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아, 여러 역적을 주륙하지 못하고
늑약(勒約)을 막지 못한다면 오백 년 종사가 오늘에 와서 망할 것이고, 삼천 리 강토가 오늘에 와서 없어질 것이고, 수백만 생령이 오늘에 와서
멸망할 것이고, 오천 년 도맥(道脈)이 오늘에 와서 끊길 것이니, 신이 오늘 산다 한들 무엇을 하겠습니까? 지하로 들어가 열성조(列聖祖)와
성현들을 모시면서 춘추대의를 저버리지 않으렵니다. 삼가 바라건대, 자애로우신 성상께서는 신의 딱한 처지를 살피시어 사직을 위해
죽으려는 바른 뜻을 확실하게 해 주소서. 여러 역적을 속히 주륙하여 왕법(王法)을 펴고, 속히 늑약을 폐기하여 국권을 회복하시며, 적임자에게
관직을 맡겨 우리 백성들을 보호하소서. 그리하여 종사를 무궁하게 하고 끊어져가는 도맥을 부지하신다면 신은 오늘 죽더라도 살아 있는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정신이 흐리고 숨이 막혀 말을 가려 하지 못하였습니다. 삼가 죽음을 앞에 두고 아룁니다.
[원문]
嗚呼!
諸賊未誅、勒約未繳, 則五百年宗社, 今日而亡矣; 三千里疆土, 今日而無矣; 數百萬生靈, 今日而滅矣; 五千年道脈, 今日而絶矣. 臣於今日, 生亦何爲?
將歸侍我列聖祖曁先聖賢於地下, 而不負春秋大義矣. 伏乞聖慈, 察之憐之, 確定殉社之正意. 亟誅諸賊, 以伸王章, 亟廢勒約, 以復國權, 擇人任職,
保我黎民, 寘宗祊於無疆、扶道脈於垂絶, 則是臣死之日, 猶生之年也. 神昏氣塞, 言不知裁. 謹臨死以聞.
- 송병선(宋秉璿, 1836~1905), 「신은 죽더라도 살아있는 것이나
진배없습니다[遺疏]」, 『연재집(淵齋集)』 제4권 「소(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