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모음 ▒

고향 일기

천하한량 2013. 10. 8. 15:00
<

 

 

 

◆고향 일기 (산밤, 은행, 과수원 배)      
 

 

2013-10-04 12.35.41.jpg

 

날씨가 하 좋아

점심시간을 넉넉히 잡아

엊그제보다 더 멀리까지 나아가

고향의 나날을 걷습니다.

 

마을들은 모두가

가을볕 아래 깊어 깊어

가을 구만리까지

가을입니다.

  

 

2013-10-04 12.36.26.jpg

 

 채마밭이며

하다못해 담장의 갈꽃까지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2013-10-04 12.37.11.jpg

 

  마을 안길 골목쟁이를

고요히 걸어가는 시골살이 행복을

이렇게 가슴 가득 안아 걷는

이 마음안의 행복됨의

짧게 스쳐갈 가을을

한껏 가슴으로

안습니다.

 

  

 

    

   2013-10-04 12.43.15.jpg   2013-10-04 12.37.23.jpg

 

걷다가 토담 아래 쉬고

다시 걷다가 대문께 따다놓으신 호박 곁에 쉬고

가을볕이 좋아 자꾸 걸음을 멈춥니다.

 

걷다가 걷다가 쉬고..

 

  

2013-10-04 12.37.34.jpg

 

낡아가는 바람벽으로

쏟아지는 가을볕

윗쪽 지붕으로

 눈부십니다.

 

 

2013-10-04 12.38.13.jpg

 

담장 넘어에 빨래가 마르고

갈꽃으로 나비가 나닐고

벌들이 날아와 한나절을 노닐다 가는

고향집 담장.

 

 

2013-10-04 12.41.25.jpg

 

 가을은 깊어

 호박덩이 세월로

 

고향은

   늙어 늙어갑니다. 

 

 

  

2013-10-04 12.43.30.jpg

 

변소간.

 

초가지붕은 아니지만

삭은 슬레이트 지붕에 앉은

 가을볕도 정겹기 그지없습니다.

 

  

2013-10-04 12.43.42.jpg

 

삽작거리.

 

흙바람벽 고향집에서

할아부지께서 걸어나오시고

할머니 건너마을로 마실가시고

아부지 주막거리 나가시고

엄니 밭으로 나가시던

고향집 삽작거리.

 

  

2013-10-04 12.43.55.jpg

 

바람벽.

 

정겹던

바람벽 아래에서

한참을 서있다가 다시 걸어갑니다.

 

  

2013-10-04 12.44.16.jpg

 

대문 안길.

 

조부모님

부모님 생각에

아쉬움으로 뒤를 돌아다 보며 보며

또 돌아다 보며 걷습니다.

 

 

 

2013-10-04 12.44.57.jpg

 

고향 안길에서 만난

고향의 인심.

 

 

 

다 쓰러져가는 집을 뭐하러 사진을 박는데유?

 

옛날 생각나게스리 흙벽돌이 보이길래유.

 

이 산밤 좀 가져다 삶아 자셔봐유.

 

애써 주우신 밤을 저를 주시믄 우짠데유.

 

영감은 치매드셔서 아무 소용없구 낭구하다 주웠시유.

 

그래도 이리 어찌 받는데유.

 

벌거지가 좀 먹었지만 알이 실해유.

 

야.. 고마워유.

 

  

2013-10-04 12.51.55.jpg

 

뒷곁.

 

올해는

감 흉년으로 열리지 않고

그냥 건너뛰는 해라서

기껏 감 너댓개 매단

감나무입니다.

 

  

 

  2013-10-04 12.56.41.jpg

 

은행나무.

 

은행은 주저리 주저리

길바닥으로 후두둑, 지천으로 밟힙니다.

 

냄새가 고약스러워

아무도 줍지를 않습니다.

  

 

 

2013-10-04 12.52.09.jpg  2013-10-04 12.52.53.jpg

 

안길.

 

 

고즈넉한

고향 안길을 또 걸어갑니다.

 

  

2013-10-04 12.53.08.jpg

 

빈 집.

 

가을이면 저렇게

고향을 버리고 떠나간 자리가

더욱 쓸쓸합니다.

 

 

 

마당으로 가득한 풀이며

무너진 담장.

 

 

처연스레 쏟아지는

가을볕.

 

 

2013-10-04 12.53.31.jpg

 

따뜻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아이들 웃음소리 높아가던 고향집.

 

그 많던 형제들이 옹송거리는 안방으로

군불을 지피시던 어머니.

 

 

굴뚝으로만 남은

고향집.

 

 

2013-10-04 12.53.45.jpg

 

 세월이 가고

또 가고

 가고.

 

 

 

모두가 가고

가을만 혼자 남은

쓸쓸한 고향.

  

 

2013-10-04 12.54.33.jpg

 

그래도

가을은 높아

지붕을 타고 오릅니다.

 

 

2013-10-04 12.54.48.jpg

 

 가을볕이

 참 맑아서

 눈이 부십니다.

  

 

2013-10-04 12.55.20.jpg

 

고물개로

곡식을 널어놓은

대문께를 지나가며

기웃거려봅니다.

 

 

2013-10-04 12.55.38.jpg

 

고향집은 쓸쓸해도

가을햇살 해맑갛게 내리쬐는 고향마을에서

날씨 한번 참 좋은 가을날입니다.

 

 

    2013-10-04 12.55.57.jpg

 

고요로운 

헛간 지붕에도

가을이 한창입니다.

  

  2013-10-04 12.56.27.jpg

 

은행알이

탱글탱글 영글어

알알이 익어가는 우리의 고향입니다.

  

 

2013-10-04 13.02.19.jpg

 

 마을 안길에서

한길로 나왔습니다.

 

 

오리들이 한가롭게 유영하는

저 풍경에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요.

 

 

 

또 한참을 오리떼가 노니는 모양을 바라보다가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사무실쪽으로

가늠을 잡아 걷습니다.

  

 

2013-10-04 13.04.38.jpg

 

언제나 건너다 보는

고향산천의 풍경이지만

정겹고 정답고

예쁩니다.

 

  

2013-10-04 13.50.22.jpg

 

사무실로 돌아와

호주머니 불룩한 산밤을

탁자 위에 쏟아놓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다시 그대가 그립다고 읊은 

 어느 시인의 싯구처럼

 

금방 다녀온 고향을 향한

짙은 향수를 느낍니다.

 

 

2013-10-04 15.59.07.jpg

 

갑자기

누가 부르는 소리에 내다보니

 과수원 갑장이 봉지 배를 싣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여름내 사무실 창으로 내다보다가

새떼가 날아와 전신주에

과수원을 향해 나랩으로 앉으면

냅다 마당으로 나가

훠이!~ 훠! 이노무 자슥들이?? 하면서

고함을 질러대곤 하던 내가

참 고마웠다고 합니다.

 

 

이 가을

그 값을 하려고

배를 한 상자 그득히 담아왔습니다.

 

 

고향의 인심입니다.

 

  

2013-10-04 15.59.45.jpg

 

 토실토실 실하게 굵은

산밤도 얻었고

샛노랗게 불뚝배 한 상자를

과수원 쥔장에게서 또 얻었고

오늘은 수지가 잔뜩 맞았습니다.

 

 

 

 차안 가득

배덩어리에서 폴폴 나는

달달한 향긋함 함께

저물어 집으로 가는 길.

 

 

 

마음 뭉툭, 뭉툭,

가을입니다.

  

 

2013-10-04 18.09.5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