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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세움[立志]이 먼저이다 뜻이란 마음이 가는 것이다.

천하한량 2015. 4. 10. 16:50
뜻을 세움[立志]이 먼저이다
뜻이란 마음이 가는 것이다.
천하의 모든 일은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 그것이 기준이자 목표가 된다.

夫志者 心之所之也
부지자 심지소지야
天下萬事 莫不隨其心之所之 而以之爲準的
천하만사 막불수기심지소지 이이지위준적

- 윤기(尹愭, 1741~1826)
 「손자 선응에게 답한 편지[答膺孫書]」
 『무명자집(無名子集)』

 

  
  윗글은 조선 후기 문인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가 말년에 자신의 손자에게 보낸 답서(答書)의 한 구절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뜻을 세움[立志]이 먼저임을 강조한 말이다.

  윤기는 손자인 윤선응(尹善膺)이 독서(讀書)와 궁리(窮理)를 하면 뜻은 자연스레 세워져 잃지 않게 될 거라고 한 데 대해, 마음에 뜻이 서지 않으면 독서조차 부지런히 할 수 없을 터인데 하물며 궁리야 말할 것도 없다고 질책하고 있다. 아울러 윤기는 다음과 같은 비유도 들고 있다.

활을 쏘는 자는 과녁에 뜻을 둔 뒤에 깍지1)와 팔찌2)를 잡고, 낚시를 하는 자는 물고기에 뜻을 둔 뒤에 낚싯줄과 미끼를 내린다.[射者志於鵠然後, 可以持决3)拾; 釣者志於魚然後, 可以施綸餌.]

1)깍지 : 활시위를 잡아당길 때 엄지손가락의 아랫마디에 끼는 뿔로 된 기구. 각지(角指)라고도 한다.
2)팔찌 : 활을 쏠 때에 활을 쥐는 쪽의 팔소매를 걷어 매는 띠이다.
3)决은 決, 抉과 통용하며 모두 ‘깍지’라는 뜻이다.

  독서와 궁리란 활을 쏘기 위한 깍지와 팔찌요, 물고기를 잡기 위한 낚싯줄과 미끼라고 할 수 있다. 이로 보자면 독서와 궁리란, 뜻을 세우고 난 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자 수단이다. 마음에 뜻을 세워 확고한 기준과 목표를 설정하지도 않은 채 독서니 궁리니 하며 큰소리를 치는 것은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여도 실상은 선후가 뒤바뀌어 스스로 금을 그어 놓고 포기하기에 십상이다.

  물론 옛사람에게 있어 뜻이란 배움[學]이요, 배움이란 성인(聖人)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또 ‘선(善)을 따르기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고 욕심을 따르기는 물이 낮은 데로 흐르는 것처럼 쉬운 법’이라는 옛말도 있듯, 뜻이 굳세지 않으면 물욕(物慾)에 흔들려 뜻을 빼앗기지 않는 경우가 드문 법이다. 더구나 물질적 가치의 추구가 최고의 선인 듯한 요즘 세태에서는…. 뜻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어디에 어떻게 세우느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