(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이 로맨틱한 건축물에 끌려 피렌체에 갔다면 아무리 줄을 오래 서더라도 탑에 올라갈 만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느낌과 위에서 만나는 느낌은 전혀 다르기 때문. 이렇듯 건축물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뻔한 구도로만 촬영할 게 아니라 날씨가 좋은 날이라면 일정 중 가장 먼저 점찍은 건축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로 가는 데 투자하도록 하자.
프랑스 파리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촬영한 이 사진도 마찬가지다. 관광객들이 다 찍는, 성당만 나오는 정면사진은 이미 숱하게 촬영한 상태. 뭔가 더 인상적인 사진을 촬영하고 싶어 노트르담 성당 주변의 길을 빙 둘러봤다. 그렇게 걷던 중 스치듯 지나가는 레게 머리를 한 흑인 아가씨. 재빨리 파란 하늘 아래의 노트르담 사원과 함께 나만의 덧셈을 시도해 보았다.
글·사진 김경우 작가 에디터 트래비
여행사진가 김경우 | 10년간의 잡지 기자 생활을 마치고 틈만 나면 사진기 한 대 들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 좋아 발 닿는 대로 다녔으나 늦둥이 아들이 태어난 뒤, 아이에게 보여 줄 오래된 가치가 남아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찾아다니고 있다.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아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소중한 것들이 아직 무한히 많이 남아 있다고 믿고 있다. www.woos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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