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하 좋아
점심시간을 넉넉히 잡아
엊그제보다 더 멀리까지 나아가
고향의 나날을 걷습니다.
마을들은 모두가
가을볕 아래 깊어 깊어
가을 구만리까지
가을입니다.
채마밭이며
하다못해 담장의 갈꽃까지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마을 안길 골목쟁이를
고요히 걸어가는 시골살이 행복을
이렇게 가슴 가득 안아 걷는
이 마음안의 행복됨의
짧게 스쳐갈 가을을
한껏 가슴으로
안습니다.
걷다가 토담 아래 쉬고
다시 걷다가 대문께 따다놓으신 호박 곁에 쉬고
가을볕이 좋아 자꾸 걸음을 멈춥니다.
걷다가 걷다가 쉬고..
낡아가는 바람벽으로
쏟아지는 가을볕
윗쪽 지붕으로
눈부십니다.
담장 넘어에 빨래가 마르고
갈꽃으로 나비가 나닐고
벌들이 날아와 한나절을 노닐다 가는
고향집 담장.
가을은 깊어
호박덩이 세월로
고향은
늙어 늙어갑니다.
변소간.
초가지붕은 아니지만
삭은 슬레이트 지붕에 앉은
가을볕도 정겹기 그지없습니다.
삽작거리.
흙바람벽 고향집에서
할아부지께서 걸어나오시고
할머니 건너마을로 마실가시고
아부지 주막거리 나가시고
엄니 밭으로 나가시던
고향집 삽작거리.
바람벽.
정겹던
바람벽 아래에서
한참을 서있다가 다시 걸어갑니다.
대문 안길.
조부모님
부모님 생각에
아쉬움으로 뒤를 돌아다 보며 보며
또 돌아다 보며 걷습니다.
고향 안길에서 만난
고향의 인심.
다 쓰러져가는 집을 뭐하러 사진을 박는데유?
옛날 생각나게스리 흙벽돌이 보이길래유.
이 산밤 좀 가져다 삶아 자셔봐유.
애써 주우신 밤을 저를 주시믄 우짠데유.
영감은 치매드셔서 아무 소용없구 낭구하다 주웠시유.
그래도 이리 어찌 받는데유.
벌거지가 좀 먹었지만 알이 실해유.
야.. 고마워유.
뒷곁.
올해는
감 흉년으로 열리지 않고
그냥 건너뛰는 해라서
기껏 감 너댓개 매단
감나무입니다.
은행나무.
은행은 주저리 주저리
길바닥으로 후두둑, 지천으로 밟힙니다.
냄새가 고약스러워
아무도 줍지를 않습니다.
안길.
고즈넉한
고향 안길을 또 걸어갑니다.
빈 집.
가을이면 저렇게
고향을 버리고 떠나간 자리가
더욱 쓸쓸합니다.
마당으로 가득한 풀이며
무너진 담장.
처연스레 쏟아지는
가을볕.
따뜻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아이들 웃음소리 높아가던 고향집.
그 많던 형제들이 옹송거리는 안방으로
군불을 지피시던 어머니.
굴뚝으로만 남은
고향집.
세월이 가고
또 가고
가고.
모두가 가고
가을만 혼자 남은
쓸쓸한 고향.
그래도
가을은 높아
지붕을 타고 오릅니다.
가을볕이
참 맑아서
눈이 부십니다.
고물개로
곡식을 널어놓은
대문께를 지나가며
기웃거려봅니다.
고향집은 쓸쓸해도
가을햇살 해맑갛게 내리쬐는 고향마을에서
날씨 한번 참 좋은 가을날입니다.
고요로운
헛간 지붕에도
가을이 한창입니다.
은행알이
탱글탱글 영글어
알알이 익어가는 우리의 고향입니다.
마을 안길에서
한길로 나왔습니다.
오리들이 한가롭게 유영하는
저 풍경에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요.
또 한참을 오리떼가 노니는 모양을 바라보다가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사무실쪽으로
가늠을 잡아 걷습니다.
언제나 건너다 보는
고향산천의 풍경이지만
정겹고 정답고
예쁩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호주머니 불룩한 산밤을
탁자 위에 쏟아놓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다시 그대가 그립다고 읊은
어느 시인의 싯구처럼
금방 다녀온 고향을 향한
짙은 향수를 느낍니다.
갑자기
누가 부르는 소리에 내다보니
과수원 갑장이 봉지 배를 싣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여름내 사무실 창으로 내다보다가
새떼가 날아와 전신주에
과수원을 향해 나랩으로 앉으면
냅다 마당으로 나가
훠이!~ 훠! 이노무 자슥들이?? 하면서
고함을 질러대곤 하던 내가
참 고마웠다고 합니다.
이 가을
그 값을 하려고
배를 한 상자 그득히 담아왔습니다.
고향의 인심입니다.
토실토실 실하게 굵은
산밤도 얻었고
샛노랗게 불뚝배 한 상자를
과수원 쥔장에게서 또 얻었고
오늘은 수지가 잔뜩 맞았습니다.
차안 가득
배덩어리에서 폴폴 나는
달달한 향긋함 함께
저물어 집으로 가는 길.
마음 뭉툭, 뭉툭,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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