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자료실 ▒

삼겹살·소주 먹은 뒷 날 무릎 통증, 알고 보니

천하한량 2012. 12. 15. 15:47

또다시 연말이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얼굴들을 연말이라고 한 번씩 보다 보면 자연스레 음주가 늘어난다. 그러다가 갑자기 숨어 있던 병이 나타나기도 한다.

20 대 후반의 아주 건장한 청년이 목발을 짚은 채 진료실로 들어왔다. 하룻밤 새 갑자기 한쪽 무릎이 퉁퉁 부은 데다가 욱신거리는 통증이 심해 도저히 걸을 수 없다고 했다. 예전에 다쳤을 때 쓰던 목발을 짚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 병원을 방문한 것이다. 환자의 말을 듣자마자 진단을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몇 가지 추가로 질문했다. 평소의 주량과 최근 체중 변화, 혹시 요로결석이 있었는지를 물어보니 이것은 보나 마나 통풍이었다. 이번이 처음 아픈 것은 아니었다는데 처음엔 발가락 뿌리 부분만 붓고 아프길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진통제만 사 먹었다. 그래도 2~3일 지나 저절로 부기가 빠지고 통증도 없어져 병원에 오지 않았다. 전날 저녁에도 삼겹살과 소주, 치킨에 맥주까지 마시고 기분 좋게 잤고 무릎을 다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도 밤새 무릎이 붓고 아파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런 경우 약물치료로만은 해결될 수 없기에 일단 혈액검사 후 근처 정형외과로 보내 무릎의 윤활액을 주사기로 빼고 약물치료를 하기로 했다. 정형외과에 들러 다음날 다시 온 환자는 좀 나아진 듯했지만 혈액검사 결과를 보니 통풍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동반 질환들이 많았다. 일단 혈압이 높은 비만이었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매우 높았다. 통풍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요산 수치도 무척 높았는데 이는 과도한 음주 때문인 게 분명했다.

통풍은 40·50대 남성에게서 많이 생기지만 최근 들어 20·30대 환자도 늘고 있다. 심지어 나도 통풍 환자다. 나는 전공의 시절 요로결석으로 고생한 적이 있고 40대 초반에 통풍이 발병했다. 그 후 식이요법과 체중 감량을 통해 혈액 수치는 정상으로 되돌아왔지만 아직도 가끔 발이 붓고 아프다.

통풍이 얼마나 아픈지는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렵다. 결석이나 담석은 아프다 말다 반복하는데 통풍은 계속 아프다. 진통제를 먹어도 아프다. 통풍 환자가 많다 보니 통풍에 대한 잘못된 상식도 많다. 술만 해도 그렇다. 맥주가 제일 안 좋은 것은 확실하지만 소주나 양주 같은 독주는 괜찮다는 잘못된 설이 떠돈다. 맥주보다 상대적으로 퓨린 함유량이 적을 뿐 요산 배설을 방해하기 때문에 술은 무조건 나쁘다. 발이 붓지 않으면 악물치료를 중단해도 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통풍에 나쁘다는 음식들은 대개 맛있다. 맛없는 음식들만 먹는다면 통풍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다. 통풍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히 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음식 조절을 철저히 한다 해도 몸의 요산 배출 능력이 떨어진다면 만사 도루묵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퓨린 대사에 문제가 있어 생긴 병이니 대사증후군의 유무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나는 그 환자에게 "나도 통풍 환자"라고 커밍아웃을 하고 참기 힘든 통증에 대해 맞장구를 쳐줬다. 식이요법의 어려움과 약물 복용의 중요성 같은 경험담을 자세히 들려줬다. 왠지 이 환자는 경과가 좋을 것 같다.